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을 만나는 법

사고 친 나를 위해, 팀 전체가 거짓말을 하다

by chacha

첫 번째 현장이 막을 내리고, 나의 두 번째 현장은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바로 그 포털 사이트 회사가 되었다.

동료들과는 뿔뿔이 흩어지고, 처음으로 일본인만 가득한 곳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었다.

회사의 위치는 여전히 '병'.

고객사가 '갑', 우리 파견사가 '을', 그리고 내가 '병'인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을' 회사 소속으로, 그들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리더가 정해졌다.

나보다 고작 네 살 많았지만, 장난기 많고 듬직한 오빠 같은 사람이었다.

이 어리고 듬직한 리더와 상냥한 팀원들 틈에서, 나는 2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일본의 엄마, 아빠를 얻고 진짜 일본의 속살을 배우게 된다.


# 지옥의 출근길, 그 문을 열다

새로운 일터는 도쿄의 인공섬, 도요스였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이 즐비한, 그 야말로 미래 도시 같은 곳.

모든 게 쾌적하고 번쩍였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우리 집에서 너무나도 너무나도 멀 다는 사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첫 근무처 근처에, 그것도 저렴한 곳만 찾아다녔기에 도심과는 한참 동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회사는 블랙까지는 아니어도 짙은 회색 정도는 되는 곳이라, 교통비는 가장 저렴한 경로로만 지급했다.

그 결과, 환승만 세 번을 해야 하는 죽음의 출근길이 완성되었다.

왕복 5시간.

그렇게 나의 새로운 도전은 일터가 아닌, 출근길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 태풍이 남기고 간 것

인명 사고나 정비로 전철이 멈춰 서기 일쑤인 도쿄. 하지만 나의 집은 회색 회사는 이유를 불문하고 지각 시 월급을 차감하는 살벌한 규칙을 고수했다.

이사를 간절히 요청했지만, "네가 조금 더 일찍 나오면 해결될 문제"라는 명쾌한 (?) 답변만 돌아왔다.

초, 중, 고, 대학교까지 단 한 번 지각해 본 적 없는 나는 순응했다.

그리하여 매일 새벽, 별을 보며 집을 나서는 왕복 5시간의 대장정이 막을 올랐다.


나의 팀은 평균 연령 35세, 내 또래가 많아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은 플랫폼 관리, 그중에서도 재해 알림을 운영하는 팀이었다.

지진이나 태풍이 잦은 일본에서는 그 중요성이 무척 큰 팀이었고, 재해가 발생하면 일은 몇 배로 늘어났다.


그날도 그랬다.

거대한 태풍이 도쿄를 덮쳤다는 예보가 있었고, 나는 어김없이 한 시간 먼저 집을 나섰다.

뛰어 나가는 월급을 사수하기 위해.

역시나 전철은 지연되기 시작했고, 나는 한 정거장 정도는 비를 쫄딱 맞으며 뛰었다.

회사에 도착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지만, 사무실엔 나뿐이었다.

그날의 가장 빠른 출근자였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고, 도시 기능은 마비되기 시작했다.

결국 그날, 10명 분의 일을 나 혼자 해내야 했다.

처음 하는 업무 투성이었지만, 전화를 들고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신기하게도 정말 바쁘니 짜증이 나지 않았다.

사람은 극한 상황에선 냉정해진다는 말을 실감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팀원들이 하나둘 도착했고, 모두가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할지언정, 내 월급 통장을 춤추게 하진 못했다.

결과적으로 지각이었기에 월급은 어김없이 마이너스.

내 인생 첫 지각은 마이너스가 되었다.

이 웃픈 사정을 모두 지켜본 리더는 말없이 나를 다독이며 맛있는 저녁을 사주었 다.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일에 대한 자신감이 한 뼘 자라 있었다.


# 내 편이 되어준 사람들

자신감이 붙으면 실수도 따라오는 법.

한창 기세등등하게 일하던 어느 날, 나는 대상 서버가 아닌 엉뚱한 서버에서 작업을 해버리는 대형 사고를 쳤다.

요란한 경보음이 울리고, 사무실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범인은 바로 나.


사람이 정말 놀라면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입 안에서 맴돌던 일본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 한 동료가 '갑' 회사의 직원에게 연락해 보라며 번호를 알려주었다.

한국인 분이었고, 그는 나의 이 어처구니없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었다.

(덕분에 그분과 친해져 지금도 가끔 만난다.)


문제는 해결했지만, 내 마음은 해결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해 위축되어 있는데, 퇴근 시간이 두 시간이 지나도 팀원들 이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 같이 맥주나 마시러 가자며 내 등을 떠밀었다.

심지어 나의 리더는 '갑' 회사에 보고할 때, 자신이 한 실수라며 나를 감싸주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술자리에서 팀원들은 나를 위로한답시고 저마다 자신이 저질렀던 황당한 실수들을 하나씩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회사라는 조직에 갇힌 느낌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단단한 소속감을 느꼈다.


# 마작, 경마, 그리고 대나무숲

알고 보니 우리 팀은 취미까지 완벽하게 통했다.

나는 일본에서 마작을 배웠는데, 마침 팀 원 중 한 명이 마작방 아르바이트 경험자였다.

회식이 끝나고 막차가 끊기면, 우리는 아침까지 함께 마작을 쳤다.

평일엔 마작, 주말엔 경마였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적은 돈으로 스릴을 즐기는 법을 배웠다.

5만 원으로 90만 원을 땄던 날에는 다 같이 소고기 파티를 열기도 했다.


출퇴근길은 고통스러웠지만, 회사에 도착하는 순간 즐거움이 시작됐다.

각자 밥 먹는 문화가 흔한 일본에서, 우리 팀은 매일같이 맛집을 찾아다녔다.

포켓몬고가 유행할 땐 다 같이 포켓몬을 잡으러 다녔고, 주말엔 리더의 집에 모여 술을 마시거나 분기별로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팀원들이 나를 성장시킨 만큼, 나 역시 그 들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갔다. 바로 ‘대나무숲'이었다.

나는 외국인이었고, 그들의 인간관계를 전혀 몰랐기에 팀원들은 나에게 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덕분에 나는 커밍아웃부터 불륜 고민, 심지어 바람피우는 상대에 대한 이야기까지 흥미진진하고 심오한 그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다.

일본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이들이 많지만, 좋은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나는 이들을 통해 타지 생활의 불안함을 이겨내고, 한 인간으로서 단단하게 성장했다.

하지만 이 평화롭고 즐거웠던 출퇴근도 어느 날 갑자기 금지되고 만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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