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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

자형紫荊,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by 경인

콩과 식물에 속하는 관목으로, 잎이 나기 전 4월에 가지마다 홍자색 꽃을 다닥다닥, 그득히 피우는 박태기나무(Cercis chinensis Bunge)가 있다.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이 박태기나무는 중국 중남부 석회암지대가 원산지라고 하며,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조경용으로 많이 심고 있다. 이 나무의 중국명은 자형紫荊인데, 우리나라 문헌에서도 자형紫荊으로 썼다. 마을에 조경수를 심은 정원이 없는 산골 마을에서 자란 나는 어렸을 때에 박태기나무를 보지는 못했다.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본줄기와 가지를 온통 뒤덮어 버릴 듯이 피어있는 진홍색의 자잘한 꽃 무리를 처음 봤을 때에 그 모양이 신기했다. 가끔 친구들이 꽃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이름을 물어볼 때, 박태기나무라고 대답해주면, 꽃은 예쁜데 이름이 왜 그러냐는 조금은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우리나무의 세계 1>에서 박상진은 “꽃봉오리가 달려 있는 모양이 마치 밥알, 즉 ‘밥티기’와 닮았다고 하여 박태기나무란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이 박태기나무에 얽힌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가 있다.


박태기나무 꽃, 2020.4.26 안동


남북조 시대(386~589) 양梁나라 오균吳均이 지은 <속제해기續齊諧記>에 다음과 같은 고사가 나온다. “경조京兆(수도를 다스리는 관리) 전진田眞은 3형제였다. 함께 재산 분할을 의논했는데, 모든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었다. 집 앞의 자형紫荊 나무는 한 그루뿐이어서, 세 조각으로 쪼개기로 함께 이야기했다. 다음 날 자르러 갔더니 그 나무는 불에 타버린 듯이 말라 죽어 있었다. 전진이 가서 그것을 보고 크게 놀라, 아우들에게, ‘나무는 본래 한 나무인데, 나누어 쪼개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초췌해진 것이다. 사람이 나무만도 못하구나’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크게 슬퍼하면서, 다시는 나무를 자르지 않겠다고 했다. 나무는 이 소리에 감응하여 다시 꽃을 피우고 무성해졌다. 형제는 서로 느낀 바가 있어서 재산과 보물을 합치고, 드디어 효도를 다하는 가문이 되었다. 전진은 벼슬이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이르렀다. 육기陸機의 시에 ‘삼형환동주(三荊歡同株)’가 있다.”*


이 <속제해기>의 고사로 인해 자형紫荊, 즉 박태기나무는 형제간의 우애를 뜻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가자형田家紫荊이나 전씨지형田氏之荊 같은 성어도 만들어졌다. 고전에서 형荊은 일반적으로 중국에서는 목형, 우리나라에서는 싸리 혹은 목형류의 나무를 뜻하는 글자이다. 하지만 문맥상 형제를 뜻하면 이 고사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박태기나무로 해석해야 한다. 그리운 동생의 소식을 듣고 쓴 두보杜甫의 다음 시를 읽어보면 그도 이 고사를 알았던 듯하다.


동생 소식을 듣고 (得舍弟消息)


風吹紫荊樹 바람은 박태기나무에 불고

色與春庭暮 빛깔은 봄 뜨락에서 저무네

花落辭故枝 꽃 지며 옛 가지를 떠나니

風回反無處 바람이 불어와도 돌아갈 곳 없어라

骨肉恩書重 골육의 은혜로운 편지는 소중한데

漂泊難相遇 떠돌이라 서로 만나기 어려워라

猶有淚成河 흐르는 눈물이 냇물을 이루어

經天復東注 하늘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라.

박태기나무 잎과 열매 꼬투리, 2019.6.9 양평


<본초강목>에서는, “자형紫荊은 곳곳에 있다. 사람들이 정원 사이에 많이 심는다. 나무는 황형黃荊 비슷하고 잎은 작고 갈라진 곳이 없다. 진한 자주색 꽃이 사랑스럽다. … 곧 전씨田氏(전진田眞 3형제를 뜻함)의 형荊이다. 가을이 되어 씨앗이 여물면 납작한 자주색 둥근 모양이 작은 구슬과 같아서 자주紫珠라고 이름지었다. … 봄에 자주색 꽃이 피는데, 아주 자잘하고 함께 떨기를 이루어 나온다. (꽃대가) 나오는 곳은 정해진 데가 없다. 나무 줄기 위에서 나기도 하고 뿌리 위나 가지 아래에 붙어 나기도 한다. 곧장 꽃을 피운다. 꽃이 지면 잎이 나온다. 윤기가 있고 빳빳하며 조금 둥글다. 정원이나 밭에 많이 심는다. … 나무가 크고 가지는 부드러우며, 그 꽃은 무성하다. …”**라고 하여, 박태기나무를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문헌을 살펴보면, 형荊은 <훈몽자회>에서 “가새 형. 다른 이름은 자형紫荊. 그리고 형조荊條, 댓싸리”로 나온다. 자형紫荊은 박태기나무이고, 형조荊條는 좀목형의 중국 이름이며, 댓싸리는 댑싸리의 고어이다. <물명고>는 “나무가 크고 가지는 부드러우며, 꽃은 무성하고 자주색이다. 씨앗은 붉은 작은 구슬 같아서 사랑스럽다. 자주紫珠라고 한다”라고 설명했고, <광재물보> 관목류에서는 “곧, 전씨田氏의 형荊이다. 나무는 모형牡荊 비슷하고 잎은 작고 갈라진 곳이 없다. 진한 자주색 꽃이 무성하게 피는데 사랑스럽다. 그 열매는 납작하고 둥근 구슬 같다.”라고 했다. 모두 <본초강목>의 설명과 일치하므로, 박태기나무 설명으로 볼 수 있다.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는 박태기나무의 한자명으로 소방목蘇方木*****, 자형목紫荊木, 만조홍滿條紅을 들고 있다. 이제 <동문선>에 실려있는 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 시 한편을 감상한다.


형님 편지를 보고 (得家兄書)


賤子成何事 천한 몸이 무슨 일을 이루겠다고

年年作遠遊 해마다 멀리 여행하는가?

棣華開處少 이스라지 꽃 핀 곳은 드문데,

荊樹得庭幽 박태기나무는 그윽히 뜰에 있구나

信字煩黃耳 서신은 ‘누렁이(黃耳)’를 수고롭게 할지니

餘生共白頭 여생은 흰 머리로 함께 하고파

置書空悵望 편지를 두고 하염없이 바라보니

江海日東流 강물은 날마다 동쪽으로 흐른다.


이스라지 꽃, 2020.4.18 남한산성


체화棣華는 ‘이스라지 꽃’으로, <시경>의 시 ‘상체常棣’에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꽃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이곡은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두 나무를 들어 시를 읊고 있는 셈이다. ‘황이黃耳’, 즉 누렁이는 진晉나라 육기陸機(260~303)의 애견 이름으로 육기의 편지를 전달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 구절의 ‘강물은 날마다 동쪽으로 흐른다’는 앞에서 소개한 두보의 ‘하늘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라’라는 표현과 흡사하다. 특히 우리나라 강은 대체로 서해나 남해로 흐르는데도 ‘동쪽으로 흐른다’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이곡이 두보의 시를 읽고 참고했을 가능성도 있다. 올해 봄에도 나는 박태기나무 꽃을 감상했지만, 이 꽃이 형제간의 우애를 뜻하는지는 미처 몰랐다. 이 뜻을 알고 나자 투박한 이름을 가진 박태기나무가 더 좋아진다. 나에게도 남동생이 둘 있는데, 삼형제가 산골 들판을 누비며 함께 자랐다. 봄에는 뛰어놀고, 여름부터는 꼴을 하고, 가을이면 추수를 돕고, 겨울이면 땔나무를 같이 했다. 다행히 지금도 모두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서, 이런 저런 집안일을 함께 하고 가끔 산을 같이 오르기도 하면서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다. 앞으로는 이스라지 뿐 아니라, 박태기나무 꽃도 볼 때마다, 내 동생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2020.10.24. 끝>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이유출판, 2023, pp.197~203. 초고>


* 京兆田眞 兄弟三人 共議分財 生資皆平均 惟堂前一株紫荊樹 共議欲破三片 明日就截之 其樹即枯死 狀如火燃 眞往見之 大驚謂諸弟曰 樹本同株 聞將分斫 所以憔悴 是人不如木也 因悲不自勝 不復解樹 樹應聲榮茂 兄弟相感 合財寶 遂為孝門 眞仕至太中大夫 陸機詩云 三荊歡同株 - 續齊諧記

** 紫荊, 釋名 紫珠, … 頌曰 紫荊處處有之 人多種於庭院間 木似黃荊 葉小無椏 花深紫可愛. 藏器曰 卽田氏之荊也 至秋子熟 正紫圓如小珠 名紫珠 江東林澤間尤多. 宗奭曰 春開紫花甚細碎 共作朶生 出無常處 或生於木身之上 或附根上枝下 直出花 花罷葉出 光緊微圓 園圃多植之. 時珍曰 高樹柔條 其花甚繁 歲二三次 其皮入藥 … - 본초강목

*** 紫荊, 高樹柔條 花繁紫色 子如紅小珠 可愛, 紫珠 – 물명고

**** 紫荊, 卽田氏之荊也 木似牡荊 葉小無椏 花深紫色 繁英可愛 其實正圓如珠 – 광재물보

***** 소방목蘇方木은 소목蘇木이라고도 하며, <본초강목>에는 소방목蘇枋木으로 나온다. <중약대사전>에는 실거리나무속의 Caesalpinia sappan L.로 소개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 속에 속하는 실거리나무가 서남해 도서와 제주도에 자란다. <동의보감> 탕액편에도 소방목蘇方木이 한글로 ‘다목’이라는 설명과 함께 소개되어 있는데, 이 ‘다목’이 무슨 나무를 뜻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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