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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 Aug 18. 2021

나를 관념 밖으로 꺼내 주는 아이

친구 생일상을 차려준 아이


마흔몇 해를 살면서 수천수만 가지도 넘는 관념을 밑바탕에 차곡차곡 쌓으며 살아왔다. 어른이 되니 뇌는 호두알처럼 더 단단해져서 쉽사리 살아온 세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호두알을 망치로 두드려 깨고 나면 그 안에 고소한 과육이 담겨 있듯이 어떤 강한 충격에 의해 관념이 깨어지고 나면 해탈의 가벼움에 세상 살기가 좀 더 수월해진다. 아이를 키우는 건 매번 처음 같아서 아이가 자라면서 허물 벗기 과정을 보여줄 때마다 강한 충격의 연속일 때가 많다. 특히 작은 아이는 날 해탈의 경지에 빠른 속도로 오르게 해주는 주요 인물이다.



어떤 관념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로 모건 <무탄트 메시지> 20쪽



어떤 것도 단정 지을 수 없다


아마 아이를 하나만 낳아 키웠더라면 지금의 이 겸손함은 가지지 못했을 것 같다.


첫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유난스럽게 영재 교육을 한 덕분인지 나름 영특한 아이로 자랐다. 생후 6개월 때부터 문화센터에 데리고 다녔는데 엄마들이 영재 왔다고 제일 좋은 자리를 양보할 정도였다. 실제로 영재는 아니었지만 나름 집중력이 좋았고 남다른 집중력은 무엇을 시켜도 남들보다 두 배 빠르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는 엄마 할 나름이라는 자만심 같은 게 내면에 깔렸다. 하지만 둘째를 낳아 키우면서 언제 이런 자존감이 내 마음에 자리 잡았던 적이 있었나 싶게 사그라들었다.


둘째 때는 나태한 엄마로 살았다. 큰 아이와 다섯 살 터울이라 나도 어느 정도 기력이 쇠했고 큰 아이처럼 열정이 쏟아지지 않았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길 바랬다. 이런 바람대로 아이는 정말이지 건강하게만 자랐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의 키만큼 내 고민도 많아졌다. 둘째는 공부에 관한 건 하나를 알려주면 반 개조차 기억하고 싶어 하질 않아했다. 지금까지 영어 학원을 몇 년동안이나 보내왔는데 학교에서 아이 영어 과외 좀 시키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듣고는 참 난감했다. 하지만 본인이 기억하고 싶은 건 몇 년 동안 기억을 해서 뒤끝 작렬인 아이로 불리었다. 아무래도 본인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편리한 뇌를 가지고 태어난 듯싶다.


무엇을 시켜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이 내켜야 했다. "어른들 만나면 꼭 인사를 해야 해."라고 가르치면 "내 마음에 들면 하고 안 들면 안 할 거야!"라며 다섯 살 아이가 고집을 부렸고 본인의 말대로 행동을 했다. 난 예의 없는 아이를 키우는 못된 엄마가 되었다. 아이는 외계인 같았고 외계인의 뇌를 파악할 수 없는 난 어느 순간부터 다른 집 아이의 행동에 대해 내 시각의 잣대로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아이는 부모 할 나름이라는 위험한 판단은 하지 말자.



학교가 안 맞는 건지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라 집 근처 중국 학교를 보냈다. 한 반에 쉰다섯 명이나 되는데 그중에 한국 아이는 우리 둘째 한 명이다. 방과 후 아이를 데리러 가면 선생님과 눈이 마주칠까 봐 겁이 났다. 선생님은 나만 보면 쉬는 시간에 자꾸 다른 교실에 간다. 수업 시작종이 울렸는데 교실에 안 들어오고 밖에서 놀고 있다는 등의 아이의 문제점을 열거했다. 처음엔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조아리다가 나중에는 막막한 마음에 저절로 눈물이 났다. 다른 아이들은 멀쩡하게 선생님 말을 잘 듣는데 왜 우리 아이는 제 멋대로인 걸까?뭐가 문제일까? 중요한 건 아이는 스스로의 문제점을 아는 것도 같았으나 고칠 마음이 없어 보였다. 학교가 유치원보다 훨씬 재밌다며 천진난만하게 좋아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립학교라 빨간색 체육복 같은 옷을 교복 대용으로 입고 다니는데 평소에도 본인 마음에 안 드는 옷은 거부하는 아이라 학교에 교복을 안 입고 가겠다고 떼를 썼다. 규정을 어기면 안 된다고 여러 번 잡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미 고집이 들어앉아 있는 아이는 제멋대로 사복을 입고 갔다가 학교 교장 선생님한테 퇴학 경고를 받았다.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 아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엄마, 선생님이 나 포기한 거 같아. 나한테 신경 안 써."



poor student는 절대 poor하지 않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외치는 아이를 둔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아이를 어떻게 키우면 저런 말이 나오는 건지 내가 직접 아이를 키워보니 신기할 따름이다.

둘째 아이는 "공부 빼고는 다 좋아요"를 외치는 그런 아이이다.

돌려 말하면 poor student인데 막상 이 처지가 되고 보니 이 poor라는 말이 참 거슬린다. 뭐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빈곤한 학생을 poor student라고 한다면 이 말은 여지없이 우리 아이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이를 키워보니 공부를 좀 못한다고 해서 poor 하게 살지는 않는다. 아니 어떻게 보면 공부 빼고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오히려 풍성한 삶을 살고 있다.

아이는 심심할 틈이 없다. 늘 뭔가를 하고 있다. 때때로 학원 숙제나 학교 숙제를 하기도 하지만 어찌나 재빨리 끝내는지 공부가 쉬워서 저런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초스피드로 숙제를 끝내는 아이는 나머지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열의를 다해서 한다. 예쁜 걸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는 방을 꾸미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자신을 꾸미는 것도 최선을 다한다.

공부가 본분인 학생이 공부는 뒷전이고 다른 것에만 열정적인 모습은 부모 속을 타들어가게 한다.

저 열정의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공부에 쏟아줬으면 더는 바랄 게 없을 것 같은데 이런 마음을 헤아릴 생각이 없는 건지 헤아리고는 있는데  좀 더 나중에 할 생각인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난 날마다 도 닦는 심정으로 아이를 마주한다.



친구 생일상을 차려 준 아이


살아온 세월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세상의 일반적인 고정관념에 맞추어 사는 게 행복의 길로 직결되지 않았음을 누누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아이에게 내 눈높이에 맞춰 살라는 강요를 하게 된다. 사실 남과 다른 아들의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 한다면 위에 열거한 것보다 더 많은 내용들을 쓸 수도 있다. 다른 아이들이 가지지 못한 멋진 면도 많다.

얼마 전에 아들이 가장 친한 친구 생일 파티를 우리 집에서 자기 손으로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처음엔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었다.


"유진이 생일 파티를 유진이네 집에서 해야지. 왜 우리 집에서 해?"


"해마다 유진이 생일 때 너네 집에 초대해 달라고 얼마나 졸랐는데. 근데 유진이 엄마가 생일 파티를 안 해줘서 안된대. 그러니 나라도 차려줘야지. 그래야 유진이 생일 파티에 참여할 거 아냐."


생각의 전환이었다. 소중한 친구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고 싶지만 친구 엄마가 안차려 주니 본인이라도 차려주겠다는 말에 진심이 느껴졌다. 아이는 며칠 동안 친구가 좋아하는 캐릭터 케이크를 주문한다고 여기저기 전화하더니 본인 견적에 맞는 케이크 집을 찾아내어 생일날 맞춰 도착하게 했다. 그리고 멋진 일회용 식탁보와 생일 데코레이션을 사서 주변을 근사하게 꾸몄다. 나름 친구가 좋아하는 과자와 사탕으로 그럴 듯한 생일상을 차렸다.


아이는 작년 본인 생일상도 스스로 차린 이력이 있다. 엄마는 그저 친구들 불러서 먹을 거나 차려줄 줄 알지 생일이라고 풍선을 불어 창문에 붙여주거나 Happy Birthday 같은 글자를 어디에 걸어주거나 하는 아기자기한 엄마가 아니라 나름 불만이 있었던 듯싶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상점을 몇 번 들락날락하더니 본인 생일상을 스스로 원하는대로 차려놓고 초대받아 온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아이는 창의력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내 마음만 살짝 바꾸면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갑갑함은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고정관념만 깨뜨리면 간단하다. 하지만 어떤 관념보다 쉽사리 깨기 어려운 이유는 내 아이에 대한 집착에서 연유되는 게 아닐는지 싶다. 사실 우리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고 다른 집 아이라면 나름 개성적인 모습에 박수를 쳐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마음만 살짝 바꾸면 아이도 나도 세상살이가 훨씬 수월할 텐데 내가 미리 만들어 놓은 틀에 아이를 끼워 맞추려고 하니 어긋남에 고통스럽다. 사람은 틀에 딱 끼워 맞출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걸 알면서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강요하는 나는 참 어리석은 엄마다.

원래 나와 아이는 이렇게 만날 운명이었고 아이는 나를 더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훈련시키러 혹성 탈출 한 외계인 정도로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아이의 행복을 지켜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을 깨고 또 깨어 아이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고강도 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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