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젝트가 멈추었다. 2주간 느낀 배움과 지혜들에 대하여.
눈부시게 행복한 순간을 스치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곳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다면, 지금 순간은 없을 거라고.
이 순간으로 인해 만들어질 수많은 미래도 없을 거라고.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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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 12월부터 준비하던 영화 제작 프로젝트를 잠시 멈추었다. 원래대로라면 3월에 촬영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만들어진 불상사가 감당이 어려웠으며, 또 제작지원 문제와 새로운 팀원의 조언으로 프로젝트가 잠시 중단되었다.
나는 원래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힘들어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영화를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마음이 아프게 뭉치는 기분이 들었다.
'왜 잠시 멈춰야 했을까?'
영화 제작 프로젝트가 중단되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는 많았지만, 막연하게 멈추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나는 그 마음이 궁금했다.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돈으로 엮인 관계들을 관리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 잘하고 싶은데 잘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분노, 자괴감, 등등 많은 감정들이 뒤섞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모든 순간이 좋을 수는 없다. 그건 너무나도 잘 알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모든 순간이 숨 막히고 괴로운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다.
영화 일을 시작하고, 당연히 영화감독이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잘 생각해 보니 나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 보다도, 영화로 세상에서 인정받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군을 달고 싶던걸 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는, 시나리오 작가 일 까지만 해야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다. 이것을 영화 연출을 준비하면서 깨달았다. 글쓰기는 한 번도 미운적이 없었고,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제작의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것은 무리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프로젝트가 2주간 중단된 상황에서 잠시 강원도로 떠나왔다. 그러다 갑자기 세상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누군가의 인정은 나의 꿈이 아닌, 사회집단 모두가 무의식 속에서 누르고 있는 강렬한 욕망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도 그런 욕망을 느끼곤 하지만, 모르는 다수가 나를 인정해 주는 것 보다도,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만으로도,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사랑을 노래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기록하는 행위만으로도, 사무치게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잠시 떠나온 강원도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특별한 마음을 배우고, 따뜻한 온기를 나눠 받았다.
이것이 잠시 중단된 2주라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느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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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서울로 돌아가기 전날이다.
영화를 끝내고, 여름에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무한한 사랑과 가능성의 에너지를 충전받았다.
내가 서울로 돌아가서, 영화감독으로서, 인간 임해월로도 더 편안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나는 잘될 거고, 무언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이 네게 다른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 거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나는 늘 그 이유를 마음으로 알아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