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20대] 12일차: 기대와 체념(2)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

by 읽쓰생정

12일차



질문12: 어제 나의 글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물론 담겨 있는 사연은 애통하고 복잡하고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 또 다른 토론이 필요한 -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요. 다른 한편으로, 나는 상대가 내 기대로 인해 만들어진 '상'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 만큼 현명하기 때문에 현실을 좀 더 다각도에서 객관적으로, 현실에 가깝게 그려내는 능력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내가 그분과 내심으로 관계를 끝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대학원 합격에 대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나는 이런 종합적인 시선을 가지고 어제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를 써내려 가겠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함께 구상해봐도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회초년생이나 절박한 젊은이들의 등을 치는 일을 일삼는 그런 분의 행동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에 반해 나는 어떤 삶의 태도나 관점을 유지하고 싶은지 잠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분과 이야기가 끝난 후 역사에 조금 더 멍하니 앉아 있다 자리를 옮겼습니다. 서로의 길을 응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제가 선택한 7개월의 시간을 천천히 되돌아보았습니다. 오히려 과외 선생님을 많이 욕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자신의 수업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 높은 자신감에 끌려 수업 진행을 희망했던 것은 제가 맞으니까요.


우리는 계획이라는 행동을 하면, 그 깊이가 아무리 얕을지라도 계획 끝에 있는 목적을 생각합니다. 야망과도 같은 커다란 것은 아닐지라도 ‘Xkg 감량한다’, ‘내일 아침에는 30분이라도 운동할 거야’와 같은 계획 끝에 있는 변화된 나를 상상하며 이것저것 끄적여 보곤 합니다. 계획표, 일정표, 시간표에는 저마다의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내일은 조금 더 보람차게 보낼 것이라는 기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 그것들을 위해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보내겠다는 기대가 담겨있습니다.


계획한 대로 모든 일들이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된다면 얼마나 재밌을까요. 누군가는 그렇게 예상한 대로 살면 재미없을 것이라 하지만,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가 세운 계획들, 내가 바란 시간의 흐름 위에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다면 그 자체로도 너무나 행복하고 벅차오를 것만 같습니다. 예상대로 되지 않는,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그만 힘들고 싶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발판으로 행복을 꿈꾸고 찰나의 변수로 달성하지 못하는 그런 삶이 이제는 지겹기만 합니다.


계획한 일정이 코 앞으로 다가왔을 때, 특히 그때가 원대한 계획을 만족스럽게 이루지 못했을 때, 우리는 ‘체념’하거나 ‘인정’합니다. 제가 말하는 체념이란, 계획 자체를 백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체념한 사람은 계획한 대로 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으니,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날 하루를 살고 계획은 미래 어딘가에 다시 던져 놓습니다.


인정은 조금 다른 의미입니다. 인정은 자신이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본래의 계획을 자신에 맞게 수정하는 행동을 포함합니다. 인정하는 사람들은 계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의지에만 탓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찾고자 노력합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삶은 치열하구나’

‘내가 요즘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구나’


인정하는 이들은 쓴웃음 쏟아내며, 동시에 기대한 바를 이룰 수 있도록 또 다른 계획을 이전보다 촘촘하게 짜 봅니다. 매일 운동가는 것이 어렵다면 일주일의 3번으로 줄이고, 다른 우선순위가 많을 때는 일주일에 2번으로 줄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약간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는 조금씩 그 수준을 높여가는 계획을 유동적으로 운영하며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만들어 갑니다.


제가 닮고 싶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현재를 ‘인정’하고 본인 삶에 대한 기대를 나 자신으로부터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루고자 하는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갈 때, 타인에 내 기대를 투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본인의 소리에 더 집중합니다. 그들은 대개 바빠 보이는데, 이상하게 저의 바쁨과는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도 여유와 미소가 있습니다. 고민을 할지라도 번뇌하지 않습니다. 어찌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마주한다면,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 원인을 열심히 노력한 자신에게 억지로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팽창하여 사람을 대하는 모습, 즉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도 녹아 있습니다. 그들은 앞에 있는 사람들을 온전히 그들 자신으로 보고자 노력합니다. 굳이 자신의 세계로 불러오지 않습니다.


참 닮고 싶은 모습이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앞에 있는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이것이야 말로 너무 큰 야망에 가깝습니다. 여럿이 모여 같은 글을 읽을 때에도 저마다 받아들이는 내용이 다른데,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온전히 그들 자신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는 것은 그 시도만으로도 얼마나 힘들까요.


결국에는 그들처럼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안 이후로는, 저는 약간 다른 방법으로 저 자신과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끓어오르는 사람에 대한 기대는 그대로 두되, 그 기대를 하는 주체가, 그 중심은 결국 '나'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되새기고는 합니다.


앞에 있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는 것, 그 사람이 멋져 보인다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람 스스로 빛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 또한 그가 빛난다고 인식하기 때문인 것도 이유입니다. 방 안에 전등이 제 아무리 빛날지라도 문을 닫으면 그 방에 걸려 있는 전등의 모양도 별 관심이 없어집니다. 타인에 대한 기대 안에 나 본연의 주체성이 놓여 있다는 사실, 그 역설을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매일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는 우리 일상처럼 우리의 기대도 계획도 매번 바뀝니다. 계획을 나에 맞게 수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더 알아가고, 흔들리지 않는 방향으로 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계획이 없더라도, 계획한 것과 다를지라도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과 성장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번에 이렇게 크게 깨달았다 할지라도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 기대를 품고 또다시 상처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시기가 문제지 언젠간 또다시 반복될 것입니다. 하지만 회복하는 속도는 점차 빨라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한 번 겪었으니 다음에는 더 빨리 털고 나 자신을 다독일 것이라는 계획을 세워봅니다.





<계속>



* [안녕, 나의 20대] 시리즈는 제3자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변하며 과거의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제가 실제로 참여한 프로그램 경험을 바탕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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