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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다 Jan 13. 2021

하루이레 #2 내가 더 힐링할 거야!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한 제언

1

우리들은 경쟁에 익숙하다. 

더 이상 춤을 추고 싶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 카렌의 빨간구두와 같다. 

어쩌면 우리는 경쟁에 지쳐 있지만, 이제는 경쟁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2

작년 상반기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힐링 게임 '동물의 숲'이 가져온 열풍은 이러한 세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동물의 숲’은 작은 섬에서 나무를 심어 과일을 따거나, 꽃을 심고, 낚시를 하는 게임이다. 잔잔한 BGM을 듣고 있으면 마음도 평온해지고, 들릴 듯 말듯한 의인화된 주민들의 목소리마저도 정겨운 게임이다. 그리고 엔딩이 없는 독특한 게임이다. 

그런데 다수의 한국 이용자들은 본인이 소유한 섬에 별 다섯 개의 평판을 얻기 위해 고득점 루틴을 짜고, 게임 내에서 좀 더 부자가 되기 위해 매주 시세가 변동하는 채소만 심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주민 순위가 있고 인기 없는 주민을 구타(?)해서 쫓아내는 방법까지 동원한다.

그래서 한동안 유행했던 말이 있다.

내가 더 힐링할 거야!


세상에 힐링에도 경쟁이 붙는다니! (근데 왠지 나도 더 힐링하고 싶다!!!)


3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중학교 시절 절친했던 C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친구의 취미는 영화 엽서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본인이 본 영화의 엽서를 모으는 것이었다. 그것에 자극받은 나는 동네는 물론 교보문고와 영풍문구까지 싹 돌아다녔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200장이 넘는 영화 엽서를 모았다샀다. 

그리고 그 친구를 집에 데려와 자랑했다. C는 내게 “넌 친구도 아니야!”라는 말을 했다. 그 후 그 친구는 영화 엽서 모으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 또한 왠지 흥미를 잃어서 더 이상 영화엽서를 모으지 않았다. 

그 후 가끔 C가 생각나면 연상작용으로 영화엽서 사건이 떠올랐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사자와 연락이 두절되어, '그 아이와 더 친해지고 싶었던 것'으로 나와 극적으로 타협하고 더 이상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나는 세상 편한 사람이다.)


4

같은 선상에서 한국인들에게 여행은 경쟁이 아닌가 싶다. 

<내가 더 많이 다닐거야!>, <내가 더 맛있는 것을 먹을 거야!>라는 듯이 SNS에는 여행과 맛집 경쟁의 장이 되어 있다. 쉽게 접근할 수 있거나, 가까운 곳에서 맛볼 수 있는 맛집보다는 접근하기 어렵고, 먹기 힘든 곳이 더 각광받는 이유도 그것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내 경우에 여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려서부터 캠핑과 낚시와 산행을 다녔다. 백반을 이용해 뱀을 쫓는 방법이나, 낚시하는 방법, 각종 나무의 이름을 배웠다. 엄마는 쑥을 캐는 법과 미나리가 자라는 곳, 냉이가 어디에 좋은지 알려주고 잔대를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근교를 나가는 것도 매우 빈번했던 일이다. 그럴 때면 엄마는 씻어서 담가 놓은 쌀과 듬성듬성 썰어놓은 돼지고기와 가위로 대강 자른 김치, 그리고 양념을 코펠에 넣어 채비했다. 10분이면 언제든 출발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힘들다면 라면 하나만 있어도 밖에서 먹으면 더 맛있다! (그런 이유 덕에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은 반항할 겨를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가장 행복한 여행 중 하나는 아버지는 망둥어 낚시를 하고 계셨고, 엄마는 해풍을 맞은 쑥을 캐고 있었고, 나는 아버지 차에서 라디오를 켜 둔 채 책을 읽었던 날이다. 가끔 삶이 닭가슴살이나 돼지 뒷다릿살처럼 퍽퍽한 날에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안정을 찾는다. 


5.

남보다 더 나은 곳에 가야 하고, 더 맛있는 것을 먹다 보면 그런 행위들은 특별한 것이 되어버린다. 비일상화 되어버린 것은 욕망의 불충족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나만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나만 없어 고양이>처럼 말이다. 그것이 불행의 단초이다. 

그리고 종종 '여행이 꿈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여행은 꿈이 되어서는 안 된다. 

꿈은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을 설정해야 하고, 죽는 날까지 꿈의 파편을 먹으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꿈이 크면 그 파편도 크다는 말도 잊지 말자.  ('내가 더 큰 꿈을 가질 거야.' 하는 흑우는 없어야 할 텐데 말이다. )


누구나가 부러워할 만한 멋진 곳과 맛있는 음식보다, 오롯이 내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순간이 여행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을 오롯이 담는 것이 중요하다가 믿는다. 그 추억들이 언제가 우리를 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삶의 연속일 뿐이다. 


0.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승부욕이  강해서 가끔은 '지는 것이 싫어서 져버리는' 사람이었다. 절친한 친구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동물의 숲을 플레이하면서 경쟁했다. 전국을 돌아다니고, 곳곳의 맛집을 섭렵하려 했다. 좋은 옷과 좋은 차를 내 가치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런데 거기에 진짜 나는 없었다. 제주로 귀향을(?) 온 것도 그런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훈장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칫 세류에 휩쓸려, 내 목소리를 잊을지 모를 나를 위한 제언이다. 다시 한번 내게 말한다.

여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야, 그저 삶의 연속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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