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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호 Jun 25. 2023

가원, '욕망과 기억의 문화적 저장소'

러시아의 다차 가든(dacha garden)은 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가원'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단순히 주말농장이나 텃밭 개념을 넘어선다. 


어느 러시아 문학 연구자의 논문에, "다차, 욕망과 기억의 문화적 저장소"라는 멋진 타이틀이 붙여져 있다. 다차는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러시아인들만의 특별한 생활양식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든 시기를 견뎌내야 할 때 다차는 그들만의 아지트가 된다. 다차는 단순히 채소를 가꾸는 땅이 아니라 삶이 기억되는 곳이다.


다차는 '선물 받은 땅'이라는 뜻이다. 왕이 귀족에게 선물한 땅이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600제곱미터(180평, 0.15 에이커)의 땅을 무상으로 나누어준 것에서 비롯됐다. 텃밭 사이즈나 농막 규모는 다양하지만 여기서 경작해서 감자와 채소, 과일을 거의 자급한다. 다차는 주말농장이 되기도 하고 여름별장이 되기도 하고 아예 귀농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 가원마을에 대한 영화를 보면 식물잔사를 이용해 친환경 퇴비를 만들고, 닭을 키우고, 양봉을 하고 숲을 가꾼다. 농사를 지으며 각자의 재능에 따라 마을에 기여를 한다. 집이든 축사든 뭐든지 스스로 만들고 그리고 자연의 일부가 된다. 마치 핀드혼처럼 영적 공동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에서 일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다차를 만들어 가는 그들은 비로소 고향을 찾았다고 말한다. 가을에는 수확한 과일과 야채를 가져와 마을축제를 연다. 자연과의 조화가 행복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땅에서 무엇인가를 일구어내는 것에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쿠바의 틀밭 운동처럼 생계를 위해 시작됐지만 다차 가든은 생산성보다는 내적 평화에 더 주안점을 두는 듯하다. 우리네 틀밭도 채소 자급뿐만 아니라 내면도 함께 채우는 다차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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