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아이는 시골에서 도시를 지나 다시 다른 시골의 학교로 향한다. 우리의 설득 끝에 이사 오긴 했지만, 이제 겨우 학교 생활에 적응한 아이를 전학 보낼 수는 없었다. 도시에 살며 운 좋게 찾아낸, 아이에게는 첫 학교이자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 왕복 30분의 드라이브가 우리의 일상이 된 지 벌써 1년. 시골로 이사했지만 여전히 도시를 드나드는 생활은 마치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한쪽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 도시에서 채우지 못한 것을 시골에서 보완하면 삶이 완벽해질 줄 알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만약 아이 학교 핑계로 매일 도시를 오가지 않았다면, 1년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길고 버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길을 반복해 달리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내 삶은 도시도 시골도 아닌, 두 세계가 포개지는 이 길 위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눈이라도 소복하게 내려앉아야 빛이 난다고 생각했던 겨울나무들. 잎을 모두 떨군 채 앙상한 몸으로도 단단히 서 있는 나무들이 새삼 대견하게 느껴졌다. 푸르른 계절에 서로 이파리를 뻗으며 부대끼던 나무들이, 잎을 모두 비워낸 채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더 평온해 보였다. 우리에게 비워내고 고요히 서 있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듯, 나무들에게도 반드시 겨울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니, 겨울산은 내 삶에 건네는 조용한 위로처럼 더욱 애틋하게 다가왔다.
미처 산을 넘지 못하고 몽실몽실 걸려 있는 구름들을 감상하다 도착한 도시의 신호등에서, 아이와 나는 거리를 둘 준비를 한다. 통학버스에 오르기 전, 아이는 나와 세 번의 눈맞춤을 나눈 뒤에야 멀어져 간다. 차에서 내리기 전, 내린 뒤 문 닫기 전, 그리고 유턴해서 멀어져 가는 차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눈을 맞춘다. 때로는 수줍게 손까지 흔들어준다.
버스에 오르는 아이의 모습은 잎을 다 떨구고도 묵묵히 서 있는 겨울나무 같다. 겉으론 작고 연약해 보여도, 그 속엔 이미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단단함이 숨어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도 다르지 않았다. 비워진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그 순간 문득, 우리 삶에도 정답만을 좇는 시간보다 질문을 붙잡고 서 있어야 하는 계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꼭 도시여야 할까, 왜 학교여야 할까, 아이가 살아갈 길을 정말 누가 정해줄 수 있을까. 시골로의 이사는 단순히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익숙한 답을 내려놓고 다른 길을 상상해보기 위한 출발이 되어가고 있었다.
매일의 등하교길은 그래서 더 이상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도시와 시골 사이를 오가며, 아이와 나는 서로의 속도를 맞추고, 우리 가족이 살아갈 방식을 새롭게 질문하는 시간이 되었다. 정해진 길을 따르기보다, 우리만의 길을 찾아가려는 작은 실험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는 멀어지고 길은 다시 조용해지지만, 아이의 눈빛과 손짓은 내 안에 오래 남아있다. 그 작은 교차가, 아이와 나의 하루를 가장 따뜻하게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