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배나무
四月棠梨開較遲 당리棠梨 꽃 조금 늦어 4월에 피었는데
繁英無數滿高枝 수많은 꽃송이가 높은 가지에 가득하네
夜深明月來相照 깊은 밤 밝은 달이 서로 비추니
天地中間第一奇 천지간에 제일가는 풍경이로다.
桃嬌杏艶媚新粧 복사꽃 살구꽃도 새로 곱게 꾸미고서
曾向春風惱病腸 봄바람에 실려와 병든 간장 녹였지만
那似梨花明月夜 어찌 이 당리화棠梨花가 밝은 달밤에
淡然貞白發天光 하늘빛 받아 정결히 빛남만 하리요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꽃이 활짝 핀 당리棠梨를 보고 복사꽃이나 살구꽃보다 좋은 풍경이라고 읊은 시이다. 이 시에는 “연못 가에 당리棠梨 한 그루가 있다. 4월 초순에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10일 후에 활짝 피었다. 화려한 풍류가 천하에서 비할 곳이 없다. 늙은 이 몸은 맑은 흥취를 이기지 못하여 매일 밤 그 아래에서 읊조렸다. 밝은 달도 아름답고 흥취도 다시금 깊어 절구 2수를 짖는다.”*라는 꽤 긴 제목이 붙어 있어서 이 시의 배경을 밝히고 있다.
<한국고전종합DB>를 살펴보면 당리棠梨를 팥배나무, 아가위나무, 아그배나무, 돌배나무 등으로 번역하고 있고, 특히 팥배나무로 많이 이해하고 있다. 당棠과 리梨는 모두 <훈몽자회> 과실菓實 편에 ‘아가외 당’, ‘배 리’로 나온다. 모두 식용가능한 열매들이므로 이 두 글자를 합친 당리도 식용 가능할 것이다. 당리棠梨 두 글자의 우리말 훈을 읽으면 ‘아가외 배’이다. 즉, 아가외를 닮은 배가 되고, 이것이 축약되어 ‘아가배’, ‘아그배’로 불리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동의보감> 탕액편과 <제중신편>, <산림경제>, <명물기략> 등에서 한결같이 산사자山楂子를 ‘아가외’ 혹은 ‘아가위’로 지칭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아가외’는 산사나무를 가리켰을 것이고, 당리는 산사 비슷한 열매를 맺는 배나무로 추정할 수 있지만, 정확히 무슨 나무인지는 쉽사리 알기 어렵다. 과연 이 당리를 팥배나무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까?
우선 <시경식물도감>에서는 감당甘棠과 당棠을, 현대 중국명 당리棠梨 혹은 두리杜梨로 보고, Pyrus betulifolia Bunge로 설명한다. 이 나무는 중국 북부 및 중부와 티베트에 자생하는 활엽 야생 배나무이다. <중약대사전>과 <중국실물지>도 당리棠梨를 Pyrus betulifolia로 설명하고 있으므로, 중국에서는 당리를 Pyrus속의 야생종 배나무로 이해함을 알 수 있다. 이 나무의 열매는 구형에 가깝고 직경은 5~10mm이며 갈색으로 연한 반점이 있다고 한다.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서는 당리를 Pyrus phaeocarpa라고 한다. Pyrus phaeocarpa Rehd은 중국명 褐梨, 棠杜梨로 열매는 구형 혹은 난형卵形이며, 직경은 2~2.5cm, 갈색으로 반점이 있다고 한다. 이 Pyrus속의 나무들은 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옛 시인들이 우리나라에서 보고 읊은 당리棠梨는 분명 우리나라에 자라는 나무들 중 하나일 것이다.
유희의 <물명고>에서는 “당리棠梨. 야리野梨의 흰 것을 당棠이라고 하며 맛은 달다. ‘흰팟배’. 감당甘棠, 야리野梨와 같다. 두리杜梨. 당棠과 비슷하지만 붉은 것이 두杜이며, 맛은 시다. ‘팟배’”**로 설명한다. 해설하자만 야생종 배 중 흰것으로 맛이 단 것을 당리棠梨로 보고 있고 우리말로 ‘흰팟배’라고 했으며, 이와는 비슷하지만 붉은 색이고 맛이 신 것이 杜梨인데 우리말로 ‘팟배’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중국에서 당리와 두리를 모두 감당으로 보는 것과 달리, ‘흰팟배’ 당리와 ‘팟배’ 두리를 서로 다른 나무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광재물보>에서는 “당리棠梨 ‘팟배’ 나무는 배나무 비슷한데 작고, 잎은 삽주(蒼朮) 비슷하다. 잎은 둥근 것도 있고 세 갈래 진 것도 있으며, 잎 가에는 모두 톱니가 있다. 흰 꽃이 피며, 작은 멀구슬나무 열매 같은 열매를 맺는다. 큰 서리가 내린 후 먹을 수 있다. 야리野梨와 같다”***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광재물보>에서 설명한 잎 모양과 배나무보다 작다고 한 점으로 보아, 당리가 비록 당시 ‘팟배’로 불리었지만, 현재 우리가 ‘아그배나무’로 부르는 나무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아그배나무(Malus sieboldii [Regel] Rehder)는 중부이남의 산지에 자라며, 잎은 “길이 3~5cm 의 좁은 타원형 또는 타원형이다. 끝이 뾰족하고 밑부분은 둥글거나 넓은 쐐기형이며, 가장자리에는 뾰족한 톱니가 있다. 새 가지의 잎은 흔히 3~5갈래의 결각이 있다. … 꽃은 4~5월에 백색의 양성화가 4~8개씩 모여 달린다. 열매(梨果)는 지름 6~9mm의 구형이며 9~10월에 적색 또는 황갈색으로 익는다.” 이에 반해 팥배나무는 높이 20m까지 자라는 교목이다. 잎은 타원상 도란형이며 겹톱니가 있고 가끔 결각이 지지만 아그배나무처럼 크게 결각이 지지도 않고, 삽주(Atractylodes ovata (Thunb.) DC.) 잎과는 판이하다.
서유구徐有榘(1764~1845)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도 구황식물로 당리棠梨가 나온다. “당리棠梨는 꽃을 따서 삶아 익혀서 먹거나, 햇볕에 말리고 갈아 가루를 내고 불에 구운 떡으로 만들어 먹어도 좋다. 그리고 어린 잎을 데쳐서 물에 담가 깨끗이 씻어 기름과 소금으로 조리해서 먹는다. 서리가 내린 후 실과가 익었을 때 따 먹으면 매우 맛이 좋다.”****고 했으므로, 당리의 꽃과 잎, 열매를 모두 식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830년 경에 편찬되었다고 알려진 최한기崔漢綺(1803~1877)의 <농정회요農政會要>에도 “당리棠梨, 열매는 작은 멀구슬나무(楝) 열매 같고, 서리가 내린 후 먹을 수 있다. 그 나무로 배나무 접을 붙이면 매우 좋고, 곳곳에 있다.”*****라고 했다. 당리棠梨가 배나무의 대목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산림경제>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현대에도 배나무 접목의 대목臺木으로 아그배나무나 돌배나무를 사용하는 점을 참고하면, 이 <농정회요>의 당리도 팥배나무라기 보다는 아그배나무에 가깝다.
한편, <광재물보>나 <물명고> 등에 비해 반세기가 지난 후인 1870년에 황필수(黃泌秀 1842~1914)가 편찬한 <명물기략>에는 “棠梨당리 俗訓 아가배 卽野梨也”로 나온다. 해석하자면 “당리棠梨는 민간에서 아가배라고 부르는데 곧 야리野梨이다”일 것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팟배로 불리던 야리野梨, 당리가 ‘아가배’나무로 불리게 된 것이다. 물론 야리는 좋은 품종의 배가 아니라 들판에 자생하는 배를 뜻할 것이다. 이 ‘아가배’ 나무가 바로 현재에도 아그배나무로 부르는 나무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광재물보>에는 민간에서 ‘문배’로 부르는 산리山梨가 (따서 익힌 후 먹는 배로 수檖) 따로 기록되어 있다. 이 산리山梨가 산돌배나무일 것이므로, 황필수는 당리棠梨를 아그배나무로 본 것이 거의 확실한 듯하다.
지금까지 주로 19세기 문헌을 통해, 중국에서 콩배나무와 유사한 야생 배나무를 지칭하는 당리棠梨를 우리 선조들이 어떤 나무로 이해했는지 살펴보았는데, 이 문헌들은 일제강점기의 <조선식물향명집> 저자들의 연구에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1937년에 출판된 <조선식물향명집>은 Malus Sieboldii Rehder를 아그배나무, Pyrus ussuriensis Maximowicz에 산돌배나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또한 Micromeles alnifolia Kochne에 팥배나무라는 이름을 부여했는데, 팥배나무의 현재 학명은 Sorbus alnifolia (Siebold & Zucc.) K. Koch이다.
이 <조선식물향명집>에는 이 나무들에 대한 한자명을 기록하지 않고 있지만, 정태현鄭台鉉(1882~1971)이 1943년 발간한 <조선삼림식물도설>에는 한자명이 다음과 같이 채록되어 있다.
Malus Sieboldii Rehder 朝鮮名 아그배나무, 漢子名 棠梨
Sorbus alnifolia K. Koch 朝鮮名 팥배나무 通, 산매자나무 江原, 물앵도나무 全南, 운향나무 平北, 벌배나무 江原, 물방치나무 黃海, 漢子名 杜, 甘棠, 棠梨, 豆梨
이 기록을 보면 아그배나무를 당리棠梨로 본 것은 분명하다. 한편 팥배나무는 일제 강점기 당시 한글명도 팥배나무 뿐 아니라 지방에 따라 여러가지 이름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고 한자명도 여러가지를 혼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두루 통용되는 특정 한자나 한글명이 없었던 듯하다. 물론 한글명은 <조선식물향명집> 이후 팥배나무로 정착되었다.
이제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옛 글 속의 당리棠梨는 현재의 팥배나무를 지칭했을 경우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겠지만 아그배나무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특히 늦봄에 당리의 화려한 꽃을 노래한 경우에는 더 그렇다. 왜냐하면 아그배나무는 3~6미터 가량 자라는 소교목으로 잎이 나면서 꽃이 화려하게 만발하여 꽃으로 가득한 나무 모습을 감상할 수 있지만, 팥배나무는 20미터 가량 자라는 낙엽교목으로 잎이 무성해진 다음에 꽃이 피고 나무가 커서 꽃이 피었을 때도 흰색 꽃이 푸른 나뭇잎 사이 사이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전에서 당리棠梨를 노래한 시를 만나면 ‘팥배나무’로 이해하기 전에 시가 지어진 맥락을 잘 살펴서 ‘아그배나무’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김려金鑢(1766~1821)의 담정유고藫庭遺藁에서 여러 과일을 읊은 연작 시 중 아그배나무를 노래한 당리棠梨를 감상해본다. 이 시에는 “당리棠梨는 체棣이다. 암그루는 두杜라고 하며 붉고 떫다(澁). 수그루가 당棠인데 희고 달다(甘). 스님들은 아가배(阿迦梨)라고 부른다”******라는 주석이 붙어 있어서 당리가 아그배나무임을 알 수 있다.
玉屛春已晩 옥병玉屛은 이미 늦봄인데
花滿棠棃樹 아그배나무엔 꽃이 만발했구나
韡韡暎豔彩 활짝 피어 고운 색 비치는데
濛濛釀香雨 부슬부슬 비 내리고 술은 익어가네
嘉木冠羣卉 이 좋은 나무는 초목 무리에서 으뜸이라
不獨媚村塢 시골 언덕에서 아름다울 뿐 아니지
詩人諷常棣 시인은 상체常棣를 읇조리고
征夫歌杕杜 원정간 사내는 체두杕杜를 노래하네
况復薦其實 게다가 그 열매도 추천하니
品味藐馬乳 좋은 것은 작은 포도처럼 맛있네
甘酸性各殊 달고 신 성질 각각 달라도
赤白色可數 붉고 흰 색은 셀 수 있구나.
公奭所茇憇 소공召公 석奭이 머무르신 곳이니
聖化傳南土 성인聖人의 교화가 남쪽 땅에 전해졌네
甿俗戒翦敗 백성들이 잘라 없애지 못하게 경계했으니
淳風溢邃古 순박한 풍속이 옛날처럼 넘쳐흘렀네
染綵姿質姸 채색으로 물든 자태 고운데
揉弓功施普 활을 다스린 공 널리 배푸네
阿迦梵語傳 '아가阿迦'라는 범어梵語가 전하니
淸玅契佛祖 부처님과 현묘한 맑은 인연 있다네.
이 시를 보면 김려金鑢는 당리를 ‘아가배’, 즉 아그배나무로 보고 있으며, 이 나무가 <시경>의 상체常棣와 두杜, 소공召公이 머무르며 선정을 배풀었다는 감당甘棠과 같은 나무로 이해하고 있다. 아가배의 어원이 산스크리트어에서 왔다는 기록은 흥미롭지만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1658~1721)은 <연행일기> 중, 1713년 2월 기록에서 “창고 안에 저장해 두었던 당리棠梨와 산사山査 밀전蜜煎을 얻어왔다. 당리棠梨는 크기가 오얏만하고 맛도 좋다”라고 했다. 즉, 당리棠梨 열매는 오얏, 즉 재래종 자두 크기라고 한 것이다. 팥배나무 열매는 8~12mm, 아그배나무는 6~9mm 정도이니, 여기에서 당리棠梨는 산돌배나무나 돌배나무일 가능성도 있다. 앞에서 소개한 서거정의 시에서 당리棠梨는 시인이 정원에서 화려한 꽃을 감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그배나무일 것이다. 사실 고전 시가의 작자가 어떤 나무를 보고 당리棠梨라고 했는지 확실하게 검증할 길이 없기는 하다.
<끝>
* 池邊有一棠梨樹 四月初旬始開 至十日後盛開 風流繁麗 天下無比 老物 不堪淸興 每夜 嘯詠其下 明月又佳 興復不淺 乃成二絶 – 사가집
**棠梨. 野梨之白者爲棠 味甘 ‘흰팟배’ 甘棠 野梨 仝. 杜梨 似棠而赤者爲杜 味酸 ‘팟배’ - 물명고
***棠梨 ‘팟배’ 樹似梨而小 葉似蒼朮 葉亦有團者三叉者 葉邊皆有鋸齒 開白花 結實如小楝 于大霜後可食 野梨 仝 – 광재물보
****棠梨 採花 煠熟食 或晒乾磨麪 作燒餠食 亦可 及採嫩葉 煠熟水浸淘淨 油塩調食 經霜後果熟時 摘食甚美 - 임원경제지
*****棠梨 實如小楝子 霜後可食 其樹接梨甚佳 處處有之 - 農政會要
******棠梨棣 牝爲杜赤澁 牡爲棠白甘 佛家號阿迦梨 – 담정유고
*******“庫中所儲棠梨及山査蜜煎者 頗得來 棠梨大如李 味亦好 – 연행일기
+표지사진: 아그배나무 꽃, 2024.4.14 성남 운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