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물을 주듯

2022.1.21.

by 와이와이

2022.1.21.


어제의 일기가 하루 종일 생각난다. 그리고 그 녀석도. 어찌 보면 어제의 일기는 나의 바닥을 여실 없이 드러내는 증명장이나 다름없게 보인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권태를 느꼈었던 과거의 여러 지점들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나의 단점들이 그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에 많이 나타났던 것 같다. 사람으로서, 선생으로서 큰 그릇은 못 되는 자신이라고 다시 생각해 본다.


미안하다. 사실, 내가 조금 더 대처를 잘 했다면, 더 능숙하게 아이를 다룰 능력이 있었다면, 걔는 그러지 않았을 거다. 나의 넓은 마음 씀씀이랍시고 편하게 대해주었던 태도가 그 애의 입장에선 그저 방임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수업의 체계에 대해, 아이의 적응 시간에 대해 고민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마음 한 구석 바닥에 나뒹군다.


금요일 수업에서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던 한 아이가 있었다. 걔는 인제 8살이 된, 어린 아이다. 어제의 친구와 닮은 점이라면,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굉장히 강해서, 시도보다 말이 앞선다는 점이 있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그런 아이들을 보았을 때, ‘지 주제도 모르면서 말만 많네’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건 이해가 아니라 판단이지.


그런 유형의 친구들일수록 더욱 인정해주고 수용해주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원장 선생님이랑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이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그 과정에서 라포를 쌓으며 더 좋은 관계로 성장시키는 게 요지라 느껴졌다. 그리고 작업 과정을 작성하는 시간을 갖고, 계획성을 기반으로 한 작업 방식을 익숙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단 것도.


금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수업이 어려운 날이다. 연령이 낮고 인원이 많으며 수업도 풀로 뛰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엔 열과 성을 다 하며 진행하였지만, 3주차에 접어드니 체력의 고갈로 모든 것을 불사르며 시간 보내는 게 벅차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아이들이 주도해서 작업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내가 보는 시각에서의 완성도 추구보단 아이의 마음을 우선으로.


거기서 나는 그저 방법론적인 제안, 제시와 협조만 해주면 되는 거였다. 아이가 불만을 호소할 이유도 없었다. 왜냐하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니까. 나는 다만 그것의 실현 과정에 활기를 넣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하였더니, 아이들의 만족감은 높고 내가 편해지는 효과가 생겨난 것 같았다. 걱정했던 것보다 덜 힘들었다.


다음 주 목요일이 오기 전까지, 수업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해봐야겠다.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고 적응하는 과정을 계속 갖는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형태로 수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를 하겠단 생각에서 수업 걱정을 하는 지금으로의 변화에 기분은 멍하다. 하지만 이게 나에게 맞는 것 같다는 확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일은 토요일이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 어서 자고 활기찬 아침을 맞이해야지. 당황하지 말고, 아이를 기다리는 선생이 되고 싶다. 직업에서 느끼는 보람을 위해, 앞으로 이 일을 꾸준히 지속하기 위해, 그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해. 나중에 이 일을 관두더라도 사람으로서 나에게 좋은 양분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나무에 물을 주듯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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