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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암호를 대라...

by 조용해

제목이 어마 무시해서 그리고 영화를 봐서 굳이 읽을 필요가 없던 책이었는데 누군가의 리뷰를 읽고는 집어 들었다. 학원물 하면 또 일본이지... 우리나라도 같은 교육시스템에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유독 일본의 학원물이 자주 나오는 건 왜일까... 를 궁궁해하며. 영화에서 보던 대로 그대로인 스토리라인. 그런데 글에는 영상이 갖지 못하는 힘이 있었다. 이 맛에 책을 읽지.


연인 사이엔 유치하지만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그것이 기괴하면 기괴할수록 그것이 독특하면 독특할수록 짜릿하다. 심지어 췌장을 들먹일지라도. 그들 고유의 언어를 갖고 싶은 자들의 법칙을 잘 따르고 있는 소설이었다. 그렇지 사랑을 대하게 되면 내 사랑만큼은 사랑해라는 일반적이고 평범함을 넘는 뭔 가이고 싶지 우리는.


나에게는 조카가 있었다. 내가 서른여섯에 그녀는 서른에 만났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조카. 그녀는 나를 외숙모로 불렀지만 가끔은 자기 엄마가 큰누나인 관계로 우리 신랑과 함께 나를 막냇동생쯤으로 여기나 싶게 우리를 구엽게 보던. 그녀의 선 넘음이 나는 처음부터 싫지 않았다. 나에게는 남에게 있지 않은 신기가 가끔은 발동을 하여 그녀가 우리 곁을 빨리 떠나가 버릴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느낌 때문이었나? 싶게. 처음부터 그녀에게 알 수 없이 정이가고 애틋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사쿠라>가 묘하게 내 조카와 오버랩되었다. 우리 조카가 아픈 걸 알면서도 남자 친구가 되어주었던 M군이 고맙기도 아픈 애를 차 버린 그가 밉기도 하는 복잡한 생각하기 싫은 감정을 마주해야만 했던 해묵은 순간들이 책을 읽으며 위로가 되었다. 두정거장 거리에 집이 있었던 우리는 곧잘 만나 수다도 떨고 밥도 먹었었다. M에게 차이고 와서 아픈와중에도 찬물에 밥을 말아 멸치조림을 먹으며 담담하게 이별의 과정을 쏟아내던 그녀였다.

" 외숙모 나있지. 초라하지만 막 걔를 붙잡았다? 그냥 쿨하게 보내주기 싫더라고 그래서 울며불며 막 붙잡았어" 라며 마치 승전보를 울리는 전사처럼 자랑스럽게 들떠 있었다.

" 잘했어. 그러는 거야.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안 남아. 헤어지면서 쿨한 척하는 것들 재수 없어. 사랑이 그렇게 깔끔할 수 있으면 그건 사랑이 아니지 사랑은 찌질한 맛에 하는 거거든. 갈 때까지 가는 거 그 맛에 하는 거야. 어때 콜라라도 한잔 해야 쓰지 않겠어?" 라며 감히 환자한테 오늘은 이 정도는 마셔주는 거라며 탄산수를 권했다. 술이었으면 더 좋았으련만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라곤 고작 금지된 콜라를 권하는 수준이라니...


그녀의 마지막에 M이 왔다. 그녀의 여동생과 나 우리 신랑은 그의 출현에 고무되어 있었고. 뻘쭘함을 이기지 못한 그가 잠깐만 들렀다 가려는 걸 신랑이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되도록 오래 잡아두는 모습을 보며 셋이 " 주먹을 당기며" 예쓰!" 라며 장례식장에 어울리지 않는 발랄한 구호를 써가며 구석에서 하이파이브를 해댔다. 아마도 그곳에 그녀도 있을 것이라 믿으며.


젊은 환자들은 젊음과 죽음이라는 이 이질적인 조합 속에서 다른 환자들과는 다른 차원의 감정을 맛본다. 체념되지 않는 운명 앞에서 그것을 이해해보려고 상당한 시간을 분노하는데 남은 생을 써버린다. 가혹하다. 더욱 가혹한 것은 그것을 오롯이 혼자 겪어 내야 한다는 점이다. 젊었던 그녀를 보내면서 나는 한동안 그녀가 우리 옆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타의 과정을 다 겪었으면서도 받아 들일수 없었다. 분명히 젊고 예쁘고 빨리 불려 가야 할 만큼 못되지 않은 이가 이 세상에 없다? 왜??? 이 풀리지 않는 사실 앞에서 이것을 슬픔이라고 간단하게 표현해버리기에는 억울한 맺힌 것이 있었다. 그게 벌써 오래전인데도 그 감정이 생생하다. 나도 이런데 열 달을 품에 품었다가 서른 두해를 키우고 보낸 우리 큰 형님은 어떨까...


어른들이 일어나고 앉을 때 내는 끄응 아이고 식의 추임새를 형님을 보며 달리 생각하게 됐다. 별로 표현이 없으신 그녀는 일어나고 앉을 때 그동안 참아왔던 앓는 소리를 한다. 끄응... 아이구으으...


누군가 모르는 분이 끄응 할 때면 그 앓는 소리를 향해 뒤돌아본다. 그녀는, 그는 어떤 아픔으로 외마디 비명을 앓는 소리로 대신하기 시작한 걸까. 언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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