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20대] 11일차: 기대와 체념(1)

내가 생각하는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

by 읽쓰생정

11일차



저번 주 금요일에 계획한 두 가지 일, 즉 스마트스토어 오픈과 브런치 연재 계획은 처참히 실패했다.

쉴 새 없이 몰려오는 연말 업무를 쳐내야 하다 보니, 주말에도 자연스럽게 일을 했다.


왜 내가 가는 곳마다 이렇게 일이 많은지 알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일이 많은걸까? 한국이 유별나게 일이 많은 것도 있지만, 내가 일복을 타고난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거쳐 온 직장에서 수습 3개월 이내에 꼭 듣는 말이 하나 있다. '민정씨 오기 전에는 이 정도로 일이 많지 않았다. 이상하게 갑자기 바빠졌다', 더 나아가 '그래도 많은 일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열심히 해보라' 라는 말은 늦여름 막바지 혼을 불태우는 모기마냥 연이어 달려든다.


면접 때 현 직장이 야근이 너무 많아 이직을 원한다는 내게(너무 솔직한 것이 잘못이었을 수도 있겠다) 웃으며 우리 회사는 야근 별로 없다고 했던 상사까지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내게 위와 같이 말했다. 원래 일이 많았는데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내게 팀을 더 아비규환으로 만들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일복많다는 말도 지겹다. 이번 직장도 그냥 똑같은 패턴의 연속이다. 2주 이상 제 시간에 끝나는 직장에 다녀 본 일이 없기에 현재는 오히려 나 때문에 날벼락을 맞은 것일 수도 있는 팀원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 나는 인사팀에서 일한다. 인사팀은 야근이 많다라는 이야기는 취업준비 기간에도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어딘가의 인사팀은 사내에서 알아주는 꿀철밥통이라고 하는데, 도통 내가 가는 팀들은 왜 죄다 이모양인지 모르겠다. 학창시절부터 워커홀릭이라는 내가 월요병에 시달려 거의 발작수준으로 아침에 일어날 줄 정말 몰랐다.






취업준비 기간 소위 있어 보인다는, 얼마 뽑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인사팀만 골라 지원했었다. 크게 직무 자체에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턴을 지원해 본 적 도 없고, 인사 관련 전공 수업을 들은 적도 없었다. 다만 고시 준비할 때 경영학원론에 나오는 인적자원관리 단원을 그나마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나는 도통 첫 번째 시도에 성공한 적이 없다. 대학 전공을 나름 치열한 고민 끝에 선택하였으나 1년도 안되어 자퇴하고 재수를 하였다. 열심히 준비한 시험에서도 최종에서 미끄러졌다. 이 외에도 '젊을 때의 고생'이라는 이름하에 꽤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 졸업을 위해 학교에 온 나는 그 와중에도 나름의 자존심은 있었다. 그래도 모든 직무에 이력서를 흩뿌린 후 되는대로 거둬들이는 형식의 취업준비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또 열심히 무언가를 준비하지도 않았다. (그 당시에는 학창시절 '소중한 경험'들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대기업은 떨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무서워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든든하게 다음학기로 납기일을 미뤘다. 졸업을 위한 막학기 20학점을 들으며 남들이 들어가기 힘들다고 하니 멋있어 보이는... 인사 직무에만 지원서를 조금씩 넣었다.


결론적으로, 운이 좋아 중견기업 인사팀에 마지막 학기가 끝나자 마자 입사했고 1년간 정말 죽어라 일만 했다. 현업배치 1주일 동안 팀내에서 '허니문'이라 불리는 정시퇴근 기간을 보내고, 그 직장 퇴사 당일까지 제 시간에 끝나본 적이 없다. 일이 재밌어서 그렇게 했냐고 물어보면. 당당히 아니라고 외칠 수 있다. 아니다! 그렇게 일한 것은 순전히 같이 일한 사수 때문이었다. 결혼을 앞둔, 결혼 이후에는 신혼생활인 그 분의 안녕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내 생에 처음 만난 사수는 나와 꽤나 죽이 잘 맞았기에 그 사람 보며 일했다. 팀리더에게 훈련 받으며 기죽어 있던 내게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일은 정말 잘 마무리하려 노력했다.


이직을 한 이유는 새삼 아침 세수한 내 모습이 너무 늙어서다. 그 이유 하나다. 이렇게 살다가 정말 일만하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울면서 이직을 준비했다. 비유가 아니라, 편도 통근 시간이 1시간 30분이 넘는 직장에서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하면 내 처지가 너무 불쌍해 말 그대로 눈물 한 두 방울 흘려가며 이력서를 쓰고 다시 아침 일찍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었다. 어쩌다보니 이직에 성공했고, 처음이 어렵지 그 이후에도 소위 나와 fit이 맞는 꿈 같은 꿈을 찾아 껑충껑충 뛰어 다니다 지금의 자리에 왔다. 지금은 회사와 회사 속의 나, 모두에 대한 기대를 접고 나름 현실에 적응하며 다니고(돈을 벌고) 있다. 그렇다고 체념의 형태는 아닌데, 저녁에 대한 삶, 나의 ‘진정한’ 삶을 찾기 위한 처절한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 준비라던지, 사업 시도라던지 이것 저것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내 생에 한 번 뿐인 2의 시절이 끝나고 3의 시절을 시작하는 순간에 더 원대한 꿈을 꾸고 싶기 때문이다.


한 주의 시작, 오늘도 어김없이 메일함에 질문 편지가 와있다.





질문11: 이번 주부터는 질문 글쓰기 후반부가 시작되는데요. 남은 2주일간 저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글을 써서 브랜딩에 활용해보려 합니다. 책을 낸다는 느낌으로 분량을 0.5페이지에서 1페이지 정도 늘려서 하루에 A4 2페이지까지 써보고자 합니다.


셀프브랜딩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컨셉을 잡아야 하는지 아주 잠깐 고민하다 내려놨습니다. ‘나는 이런사람이야!’ 를 정해 놓고 시작하면, 생각과 글을 그 방향으로 한정하여 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그 또한 하나의 해결해야 할 일로 느껴질 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대신, ‘나 자신에게 떳떳한 삶’, ‘후회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잡고 저의 하루하루를 소재로 써보려 합니다. 일상의 경험과 그 안에서 생각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려 합니다. 일상을 돌아보며 글을 쓰고, 그 글을 스스로 독자의 입장에서 느끼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더 잘 알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스스로를 아는 것이 셀프 브랜딩의 시작이라고들 하는데, 그럼 저는 우선 삶에 대한 제 시선을 키워드로 말해보고자 합니다. 키워드는 아래와 같은데요.


- 계획

- 기대

- 체념

- 인정



글로 적어보니 되게 거창한 것 같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계획은 기대를 안고 현실로 찾아오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인정과 체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키워드 하나 하나가 너무 추상적이라서 우선 최근 일어난 경험들을 예시로 들면서 의미하는 바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저번 주 토요일, 지금까지 받고 있던 데이터 분석 관련 과외를 그만두었습니다. 직무와 어찌보면 크게 관계없는 과외를 하게 된 계기는 계속되는 야근과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리프레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직무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도 제법 되었구요.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과 간절함에 한달 100만원이 넘는 돈을 과외에 쏟아 부었습니다. 뼈가 빠지게 일하며 버는 월급의 1/3이 넘는 금액을 투자하는 것이기에 뭔가 커다란 결과가 선물처럼 올 것이라 확신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크게 제가 변화된 것은 없습니다. 과외는 6개월 전부터 시작했는데, 사실상 그 시간 동안 데이터분석 프로그래밍 실력은 전과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빠르게 나가는 진도를 소화하기 위한 시간도 없었고, 3시간 수업을 하면 30분 이상은 그 분의 옛 이야기 또는 ‘사회 형’ 으로써 하는 조언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과외를 계속 했는가, 처음 그 분에게 마음이 갔던 것은 정말 좋은 커리어로 조직생활을 졸업한 그 분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일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사이트를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 스스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다른 시선을 얻을 수 있었고, 제 처지를 공감해주는 그 분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분으로부터 많은 에너지와 희망을 얻어, 대학원을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저처럼 현재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처절히 노력하는 다른 분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일들로 이 분에 대한 저의 신뢰는 바닥을 기다 못해 그냥 실종되어 버렸는데, 짧게 요약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과외를 한 지 3개월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돈이 부담되어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제게 그 분은 저의 처지가 안타깝다며 눈물을 흘리며 과외비를 감면해 주셨습니다. 대신 할인된 금액을 민정씨의 미래를 위해 주택청약과 가족을 위해 쓰라는 그분의 마음 씀씀이에 좀처럼 울지 않는 저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분의 큰 베품은 2달만에 가격 재인상이라는 선물로 돌아왔는데, 수업이 많이 줄어 자신도 어렵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주택청약 자동이체 금액을 다시 변경하면서 착잡한 마음도 컸지만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다며 '도와달라'고 하는 그 분을 보며 그래도 받은 것이 많으니 이정도는 지불해야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사회에서 만난 흔치 않은 귀인이라 여겼던 제 마음은 그 분이 다른 수업에서 자신이 전 달에 민정씨 연봉만큼 벌었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었을 때 허무한 웃음으로 가득찼는데, 저만 해준다던 그 특별한 할인은 다른 이들에게도 파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이벤트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콩깍지가 완전히 벗겨졌습니다. 대출을 받아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은 어떻냐고 진심을 담아 걱정해주는 그분과의 관계는 얼마 전 끝났습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함께 듣는 또 다른 사회초년생 분과 잠시 앉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처음 만나는데도 고민이 있다며 말씀하시는 그 분이 예전 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말할 사람이 없어, 이 방향이 맞는지 궁금하여 물어보고 싶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그 분과 지하철 역사에 앉아 이야기 나눴습니다. 미래를 위해 대출받아 멋진 도전을 하는 그 젊은 청년이 제 앞에 있었습니다. 대출까지 받으며 과외를 받는다는 그 분에게 이 수업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에게 빚진 마음이 있다던 그 분에게, 제가 똑같은 과정을 거칠 때 객관적인 제 상황을 알기 위해 모았던 자료들을 보내드렸습니다. 똑같은 커리큘럼, 똑같은 내용, 귀한 정보인 줄 알았지만 흔하디 흔한 정보와 실제로 저렴한 가격 목록들이 든 파일을 메일로 전달드리며 우리의 현재 모습을 무시하는그 분 앞에서 우리까지 스스로의 가치를 낮게 보면 안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학창시절 만나지 못한 은사(恩師)인 줄 알았던 그 분은 제 마음 속에 그냥 장사꾼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 내가 또 기대로 사람을 빚었구나’


돌이켜보면, 그 분은 정직할정도로 일관된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상황 속에 지친 제가 그 분을 하나의 돌파구로 기대했기에 제가 바라는 귀인의 모습으로 빚었던 겁니다. 회사가 민정씨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말씀하시던 그 분도 제 인생을 책임져 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제 연봉과 지출을 물어보고 그 안에서 최대치를 계산하여 요구하시던 그 분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약간은 늦게 알게되었네요. 그 분을 통해 기대하고 계획하는 즐거움을 배웠지만, 인정과 체념을 통해 관계를 내보냈습니다. 앞으로 연락 드리겠다 말씀드렸지만 연락드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수업까지 예정된 시간을 줄이고 다른 이들과 수업을 같이했던 그 분께 더 이상 신뢰도, 기대도 없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잘 살아오셨듯이 앞으로도 후회없이 잘 살아가시길...



<계속>



* [안녕, 나의 20대] 시리즈는 제3자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변하며 과거의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제가 실제로 참여한 프로그램 경험을 바탕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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