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3.
2022.1.23.
지금은 5시 38분. 일요일. 편안한 하루다. 12시간을 내리 잤다. 보통 자기 전에 누워서 핸드폰 많이 보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거대한 프레스기에 깔리듯 극도로 졸린 상태를 극복하지 못한 채 눈을 붙였다. 여러 가지의 꿈을 꾸었지만, 마지막 즈음의 장면을 제외하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전 여자 친구가 나왔고, 우리는 헤어진 상태였고, 무슨 성 같은 곳에 있었고, 무언가를 하려다가 내가 주저하며, 그렇게 꿈이 끝나고 눈을 떴다.
내일은 대학원 사람들이랑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휴학 직전 했던 전시를 끝으로 한 2년 만에 만나는 거다. 친했던 사람들 전부와 만나는 건 아니지만, 가장 많이 보았던, 정이 깊었던 사람들과 만나는 거다. sns로만 가끔 연락한 게 전부인데, 연락할 때마다 얼굴 꼭 보자! 며 마무리를 지었었는데, 지난주인가 불쑥 시간 되냐는 dm을 받았다. 안 본 사이, 나의 일들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불러주는 게 어디냐 싶어 승낙했다.
일어나서 멍한 상태로 침대에 반쯤 앉듯 누워있는데, 만날 장소의 주소를 받고 방어회나 꼬막 비빔밥 괜찮냐는 물음을 받았다. 카톡으로. 해산물은 항상 오케이기 때문에, 물어보실 필요도 없다고 답했다. 숙취가 심한 타입이라, 술을 먹는 건 반가우면서도 무섭다. 하지만 간혹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한 잔 하는 건 꽤 즐거울 거 같아서, 기대 또한 하는 중이다. 만나는 사람 중 한 명의 집으로 가기 때문에 가기 전에 뭐, 두루마리 휴지라도 사가야겠다.
오늘은 정말 느긋하게 하루를 보낸다. 일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그냥 다 놓고 있다. 어차피 오늘 중에 하긴 할 거다. 진한 블랙커피와 생강차, 쌍화차를 마셨다. 중간 중간 물도 계속 마셨다. 활력 홍삼도 먹었다. 비타민c, 종합 비타민, 아연, 오메가3도 챙겼다. 여러 책을 조금씩 봤다.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 총균쇠,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보았다. 오늘은 책 보는 재미가 쏠쏠한 하루다.
영화도 보고 싶은데, 자전거도 타고 싶은데, 일 할 시간을 마련하려면 어떡할지 고민이다. 둘 중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하나. 내일 놀러가기 때문에 좀 부지런하게 할 필요가 있는데, 고민이다. 자전거를 조금만 타고 오는 것도 방법이다. 꼭 특정 거리를 달려야만 하는 의무는 없다. 나 같은 운동 부족에게는 타러 나간다는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한 거다. 바깥 공기를 쐬고 저 앞까지 멀리 주시하고 초점 맞추는 건 꽤나 매력적인 일이다. 피가 제대로 도는 기분이다.
보고 싶은 영화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님포매니악, 또 하나는 러브레터. 님포매니악은 라스 폰 트리에의 우울 시리즈를 보고 싶은 마음에, 러브레터는 본 적은 없지만 왠지 보면 마음이 포근해질 것만 같아서. 추운 겨울에 따뜻한 마음이 생길 것만 같아서, 스틸컷의 이미지를 보았을 때, 그래서 보고 싶다. 영화를 볼지 못 볼지 모르지만, 이번 주말에 하나는 분명 포기해야 한다. 어차피 다음 주 설 연휴 때, 오늘 포기한 것을 보게 될 거겠지만.
책상 의자로 10년 넘게 사용한 회전의자가 있는데, 아무래도 허리에 안 좋은 것 같아, 원래 책상과 세트였던 나무 의자로 바꾸었다. 바퀴도, 팔걸이도 없는 튼튼한 의자인데, 오히려 훨씬 편하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점, 높이가 책상과 잘 어울리는 점에서 꽤 만족스럽다. 그리고 엉덩이가 딱딱한 것도 나름 매력이 있다. 단단한 지지체에 몸을 맡긴다는 안정감이 든다. 진작 바꿀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럽다. 오늘은 이런 작은 기쁨이 많다.
일을 시작하고 매주 휴일이 돌아올 때마다, 쉬는 방법이나 회복 양상이 다르다. 점점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이런 변화에서도 소소한 기쁨, 뿌듯함을 느낀다.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대신 쉬면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는다. 그런 활동을 하며 머리를 쓰고, 활기찬 회복을 돋운다. 스트레칭과 환기도 주기적으로 하면서 기분 전환도 하고. 아, 근데 방 청소는 안 했다. 그건 너무 귀찮아서. 오늘의 난, 선택적으로 바지런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리스트를 적지 않아도 해야 할 일들, 할 일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정신이 뚜렷해진 느낌이다. 슬슬 그런 일들을 조금씩 해나가야겠다, 시동 걸어 놓아야지. 점점 하늘이 어둑해진다. 늦게 하루를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게으른 하루를 보내진 않겠다. 남은 시간 동안 부지런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야지. 기분이 좋은 하루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러 가질 시도해보고, 그런 시도만으로도 기쁠 수 있다니, 앞으로도 맞이하고 싶은 하루의 마음씨다. 오늘은 여기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