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해월 Feb 21. 2024

글쓰기의 악몽에 대하여

동백나무, 그때 저에게 왜 그러셨나요?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을 2023년 목표로 두고 열심히 여행글을 적었지만, 금방 흥미가 떨어졌다. 

"누구를 위한 글을 써야 하지?"라는 생각이 시작된 이후로 쉽게 글이 써지지 않았다.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나 감도 안 잡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말할 용기가 생겼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컴퓨터로 달려가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래서 적는 첫 번째 글이 바로 


글쓰기에 악몽에 대하여

 글을 시작하기 앞서 먼저 말해둘 것이 있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대안학교를 다녔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글에서 드러나는 특수한 상황들을 독자들이 미리 이해해 주길 바란다. 물론 친절하게 설명하며 적도록 하겠다. 


작은 나무, 그때 저에게 왜 그러셨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까? 나는 학교에서 글쓰기 숙제를 받고, 무슨 글을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숙제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책을 읽고 주인공에게 공감되는 부분을 찾고, 그와 비슷한 나의 사례를 적어오시오] 일반학교에서는 '국어'와 같은 과목인 '말과 글' 수업의 숙제였다. 


나는 책 속에서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주인공의 모습에 크게 공감했다. "이거다" 싶었다. 공통점을 찾고 나니 글을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별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재밌다고 느꼈다. 


그렇게 내가 쓴 글은 솔직할까 말까 고민한 흔적도 없이 대단히 솔직했다. 할머니가 나를 어떻게 차별하고, 상처를 주었는지에 대한 글을 썼다. 할머니는 네게 매번 친오빠와 비교하며 잔소리를 하고, 또래 친구들보다 통통하던 나에게 친구의 손녀 이야기를 해주며 마르고 예쁜 아이에 대한 자극을 심어주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불편했다. 엄마의 엄마니까 싫어할 수는 없고, 조금 많이 불편했다. 살찐 나는 사랑받을 자격도 없구나 싶었다. 


나의 솔직한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동백나무 (선생님, 30대 후반, 여)에게 주었다. [*저희 학교에서는 선생님들 모두 별명을 사용합니다.] 동백나무는 작은 체구에 하얀 얼굴, 긴 눈꼬리를 한, 우리 학교 말과 글 선생님이었다. 성격은 꽤나 깐깐하고 까칠하다고 듣긴 했지만, 그 이야기를 한 모든 아이들이 수업태도도 별로고 장난꾸러기였기 때문에 믿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 수업시간에 시끄러운 친구들에게 경고를 주는 모습은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선생님이 싫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시간은 좀 달랐다.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좀 더 빠르게, 세 번째 정도로 숙제를 내고 돌아가려는데 동백나무가 나를 불러 세웠다. 


"해월아 네가 쓴 글을 선생님이 읽어줄 테니까 한번 들어봐. 숙제 못 한 친구들도 들어봐"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우물쭈물 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이후 동백나무는 내가 쓴 글이 너무 좋다며 아주 좋은 예시가 되겠다고,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내가 쓴 글을 듣는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지금 생각하면 순수한 눈망울인 것 같지만, 그때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읽혔다. 

사실 별 이야기도 아니지만,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내가 할머니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하는데, 내가 할머니에게 사랑받지 않고, 차별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괴로웠다. 

대게 모든 할머니는 손주를 예뻐하는데, 특수하게도 예뻐하지 않는, 공식적으로 별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길고 길었던 동백나무의 글 낭독이 끝나고, 나의 고개는 떨궈졌다. 

동백나무는 네게 글의 맞춤법을 지적하며 피드백을 해주었지만, 나는 멘털이 나가 멍하니 창밖만 바라봤다. 


"허락도 없이 나의 글을 친구들 앞에서 읽다니" "다른 친구들 글을 안 읽었으면서" "이것이 또 다른 차별 경험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들었다. 참 서러웠다. 나는 늘 선생님을 믿었기에 검사받는 일기에도 솔직한 언어를 쓰고, 글쓰기 주제가 어떻든 솔직한 글쓰기를 선택했는데, 글쓰기로 창피한 감정을 느껴보니 눈물 날 만큼 서러웠다. 


서러운 마음에는 동백나무가 모르는 이야기가 더 있었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 한 이후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같은 반 아이들 속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한 반에 12명, 남 8 여 4] 물건을 빼앗기고, 도둑으로 몰아가고, 어깨를 치고 가고, 심한 괴롭힘은 없었지만 괴로웠다. 


 그런 와중에 글쓰기 수업은 네게 해방감을 주었다. 특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이야기들을 선생님과 나만 공유한다고 생각하니 글 쓰는 행위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동백나무가 말과 글 선생님이 아니었을 때는 글쓰기 수업만 기다릴 정도였다. 


그렇기에 동백나무가 나의 글을 아이들 앞에서 읽었을 때, 나는 서러움보다도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나는 학교에서도, 집 안에서도 공식적으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해월"이 되었구나 싶었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더 이상 솔직한 글을 적지 않았다. 가끔은 상상 속 이야기를 적거나, 엄마가 전화할 때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적기도 했다. 하지만 5학년이 되었을 때 조금씩 마음을 회복하였고, 그리하여 오랜만에 솔직한 글을 써냈지만, 이번에는 동백나무가 나의 글을 외부 문집사에 보내는 바람에, 그것이 당선이 된 바람에 아이들이 아닌 모두에게 내 글이 공개되었다. 


동백나무는 네게 나의 글이 실린 문집을 전해주며, 아이들 글을 많이 보냈는데 너의 글이 뽑혔다며, 축하한다고, 앞으로도 글을 많이 써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집에 실린 내 글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나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나의 글을 보는 건 참 싫은데, 어른들이 내 글을 읽는다고 상상하니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글을 쓰고 축하받을 수 있다는 게 심장을 간질거리게 했다. 


한번 더 문집에 글을 보내고 싶었다. 


임해월 /  2024. 02. 21. 수


문집에 실린 글은 엄마를 속이고 몰래 아빠와 어묵을 먹은 이야기다. 이후에도 엄마가 우리에게 풍기는 어묵 냄새를 맡고 추리를 했지만, 아빠와 내가 아주 뻔뻔하게 엄마를 속였다. 나는 그 과정을 모두 글로 담았다. 이 글을 읽은 엄마는 아주 크게 웃었다. "내 촉이 맞았네!!! 너는 배우를 해라!" 하면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