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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휴가

지금 이 순간 내게 필요한 것은...

by 조용해


휴가를 왔어요.

집에서 겨우 200km 남짓 떨어진.


이럴 바엔 차라리 멀리 가볼까도 생각해 봤는데. 다시 생각하니 내게 필요한 건 멀리 떠나온 관광이 아니라 그냥 집이 아닌 곳에서의 잠깐의 휴식이라는 생각에 목적지를 바꾸지 않고 그냥 왔어요.


남이 해주는 밥 먹고 루틴들을 잠깐 멈추고 하루 종일 뒹굴 뒹굴 그러다 내키면 나가서 거리도 좀 구경하고 책 읽고 음악 듣고... 맛나 보이는 것 있으면 들어가 먹고 남이 깔아준 이불에 남이 청소해준 욕조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건 잠깐의 시한부라 그런지 이삼일은 할 만하네요.


저는 이상하게 이런 일상의 탈피가 삼일까지는 할 만한데 나흘은 못 견디겠더라고요. 집도 그립고 놓아버린 루틴도 불안하고. 무엇보다 삼일 짐과 일주일의 짐을 꾸리는 건 전혀 다른 문제거든요. 그 무게감도 한몫을 하는 것 같아요.


얼리버드라고 일찍 예약하면 횡재하는 프로모션들도 있지만 저는 그동안의 시간들이 부담돼서...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스케줄들을 계산하는 것도 피곤하고. 그래서 한 일주일쯤 전에 충동적으로 예약을 하죠. 그러면 돈은 좀 더 드는데. 최소한 예약한 일주일은 온전히 설레며 보낼 수 있어서 그것에 대한 댓가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전에 와보지 않은 곳이라 코로나로 사람이 없는 편인 건지 여름방학이라 사람이 많은 건지... 이런류의 자잘한 모호함들을 시간이 많으니까 곱씹으며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어요. 코로나 핑계로 집콕만 하다가 이렇게 나오니 이제야 좀 내가 사회적인 동물이 맞는구나 싶네요 ㅎㅎㅎ


좀 있으면 가을인데 올해 여름을 떠올릴 그림엽서 한 장 정도는 누군가에게 보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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