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한 번 본적 없는 강사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대하기 편하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더라도 서로 누군지 전혀 모르는, 눈을 마주치더라도 이내 시선을 거두는 그런 낯선 이. 그렇기에 더 솔직하게 글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익명성의 편안함 외에도 내가 요즘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모니터 너머 강사도 꽤나 내 글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되어 있는 질문 리스트를 사용한다기 보다 내가 보낸 답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적절한 질문들을 고민 끝에 내어준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가끔 힘내라는 식의 짧은 코멘트도 보내주는데, 비록 한 줄의 글일지라도 아무말 하지 않는 세상보다야 훨씬 더 위로가 된다.
처음에는 내가 보낸 답변을 다시 정리하여 내가 다시 읽도록 만드는... 그러한 강사의 질문 방식에 당황했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내가 쓴 의도와 다르게 상대방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내가 뱉은 글이 제멋대로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 즐겁다. (물론, 내가 두서없이 써서 그럴 확률이 높지만) 매일 꾸준히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이지만, 내 글이 재미있다며 다음 글이 기대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글을 써서 보내는 것도 처음이다. 요즘은 힘들더라도 글을 쓰고 싶다.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가고 싶다.
남들에게 하지 못할 이야기는 정말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이 들으면, 굳이 그것을 숨길 필요가 있냐고 물어보는 것들일 수도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그것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말을 안하는 것이다. 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게 이유다. 굳이 말해서 무엇하나. 딱 그정도의 마음가짐이다. 부모님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이것은 짧지만 강렬하게 살아온 내 인생이 나에게 알려준 선물이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일단 나부터가 그렇다.
사람의 에너지는 총량의 법칙을 따르기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하루 중 온전히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선택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한정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공감을 하는 요구하는 사람의 마음과, 공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천지차이다. 공감을 하는 쪽으로 생각하면 ‘에너지'를 쏟는, 그 사람에게 몰두하려는 '노력'하는 행동이 수반된다. 내 앞에서 말하는 이가 내가 공감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든 모르든, 그가 뱉은 말들에 내 관심이 가기 시작하면(대개 신세한탄이다),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는 그 사람에게 꽤나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공감을 받는 입장에서 상대방의 공감여부는 어찌보면 그렇게 귀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바라는 것이 다르겠지만 내 기준에서 바라는 공감은 그냥 입다물고 들어주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끊지 않고 여백을 참으면서 잠자코 들어주는 것이 내가 바라는 공감이다.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자리를 벗어나 잊어버려도 된다. 그냥 내가 사람에게 말하고 있구나, 나도 말할 사람이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들면 그만이다. 억지로 내 이야기를 뒤이어 질문할 필요도, 온 정신을 집중해 표정을 지어줄 필요도 없다. 전화로라도 그냥 들어주면 된다.
하지만 이보다 내 이야기를 함으로써 공감을 얻기 위한 가장 큰 전제조건은 그 사람이 나와 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 주기적으로 봐야 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면, ‘공감을 요구하는’ 내딴에는 큰 일을 공유할 이유가 사라진다. 나의 힘듦을 말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을 대하기 껄끄러워지기 때문이다. 고마움의 표시를 주기적으로 해야할 스스로의 압박감을 느끼거나, 그 사람을 만나면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그 당시 일련의 사건들이 떠오르는 등 공감을 얻으며 느꼈던 편안함에 대한 보상으로 지불해야 할 것이 생각보다 크다.양쪽 다 서로를 흘러가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관계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딱 적당하다.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필요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을 뿐더러 맥락 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프레임을 형성하지 않은 상태이기에 이야기를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보려 노력할 확률이 높다. 어색한 사이이기에 끊을 타이밍을 잘 찾지 못하는 것은 덤이다.
쓰다 보니, 주제가 외길로 너무 빠졌는데 결론은 지금 이 글쓰기 수업이 좋다는 것이다. 기분 좋다고 내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그것도 많은 분량의 이야기를 이어서 쓰고 있다는 것이 지금 내게 참 힘이 된다. 내가 이렇게나 말을 하고 싶었었나 싶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요즘 모르는 이에게서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나 보다.
오늘도 어김없이 메일함에는 질문이 들어와 있다.
질문 15: 나는 이미 넓고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어디에서 무얼하며 살아가건 나의 세계는 이미 넓고, 깊고, 충만하리라는 사실을 '압니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인생을 위해 작은 것이라도 조금씩 조금씩 실행해가면서 내 인생을 튼튼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올해 안으로 실행할 일들은 '이런' 것입니다. 꼭 사업을 위한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은 남은 20대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 지 계획하며 글을 써보겠습니다.
오늘은 저의 연말과 내년계획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올해는 여러 일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올해는 제 20대의 마지막입니다. 나이가 뭐가 대수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에게 20대는 너무나 소중한 순간들이었기에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떻게 연말을 보내야 할지 확실히 정하지는 못하였지만, 단순한 마무리가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한 준비단계의 마무리라는 느낌으로 계획을 세우고자 합니다. 매년 연말마다 친한 지인들을 만나는데 모든 시간을 다 쏟았는데, 금년은 우연찮게 전염병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워서 어디 잘 나가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강제로 주어졌으나 어찌보면 기회이기에, 짧지만 제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회사에서 제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장기화되면서 내년 중순까지는 일정시간의 야근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열심히 주어진 돈만큼의 값어치를 해내기에 앞서, 제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어찌보면 저 나름대로의 힐링인데요, 연말에 읽고 싶은 책들을 모조리 사들고 한적한 동네에 숙소를 잡아 몇일 동안 묵을 계획입니다. 전화기도 꺼놓고 모든 것과 아주 짧게라도 거리를 두고 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계획을 세세히 짜기 전,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확실한지 점검해 보는 시간입니다.
내년은 올해보다 더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운동을 가고… 한발자국 내딛는 것이 어렵지, 계속 걷다보면 언젠가 제 몸 하나 편하게 뉘일 곳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저는 매년 연말에는 다음 해에 꼭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적었는데요, 올 해는 적지 않으려 합니다. 매년 말 작년에 적어둔 리스트 중 크게 이룬 것 하나 없는 것을 보는 것이 지치기는 것이 반, 내년에 그다지 열정적으로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쓸 말이 없는 것이 반입니다. 지쳤나 봅니다.
아 한가지 있습니다. 목표라기 보다는 마음가짐인데, ‘내년에는 하고 싶은 일은 그냥 하자' 입니다. 너무 참다가, 준비만 하다 끝난 20대가 아쉬워서요.
오늘 글쓰기 주제인 연말 계획이라는 키워드를 보고 쓸 말이 많겠거니 생각했는데, 막상 글을 써내려가니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내년에 무엇을 하고 싶냐고 조용히 저에게 물어봐도 별다른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하루 하루 잘 넘겼으면 좋겠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주신 꿈에 대한 질문에는 그렇게 신이나 적었었는데, 막상 몇일 뒤인 내년 계획을 못세우고 있는 것이 저 또한 신기합니다. 단순히 프로젝트를 완수한다, 대학원에 입학한다, 매일 글을 쓴다 와 같은 세부계획이 아니라 생기를 얻을 수 있는 목표를 공유하고 싶은데 정말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오늘은 이만 출근 준비를 해야 해서 나가야 될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대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아가는 원대한 계획!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주기적으로 요동치는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구체적인 행동지침도, 단계별 계획도 없지만 내년에는 올해보다 제 주위에서 일어나는 세상만사에 무뎌지고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