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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 Apr 09. 2022

비록 굿샷은 날리지 못했을지라도

다정한 친구의 배려로 첫 라운드 도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모습으로 골프복을 차려 입고 멋지게 굿샷~! 날릴 수 있는 날 그린 필드에 나가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굿샷~! 을 날리며 폼 잡을 수 있는 날은 당최 올 것 같지 않았고 골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서야 의례적으로 필드에 입문한 날을 맞았다.



작년 8월 어느 날, 생일을 맞은 줌바 댄스 강사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대뜸

"나 지금 생파로 동네 친구들이랑 실내 골프 연습장에서 골프 치고 있는 중이야."

"내가 골프를 한다는 건 개나 소나 다 한다는 뜻이지. 하하하!" 라며 내가 앞으로 귀국해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골프는 필수라는 듯 한마디 더 덧붙였다.



"말레이시아에 살면서 골프를 치지 않으면 손해다."라는 주변인들의 말에도 골프계 입문에 대해 전혀 흔들림이 없던 내가 노년에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골프를 해놔야 한다는 말에는 동요가 되었다. 그 노년의 세월이 머지않았으니 손목에 힘이 좀 남아있고 허리가 조금이라도 유연할 때 배워놔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골프 레슨을 시작하고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평소 역동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내가 골프화를 바닥에 본드로 붙인 듯이 딱 붙이고 선 자리에서 몸통만 이리저리 움직이라고 하는 코치의 가르침은 영혼 없이 지시대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행동하게 했다.


그래도 기왕 골프채를 잡았으니 공이 멀리는 안 나가도 폼나게 치는 자세는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손예진 같은 얼굴로 태어나진 못했어도 손예진 같은 폼은 어떻게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망상도 때론 가지면서 말이다.

열몇 번을 레슨 받아도 확고한 자세는 안 만들어지고 기껏 코치한테 받은 칭찬은 하체 중심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다는 것이었다. 워낙 하체가 탄탄한 구조로 태어나 상체에 흔들릴 수 없는 몸체이기도 하니 이것이나마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언제 필드 한 번 나가자. 머리 올려야지."

같은 코치한테 함께 레슨을 받는 친구가 내내 실내 연습장에서 공만 치고 있는 내가 딱했는지 머리를 올려주겠다고 나섰다.

골프에 입문하기 전에 우연히 "머리 올리러 간다"라을 듣고 뭔 저런 구시대적인 표현이 골프라는 세련된? 운동이랑 결탁이 되었을까 싶었다.

차라리 "필드에 입문한다"거나 "첫 라운드를 하러 간다"고 하면 알아듣기 쉬울 것을 골프와 연결이 되지 않는 "머리 올린다"는 말이 영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를 위해 몸소 필드를 예약해 준 친구는 처음 골프채를 조호바루 필드에서 직접 잡았다고 했다. 워낙 필드 비용이 싼 말레이시아니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열몇 번 레슨을 받아도 골프의 ''자도 개념이 안 잡혀가는 나로서는 상상이 안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난 실력도 안되면서 친구의 호의를 못 이긴 척 받아들였다.


'인복 하나는 타고났구나!' 싶을 때가 많은데 요번에 필드 라운드에 입문하게 해 준 친구 또한 넘치는 애정으로 나를 감동시켜 주었다. 필드에 나가기 전 골프 매장 상품권을 선물해주더니 매장에 함께 가서 필요한 용품을 장만하자고 했다. 골프계에 입문했지만 여전히 흥미도는 다른 운동에 비해 떨어졌고 골프가 좋아 아침에 아이들 등교시간에 맞춰 골프장으로 출근한다는 엄마들의 모습도 여전히 내게는 먼 그대였다.

골프 시작할 때 준비한 용품이라고는 골프복은 갖춰 입자 싶어 장만한 골프복 두벌과 남녀 차별을 찐하게 느끼고 온 말레이시아 골프 매장에서 구색만 갖추자 싶어 장만한 골프화 그리고 코치가 선물해 준 왼손 장갑 한 짝이 전부였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라 그런지 어느 골프 매장에 가도 남성 용품의 비율이 80퍼센트이면 여성 용품은 겨우 20퍼센트밖에 구색이 안 갖춰져 있다.  

다정한 친구는 새로 오픈한 골프 매장에 데려가 필요한 몇 가지를 더 구매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구매한 다음 날 나를 차에 태워 대략 30분 거리에 있는 글렌메리 골프장으로 데려갔다.


사실 기숙 생활을 하는 둘째 아이가 중간 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데 아침 일찍 골프를 치겠다고 나서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무리 멋진 초원이라도 불편한 짐짝 같은 무거움을 앉고 누비는 건 그다지 신날 것 같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화살은 쏘았고 쏜 화살은 골프장 예약 명단에 떡하니 자리 잡아 아이를 핑계로 번복할 수도 없기에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한나절쯤 나 없다고 어찌 되진 않겠지.' 싶어 무거운 어깨에 얹힌 짐을 훌훌 던져 버렸다.

다정한 친구와  둘 다 초보라 필드에 나가는 건 사실 민폐였다. 골프 룰을 제대로 모르고 그저 나가서 채만 휘두르다 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친구는 나를 위해 공 좀 친다는 친구 한 명을 더 초대했다.



날씨는 참으로 화창했다. 원래가 푸른 쪽빛에 뭉글뭉글 하얀 입체 구름이 매력적인 말레이시아의 하늘은 그날따라 더욱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아직은 덜 까매진 팔뚝이나 다리가 보존되기를 바라 회색 구름이 드리운 흐린 날을 기대했건만 야속한 하늘은 '나머지 몸뚱이도 새까맣게 타버려라'는 듯 날씨가 전날보다 더 쨍했다.


우린 초보 실력을 캐디에게 들키는 창피함을 면하기 위해 버기를 직접 운전하기로 했다.

사실 코치가 초보일수록 캐디를 꼭 써야한다는 가르침을 주었건만 창피함이 폼나는 것보다 우선인지라 스승의 말을 무시했다.

하지만 나중에 골프가 끝나고 나서야 왜 캐디를 동행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런 골프 룰을 모르는 내게 필드에서의 골프는 시작부터 신선했다. 혀를 굴려야 하는 골프 용어들도 새로웠지만 다른 운동과 달리 여러 매너를 갖춰야 하는 절제있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너편 깃발 앞에 앞선 골프 멤버들이 있을 경우 골프채를 휘두르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는 룰부터 시작해서 후발대로 따라오는 또 다른 멤버들이 오래 기다리지 않게 잽싸게 진도를 나가줘야 한다는 기본 예의부터 배웠다.

모든 운동이 매너 있는 행동으로 다른 이에게 불편을 끼치지 말아야겠지만 골프는 특히 함께 치는 멤버들부터 시작해서 두루두루 앞 뒤 멤버들까지 다 신경을 써야 하는 운동이니 배려가 귀찮은 사람이 할만한 종목은 아니라 하겠다. 코치가 몇 번 말하기를 골프는 같이 치는 멤버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첫 라운드를 하면서 바로 체험했다.


박세리의 골프 치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골프에 대한 환상으로 각인되어 있었나 보다.

골프의 '골'자도 모를 만큼 관심 없었지만 박세리가 늪지대에 빠진 골프공을 뭍으로 쳐올린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골프를 치다가 숲이나 늪지대로 빠진다는 것은 처음 필드에 입문한 나와는 무관했다. 공은 늘 내가 찾을 수 있는 곳에 떨어졌고 그날 잃어버린 공은 "워터 해저드"를 무사히 건너지 못해 퐁당 빠져버린 세 개의 공이 전부였다.

아마 워터 해저드를 넘기고자 하는 시도를 계속했더라면 몇 개의 공이 더 물속으로 참수를 당했을 수도 있지만 아직은 초보라서 무리한 도전은 참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 개째 빠졌을 때 멈춰버렸다.



햇볕에 피부가 그을리는 것과 얼굴에 기미가 생길 것이 두려워 필드 라운드를 미뤄왔다. 오른손만 유독 까맣고 남자 손처럼 투박해진 골프 좀 친다는 여자고객의 손을 보곤 마음에서 이미 필드 라운드를 부정했던 것 같다.  동남아에서 골프를 즐기기엔 마음 자세부터가 글렀는데 어떻게 굿샷이 나올 수 있으랴.


우아하게 나이스 샷~을 날리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유로운 자태로 초록을 누비는 모습은 첫 번째 라운드에 도전한 나에겐 상상 속 모습일 뿐이었다.

그날 난 리드하는 공 좀 치는 친구의 속도를 맞추느라 허겁지겁이었고 빠른 속도로 한 홀을 끝내는 뒤 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야 했다. 앞 서 치고 있는 팀은 캐디가 채도 들어주고 공도 주워다주고 하던데 우리는 캐디 신청을 안했기에 공 치고나서 공 찾고 그에 맞게 채 챙기고 버기 운전해서 잽싸게 진도 나가고 우아하게 골프치는 모습은 한 장면도 남기질 못했던 것 같다.


아마 처음에 예약했던 대로 18홀을 다 돌았더라면 첫 라운드를 골프가 아닌 극기 훈련 한 날로 기억했을 터이다.

다정한 친구의 배려로 9홀에서 끝낸 것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하나부터 열까지 '머리 올리는 날'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해 주기 위해 세심한 신경을 써 준 친구 덕분에 두 번째 라운드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파랑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던 하늘 아래 초록이 무성한 나무들과 싱그러운 잔디 사이를 누볐던 자연과 하나가 되었던 멋진 날을 만들어준 친구에게 난 답례로 밥을 사고 그날을 나이스 샷~한 하루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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