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경인 May 20. 2023

봄 꽃도 향기롭고 열매도 깜찍한 노린재나무, 산반山礬

24번화신풍의 하나 산반화는? <향토문화의사랑방안동, 2024년 3/4>

얼마 전에 나는 <알고 보면 반할 꽃시>라는 책을 읽었다. 식물애호가로서 내 관심사가 우리 고전의 식물을 찾아 감상하는 일인데, 이 책이 바로 “한시로 읽는 우리 꽃 이야기”이니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울산대 교수님들(성범중, 안순태, 노경희)이 쓴, 품위 있는 장정에 “꽃다발 같은 책으로” 태학사에서 2023년 3월 초에 출간했다. 나는 이 책 소식을 듣자마자 구매하여, 책에 실린 멋진 옛 그림이며 삽화와 함께 전편을 재미있게 탐독했다. 그 중 산반화를 ‘정화椗花, 칠리향, 노린재나무꽃’이라고 설명하는 글에서는, ‘산반山礬’을 ‘노린재나무’로 이해할 수도 있겠네’라고 생각하면서 한 번 더 살펴봐야지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중국에서 말하는 소위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의 마지막 꽃바람인 연화풍楝花風에 대해 몇 해 전에 글을 쓰면서*, 나는 이 화신풍 중 하나인 산반山礬이 어떤 식물인지 알아본 적이 있었다. 산반山礬은 서향瑞香, 난화蘭花와 함께 대한大寒 절기의 세가지 꽃 소식 중 하나이며, <중국식물지>나 <중약대사전>에서는 Symplocos sumuntia (이명 Symplocos caudata)로 보고 있었다. 당시 나는 이 산반이 우리나라의 노린재나무(Symplocos sawafutagi)와 같은 속의 식물이긴 하지만 꽃피는 시기가 너무 달라서, “산반山礬은 학명이 Symplocos caudata Wall.로 노린재나무와 비슷하며”라는 주석을 달아 두었던 것이다.* 대한 절기는 양력으로 1월 하순인데, 내가 수없이 산야에서 감상했던 노린재나무 꽃은 보통 5월에 피었기 때문에 산반山礬을 노린재나무로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노린재나무 꽃 질무렵, 2023.5.13 안양 수리산 병목안 계곡


지난 5월 13일 나는 수리산 병목안 계곡을 거닐면서 오동나무, 일본목련, 괴불나무, 산딸기, 국수나무, 층층나무 등의 꽃을 감상하고, 벌써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 산사나무며 비목나무, 올괴불나무, 야광나무, 보리수나무 등을 감상했다. 솜털을 달고 있는 갯버들 열매, 유서柳絮는 벌써 다 지고 있었으니, 계절은 여름을 향해 쏜살같이 달리고 있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꽃이 일찍 피는 셈인데, 산책로 곁에서 만난 노린재나무도 꽃이 한창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이 노린재나무 꽃 사진을 정리하면서 다시, ‘우리나라 조선시대 문인들이 정말로 산반山礬을 노린재나무로 이해했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겨 각종 문헌을 다시 살펴보았다.


<본초강목>의 山礬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산반山礬. 이름 풀이. 운향芸香, 정화椗花, 정화柘花(柘- 음音 정鄭) 창화瑒花(음音 창暢), 춘계春桂, 칠리향七里香. 운芸은 풍성하고 많은 것이다. 이 식물은 산야에 떨기로 자라고 많으며, 꽃이 풍성하고 향기롭기 때문에 운향芸香이라고 했다. … 황정견黃庭堅(1045~1105)이 “강남江南의 들판에는 정화椗花가 아주 많다. 시골 사람들이 잎을 따서 태워 재로 만들어 자주색을 물들여서 검푸른색으로 만드는데 명반(礬)을 빌지 않고서 한다. 사람들이 이 때문에 이름을 바꾸어서 산반山礬이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 산반은 강江, 회淮, 호湖, 촉蜀의 들판에서 자란다. 나무 중에 큰 것은 높이가 한길 정도이다. 잎은 치자 잎과 비슷하고 마주나기가 아니며 광택이 있고 질기고 빳빳하다. 대개 톱니가 있고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다. 3월에 눈처럼 풍성하고 흰 꽃이 핀다. 노란 꽃술이 여섯 개 나오는데 매우 향기롭다. 크기가 산초 같은, 검푸른색 열매를 맺는다. 익으면 노란 색이 되고 먹을 수 있다. 잎은 맛이 떫다. 사람들이 채취하여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두부豆腐에 넣는다. 간혹 차(茗)에 섞어 넣기도 한다.”**


검노린재 꽃, 2018.5.13 순천 -- 꽃이 풍성하다. 눈송이가 뭉쳐진 것 같기도 하다.
검노린재 꽃, 2018.5.12 보성 오봉산에서


<중국식물지>에서 산반山礬은 2~3월에 꽃이 피고 6~7월에 열매가 열린다고 설명하고 있으므로, 중국 남부지방에서는 대한이 지나고 입춘 무렵에 꽃이 필 것이다. 한편, 낙엽지는 나무로 우리가 노린재나무로 부르는 Symplocos sawafutagi는 <중국식물지>에 유리백단琉璃白檀이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는데, 속명俗名으로 유리산반琉璃山礬도 적고 있어서 노린재나무와 산반山礬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문헌을 살펴보면, <물명고>에서, “산반山礬. 나무 크기는 한 길 정도이다. 잎은 치자와 비슷하고 광택이 있으며 질기고 빳빳하다. 대개 톱니가 있고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다. 정월에 눈처럼 흰 꽃이 핀다. 노란 꽃술이 여섯 개 나오며 아주 향기롭다. 크기가 산초 만한 열매를 맺으며 검푸른색으로 생겨서 노랗게 익는다. 운향芸香, 정화椗花, 정화柘花, 탕화瑒花(瑒- 음音 탕宕), 춘계春桂, 칠리향七里香, 옥예玉蕊, 경화瓊花와 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광재물보>****와 <명물기략>*****에도 거의 같은 내용의 설명이 실려 있다. 이는 <본초강목>의 산반 설명을 축약한 것이고 모두 산반을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凌冬不凋) 나무로 기술하고 있어서 노린재나무라고 볼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어휘집을 편찬한 한글학자 유희柳僖(1773~1837)나 황필수黃泌秀(1842~1914)가 산반을 노린재나무로 이해한 정황은 발견하기 어렵다.


노린재나무 수형, 2022.5.5 운길산


이제, 조선시대 문인들은 산반山礬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본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손자인 김수증金壽增(1624~1701)은 <곡운집谷雲集>에 실린 ‘화음동지華陰洞志’에서 산반山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암자의 남쪽 창 계단 아래에 원래 산반화山礬花 한 떨기가 있어서, 암자를 지을 때 북돋우어 심었다. 푸른 잎은 동글동글하고 4월에 꽃이 핀다. 화방花房은 조밥 알갱이를 꿴 듯 아주 세밀하고 눈처럼 흰 색인데, 맑은 향기가 자욱하게 난다. 푸른 구슬 같은 열매가 줄줄이 맺힌다. 이 꽃은 산과 들판 사이 곳곳에 있고, 옛 사람의 기술記述이나 읊은 시에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꽃이 가품佳品임을 알지 못한다.”******


노린재나무 열매, 2021.7.10 청계산 -- 오리 주둥이 모양의 작은 열매가 줄줄이 달려있다.

김수증은 화악산 북쪽 계곡에 자라던 나무 하나를 산반화山礬花로 일컬으며 옮겨 심고서, 이 꽃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이 산반화가 곧 우리나라 산야 곳곳에 자라는 노린재나무임을 알게 해 준다. 한편, 김수증의 조카인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1658~1721)도 산반山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功卽山礬狀玉蘂            쓰임새는 산반山礬이고 모양은 옥예玉蘂인데

佳名不一亦何妨            아름다운 이름이 하나 아닌 들 무슨 상관이랴

春深芬馥遍山野            봄 깊어 진한 향기 산과 들판에 퍼지니

又爾宜稱七里香            너를 또한 칠리향七里香으로 부르노라


野有幽花世莫聞            들판에 그윽한 꽃 있어도 세상이 몰라주고

叢榛苞櫟與爲羣            개암나무 상수리나무 떨기와 한 무리를 이룬다

染家只解充礬用            염색하는 사람들, 명반明礬으로 쓰임은 알고 있으나

玉蘂芸香誰更分            옥예玉蘂와 운향芸香은 누가 다시 분별하랴


노가재 김창협의 시 산반 - '노론재'라는 민간에서 부르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한국고전종합DB)


이 시는 ‘산반山礬’이라는 제목으로 <노가재집老稼齋集>에 실려 있는데, “민간에서 ‘노론재老論材’라고 한다. 일명 칠리향七里香, 일명 운향芸香, 일명 옥예화玉蘂花.”*******라는 주석이 붙어있다. 이렇게 민간에서 ‘노론재老論材’라고 불렀다는 기록과 시의 내용으로 보아, 김창업이 노래한 산반은 노린재나무임이 분명하다.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서는 노린재나무를 Palura chinensis Nakai var. Pilosa Nakai로 기록했다.******** 1943년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는 노린재나무의 한자명으로 ‘우비목牛鼻木’을 기재했다. 그리고, 검은재나무(Bobua prunifolia (Sieb. & Zucc.) Nakai)에 산반山礬이라는 한자명을 기록했다. 노린재나무속에 속하는 검은재나무(Symplocos prunifolia Siebold & Zucc.)는 상록교목으로 현재 제주도의 계곡부에서 매우 드물게 자란다. 즉,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정태현은 <본초강목>과 <물명고> 등에서 산반山礬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凌冬不凋)’나무라고 한 점을 고려하여 우리나라 제주도에 자생하는 상록 소교목 검은재나무에만 산반이라는 이름을 부여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여기에서도 노린재나무속(Symplocos) 나무를 산반으로 본 흔적은 남아있는 셈이다.


상록 소교목 검은재나무, 2020.11 제주도


이러한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조선시대 문헌에서 우리나라에 자라는 나무에 대해 산반으로 기록하고 있으면 이를 노린재나무로 봐도 틀림이 없다. 마지막으로 안동 선비 서소書巢 김종휴金宗烋(1783~1866)가 ‘언덕의 봄 꽃 (冪岸春花)’을 읊은 시 한편을 감상한다.

 

躑躅臙脂色        철쭉 꽃은 연지처럼 붉고

山礬滚雪白       노린재나무 꽃은 눈발처럼 희네

烟雨足繁華       안개 비가 화려한 꽃을 적시고

淸香來月夕       맑은 향기 달 밤에 풍겨오네


노린재나무 (좌) 꽃, 2022.5.5 운길산, (우) 열매, 2018.7.14 괴산


노린재나무는 5월에 피는 꽃도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지름 6~7mm 정도로 9~10월에 남색으로 익는 열매도 오리 주둥이 모양으로 깜찍하여 관상용으로 좋다. 노린재나무는 사철 푸른 중국의 산반山礬과는 달리 낙엽 관목 또는 소교목으로 2~5m까지 자라며, 우리나라 전국의 산지에서 비교적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Symplocos속 나무로 노린재나무, 검은재나무 외에도 제주도의 섬노린재(Symplocos koreana)와 남부 지방의 검노린재(Symplocos tanakana)가 있다. 지금도 산 속에는 노린재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가까운 청계산이라도 올라야겠다. <끝, 향토문화의사랑방안동, 2024년 3/4월호, pp.74~81.>

---------

* https://brunch.co.kr/@783b51b7172c4fe/52 

**山礬 釋名 芸香(音云) 椗花(音定) 柘花(柘音鄭) 瑒花(音暢) 春桂 七里香. 時珍曰 芸盛多也 此物山野叢生甚多 而花繁香馥故名 … 黃庭堅云 江南野中椗花極多 野人採葉燒灰 以染紫爲黝 不借礬而成 子因以易其名爲山礬 … 時珍曰 山礬生江 淮 湖 蜀野中 樹之大者 株高丈 許其葉似巵子 葉生不對節 光澤堅強 略有齒 凌冬不凋 三月開花 繁白如雪 六出黃蕊 甚芬香 結子大如椒 青黑色 熟則黃色 可食 其葉味濇 人取以染黃及收豆腐 或雜入茗中 – 本草綱目

***山礬 樹高丈許 葉似梔子 而光澤堅強 略有齒 凌冬不凋 正月開花 潔白如雪 六出黃蕊. 甚香 結子大如椒 生靑黑熟黃. 芸香 椗花 柘花 瑒花(瑒音宕) 春桂 七里香 玉蕊 瓊花仝 – 物名考

****山礬 樹高丈許 葉似巵子葉 而堅強 略有齒 凌冬不凋 春花繁白如雪 六出黃蕊. 甚芬香 結子大如椒 黃黑色. 芸香 椗花 柘花 瑒花(瑒音宕) 春桂 鄭礬 七里香 – 廣才物譜

*****山礬 산반 樹之大者 株高丈許 其葉似巵子 葉生不對節 光澤堅強 略有齒 凌冬不凋 花白如雪 六出黃蕊 甚芬香 採葉燒灰 染紫 不借礬 臧書辟蠹. 芸香 椗花 柘花 瑒花(瑒音宕) 春桂 七里香 – 名物紀畧

****** 菴之南窓階下 本有山礬花一叢 作菴時 因而封植 翠葉團團 四月發花 花房極細 如綴粟粒 色白如雪 淸香濃郁 結子纍纍若靑珠 此花山野間處處有之 見於古人記述吟詠 而我東人 不知其爲佳品也 - 谷雲集/華陰洞志. 화음동지華陰洞志 첫머리에는 “화악산華嶽山 북쪽에 골짜기가 있다. 맑고 그윽하며 멀리 떨어져 있어서 티끌 하나도 올 수 없는 곳이다. 내가 이름을 화음華陰이라고 짓고 개울은 백운白雲이라고 했는데, 정사精舍에서 서남쪽으로 4~5리 떨어져 있다. 내가 경술庚戌(1670)년에 곡운谷雲을 점유하고 정사精舍를 경영했다. (華嶽之北有洞焉 淸幽夐絶 一塵不到 余創名之曰華陰 溪曰白雲 去精舍西南四五里 余於庚戌 占谷雲 經營精舍)”라고 하여, 화음동의 위치와 기문 작성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山礬 俗名老論材 一名七里香 一名芸(香) 一名玉蘂花 - 老稼齋集 …

.********현대에는 이 학명을 일본과 중국에 분포하는 Symplocos paniculata Miq. (검노린재나무와 유사, 중국명 일본백단日本白檀, 화산반華山礬)의 이명으로 보고 있다.

% 조선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황회목黃灰木은 ‘누런 재(黃灰)로 물들인 무명’을 뜻하는 경우가 많아서, ‘노린재나무’를 가리키는지는 문맥을 잘 살펴야 한다.

+표지사진 - 노린재나무 꽃, 2022.5.5 운길산

이전 04화 봄을 장식하는 꽃나무 당리棠梨가 팥배나무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