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의 면접 끝에 내가 내린 정답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도쿄로 돌아온 저녁, 나를 맞이한 것은 3평짜리 방의 무거운 적막이었다.
한때 세상 가장 아늑했던 이 작은 공간은 이제 숨 막히는 상자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옷장 위 좁은 잠자리에서 바라본 천장은 유독 가깝게, 금방이라도 나를 덮칠 것처럼 다가왔다.
외로움은 이내 날카로운 불안이 되어 나를 파고들었다.
'만약 엄마,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끔찍한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여기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천장을 보고 누워 끝없이 되물었다.
이대로 있다가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대답은 하나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켰고, 회사 선배가 알려준 구인 사이트 '비즈리치'를 열었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 이력서 한 장, 그리고 100번의 면접
이력서를 등록하자마자 거짓말처럼 쏟아지는 연락에, 나는 잠시 내가 꽤 괜찮은 인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그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의 성장 가능성보다는 자신들의 실적에 도움이 되는 기업을 끈질기게 밀어붙였고, 관심 없는 포지션의 면접을 거절하자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 람도 있었다.
나는 그 수많은 연락 속에서 진심을 가려내야 했다.
그중 가장 말이 통한다고 생각되는 기업과 약속을 잡고, 오랜만에 외출 준비를 했다.
재택근무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향하는 도쿄 시내였다.
헤드헌터의 오피스는 근사했다.
통유리 너머로 분주한 도쿄의 풍경이 펼쳐졌고, 나는 그 앞에서 마치 취준생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으로 희망 연봉, 원하는 직무, 근무 조건 등을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
짧은 면담이 끝나자, 헤드헌터는 내 조건에 맞는 회사들의 구인 안내문을 수북이 프린트해서 건넸다.
"가고 싶은 곳은 동그라미, 애매하면 세모, 싫으면 엑스 표시를 해서 주세요."
그 종이들을 받아 들고 작은 방에 앉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동그라미를 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걸고 종이를 제출했다.
그때부터였다.
나의 온라인 면접 대장정이 시작된 것은.
코로나 시대의 유일한 장점은 모든 면접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회사의 눈을 피해 아침 9시, 혹은 점심시간을 쪼개 면접을 봤다.
3평짜리 방 안은 순식간에 면접장으로 변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내가 본 면접은 어느새 100군데를 훌쩍 넘어섰다.
# 가슴 뛰는 제안과 달콤한 유혹 사이
100번이 넘는 면접 끝에, 드디어 나를 원하는 회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두 곳에서 최종 합격 통보가 날아들었다.
하나는 가슴 뛰는 제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다.
첫 번째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클라우드 구축' 업무를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었다.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 리더, 그리고 내가 최초의 외국인 직원이 된다는 점까지,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을 향한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하지만 연봉은 지금보다 3분의 1정도 오르는 수준이었다.
두 번째는 안정적인 중견기업이었다.
직무는 지금까지 해오던 익숙한 운영 업무.
외국인 직원들도 있고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나에게 연봉을 지금의 두 배로 올려 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머리는 두 번째 회사를 가리켰다.
왕복 5시간의 고통, 스쳐 지나가던 월급의 서러움을 한 번에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첫 번째 회사로 기울어 있었다.
나는 내 스스로의 일을 해보고 싶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내 일'을 한다는 자부심, 그것이 나에게는 엔지니어로서 의 성장이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 내 손으로 쟁취한 진짜 기회
며칠 뒤, 나는 연봉 두 배를 제안한 회사에 정중히 거절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가슴 뛰는 도전을 약속한 회사에 입사하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노트북 화면을 보며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있었다.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돌덩이가 사라 지는 기분이었다.
내 앞에 계약서 한 부가 놓였다.
100번이 넘는 면접, 수많은 거절의 메일, 그리고 연봉 두 배의 유혹까지.
그 모든 과정의 무게가 이 얇은 종이 몇 장에 담겨 있었다.
나에게 오퍼를 보냈던 영업부 직원이 따뜻한 미소로 나를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도장을 꾹 눌러 찍었다.
새로운 회사를 나서는 발걸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손에 들린 계약서에는 방금 찍은 나의 도장 자국이 선명했다.
돌아보면, 연봉 두 배를 제안한 회사는 과거의 나를 값 매긴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이곳은, 나의 미래에 투자해 준 곳이었다.
나에게 오퍼를 건네며 오랜 친구처럼 웃어준 그 직원의 미소가 그 증거였다.
나는 숫자로 증명되는 내가 아니라, 성장으로 증명하는 내가 되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차가운 발을 만지며 시작된 나의 질문, 그 길고 막막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마침내 내 손으로 써 내려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