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榧
彼美玉山果 저 아름다운 옥산과玉山果가
粲為金盤實 금 쟁반 위 열매로 빛나네
瘴霧脫蠻溪 남만의 계곡, 독한 안개를 벗어나
清樽奉佳客 맑은 술잔과 귀한 분께 바쳐졌네
客行何以贈 나그네 가시는데 무엇을 드리나
一語當加璧 한마디 말을 보배로 삼으시게
祝君如此果 그대는 이 열매처럼
德膏以自澤 덕이 넘쳐 스스로 윤택해지시게
驅攘三彭仇 원수 같은 삼시충三尸蟲을 몰아내어
已我心腹疾 내 마음과 뱃속의 근심을 그치게 해 주시게
願君如此木 그대는 이 나무처럼
凜凜傲霜雪 늠름하게 서리와 눈을 견디시게
斵爲君倚几 베어서 그대의 궤안几案을 만들면
滑淨不容削 깔끔하여 깎아낼 곳이 없다네
物微興不淺 하찮은 물건이나 흥치興致는 얕지 않으니
此贈毋輕擲 내가 써 준 이 시를 가벼이 버리지는 말게나
당송 팔대가 중의 한명인 소식蘇軾(1036~1101)의 시, ‘정호조를 전송하며 자리에 있는 과실 중 비자에 대해 읊다 (送鄭戶曹賦席上果得榧子)’이다. 이 시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비자나무로 만든 앉은뱅이 책상, 즉 비궤(榧几)는 좋은 가구일 뿐 아니라 학문을 연마하는 선비의 상징으로 종종 고전에 나타난다.
예부터 우리나라에도 이 비자나무가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를 다녀가서 저술한 책으로 1123년에 간행되었다고 알려진 <고려도경>의 토산土産 편에, “또 앵두(含桃)가 있으나 맛은 식초와 같이 시다. 개암(榛)과 비자(榧)가 가장 많다고 한다”*고 쓰여져 있다. 즉, 우리나라에 비자나무가 많음을 언급한 것이다. 허목許穆(1595~1682)의 <미수기언>에, 겨울에도 푸르고 오래 사는 나무와 풀, 돌 등 열 가지로 정원을 꾸미고 쓴 글인 ‘십청원기十靑園記’가 있는데, 십청의 하나로 비자나무(榧)가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비자나무(榧), 남해에서 자라는 것이 좋다. 옥비玉榧라고 하고 옥산과玉山果라고도 한다. 또한 적과赤果라고도 한다. <설문>에서 ‘문목文木’이라고 했다. 그 나무의 맛은 달고, 잎은 겨울에도 푸르다. 산비山榧의 하나이다. 산비는 총생叢生하고 키가 크지 않다.”**
이제 우리나라의 비자나무(Torreya nucifera [L.] Siebold & Zucc.)가 소동파의 시에 나오는 비자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비자는 구충제로 사용되었으므로 <본초강목>에 비자열매(榧實)로 나온다. 일부 내용을 인용해보자. “그 나무 이름은 문목文木인데, 아름다운 무늬와 고운 빛깔을 지녀서 비榧라고 했다. 신주信州 옥산현玉山縣에서 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친다. 그래서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저 아름다운 옥산과玉山果가, 금 쟁반 위 열매로 빛나네 彼美玉山果 粲為金盤實 粲為金盤實’라고 했다. … 비榧는 깊은 산 속에 자라며, 사람들이 야심野杉이라고 한다. … 피柀는 삼杉과 비슷하지만 삼杉과 다르다. 피彼는 좋은 열매가 있고 나무의 무늬와 빛깔이 아름답다. 그 나무는 동桐과 비슷하고 잎은 삼杉과 비슷하다. 몹시 천천히 자란다. 암수딴그루이며 수나무에 꽃이 피고 암나무에 열매가 달린다. 겨울에 황색의 원형 꽃이 피고 결실한 열매의 크기는 대추 정도이다. 그 씨는 길이가 감람橄欖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문헌을 살펴보면, <훈몽자회>에, “榧, 비잣비”로 나온 후, <자선석요>, <한선문신옥편>, <한일선신옥편> 및 현대의 <한한대자전> 등 모든 옥편에 “비자나무 비”라고 설명하여 혼동은 없었다. <물명고>와 <광재물보>에도 비자榧子를 우리말로 ‘비자’로 설명하고 있고, 특히 <광재물보>는 <본초강목>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본초강목>의 비榧를 <중국식물지>나 <식물의한자어원사전>은 중국명 비수榧樹(Torreya grandis Fort. ex Lindl., 이명 야삼野杉, 소과비小果榧 등)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자생하는 비자나무(Torreya nucifera [L.] Siebold & Zucc.)는 일본비수日本榧樹라고 하는데, 중국에는 자생하지 않는다.
이렇듯,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비榧는 비슷하지만 다른 나무를 지칭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 비자나무와 우리나라 비자나무는 다같이 주목과의 비자나무속(Torreya)에 속하는 나무여서 약효도 비슷했던 듯하다. 고전을 번역할 때 엄밀하게 종(species)을 구분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두 ‘비자나무’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황윤석黃胤錫(1729~1791)의 이재유고頤齋遺藁에 나오는 ‘비자榧子에 대해 고풍古風으로 지은 부賦’의 일부를 감상한다. 김이신金履信(1723~?)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할 때 황윤석이 전송하면서 써 준 시이다.
江南有榧樹 강남에 비자나무가 있으니
乃在白羊山 곧 백양산에 자란다네.
亭亭梁棟幹 우뚝하여 동량의 재목인데
鬱鬱霜雪顔 울창하여 서리와 눈 같이 결백한 모습이네
斲几文章爛 궤안几案을 만들면 문장은 빛나니
倚之寧不歡 그것에 의지하면 어찌 기쁘지 않으랴
况復多佳實 하물며 좋은 열매도 많으니
臭味無鹹酸 냄새와 맛이 짜고 시지 않다네
凉秋八九月 서늘한 가을 팔 구월에
可獨充杯盤 홀로 쟁반에 가득 채울 수 있으리
三彭衆所病 삼시충三尸蟲으로 모두 괴로운데
寸白方成癏 촌충寸蟲으로 바야흐로 병이 걸릴때
但令一咬罷 한번 깨물어 치료하게 하면
心腹頓能安 마음과 뱃속이 곧 편안해지네
작년 봄 3월 하순에 나는 회사 동료들과 남도의 영광, 장성 지방을 둘러본 적이 있다. 이때 백양사에 들러 만개한 홍매紅梅인 고불매古佛梅를 감상했다. 그 백양사 초입에 굴거리나무와 비자나무 숲이 있었다. 이른 봄, 아직 잎이 나지 않은 앙상한 나무들 사이에서 짙푸르게 우뚝 서 있는 비자나무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서 뒤늦게 시든다는 송백松柏보다도 더 늠름해 보였다. 비자가 여물어가고 있는 이 백양산 비자나무 숲은 예부터 유명했나 보다.
<끝 2020년 5월 말>
* 亦有含桃 味酸如酢 榛榧最多云 – 고려도경
**榧, 生南海上者佳 曰玉榧 又曰玉山果 亦曰赤果 說文曰 文木也 其木甘 其葉冬靑 山榧一也 山榧 叢生不高 – 미수기언
***榧實, … 其木名文木 斐然章采 故謂之榧 信州玉山縣者爲佳 故蘇東坡詩云 彼美玉山果 粲為金盤實 … 榧生深山中 人呼爲野杉 … 似杉而異於杉 彼有美實而木有文采 其木似桐而葉似杉 絕難長 木有牝牡 牡者華而牝者實 冬月開黃圓花 結實大小如棗 其核長如橄欖 - 본초강목
참고: 비자나무는 나자식물이므로 비실榧實을 비자 열매가 아니라 비자 종자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번역시 종자로 해야할지, 열매를 그대로 두어도 좋을지 더 생각해봐야겠다.
+표지사진, 비자나무, 2020.11.15 제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