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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호 Oct 21. 2023

자연농법의 계보

자연농법은 후쿠오카 마사노부에 의해 처음으로 주창된 농법이다. 생산성보다 자연에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농법이다. 그는 천 년 전의 농업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했다.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최대한 자연에 기대어 농사를 짓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이 4 무농법(무경운, 무제초, 무비료, 무농약)이다. 특히 그에 의해 주창된 땅을 갈지 않는 '무경운 농법'은 동서양의 농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호주에서는 퍼머컬쳐(Permaculture),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미국에서는 농업생태학(Agroecology)으로 개념이 전이됐다. 

퍼머컬쳐는 지속가능한(Permanent)이라는 단어와 농업(Agriculture)의 합성어다. 퍼머컬쳐는 1970년대 빌 몰리슨(Bill Mollison)에 의해 주창됐다. 후쿠오카의 자연농법 개념이 호주로 넘어가서 개화됐다. 


자연농법은 최대한 게으른 농법이다. 그러나 방치하는 농업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자연농법을 잘하려면 자연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그는 미국에 가서 좋은 목초지가 왜 사막이 되어가는지, 땅이 고갈되어 가는 원리를 강연했었고, 아프리카에 가서는 씨앗을 진흙 경단으로 만들어 뿌리는 사막녹화의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는 도심의 잔디 키우기처럼 비료를 주고 키운 다음 풀을 깎아서 버리는 '약탈농업'을 최대한 경계했다. 자연이 순환하도록 내버려 두면 땅을 황폐화시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가와구치 요시카즈에 의해서 그의 정신은 계승되고 있다. 후쿠오카의 '무위자연'식 농법을 개량하여 생산성을 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화학농업에 환멸을 느끼고 자연농법을 받아들였다. '아키메 자연농학교'를 열어 자연농법 교육을 하고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조한규를 자연농법의 효시로 볼 수 있다. 그는 수원 농고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전역을 돌며 농업을 연구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자연농법을 널리 알렸다. 나도 젊었을 시절, 폐교를 빌려서 일주일간 합숙하며 가르치는 그의 연찬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벼, 채소재배, 양계와 양돈 등 모든 농업에 적용할 수 있는 자연농업을 전국에 퍼뜨렸다. 그가 주창한 '토착 미생물'의 개념은 혁신적이다. 농업의 핵심은 땅심을 살리는 길이고, 그러기 위해서 토착미생물을 번식시켜 이용하는 방법을 널리 알렸다. 

농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그의 농법은 자본주의 논리 앞에 좌절됐다. 박사학위를 가진 농대교수들이 가르치는 관행농업은 여전히 높은 벽이다. 

지금은 아들이 이어받아 '자닮'이라는 농법으로 널리 퍼졌다. 그는 초저비용으로 유기농업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자닮 오개닉 농법(Jadam Organic Farming), 천연농약 산야초 100선(100 Herbs, Jadam Natural Pesticide) 등의 영문판도 있어 전 세계에 한국의 자연농법을 알리고 있다.  


후쿠오카의 자연농법이 한국에 널리 퍼진 것은 후쿠오카의 이념을 그대로 실천해 온 최성현의 공이 크다. 후쿠오카의 자연농법 철학에 매료되어 평생을 자연농법 실천과 책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짚 한 오라기의 혁명, 자연농법 등의 책을 번역했다. 최근에는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책도 번역, 소개했다. 그는 강원도에서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무위자연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자연농법에 관심이 많아서 신문사를 그만둔 후 와이오밍 대학(University of Wyoming)의 학부생으로 다시 들어가 농업생태학(Agroecology)을 전공했다.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자연농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교공부는 농법보다는 식물학, 곤충학 등 생태학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땅을 갈아엎지 않고 잡초를 뽑아내는 로봇을 이용하는 농법, 농업용수를 절약하는 관개법, 휴경지를 두어 땅심을 올리는 방법 등 자연농법이 서서히 적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농업(Agriculture)과 생태학(Ecology)의 합성어인 agroecology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아직도 에러라고 나올 정도로 생소한 학문이다. 


후쿠오카의 농법은 노자의 철학을 이어받았다. 토양을 살리면서 단위면적당 생산성도 관행농업보다 높다. 그의 농법은 지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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