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20대] 8일차: 욕구의 평범함

by 읽쓰생정

8일차



질문 8: 나의 세계는 점점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정원에 다양한 과실수를 하나씩 하나씩 새로이 심어가듯,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의 시간 또한 소중하고 알차게 보내고 있습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토론할 거리가 무척 많은 책입니다. 나는 지금 '첫째인 드미트리가 아버지의 정부를 사랑하며, 부도덕하고 음탕한 아버지에게 대드는' 장면을 읽고 있습니다. 그 장면에는 아버지인 표도르 카라마조프가 자신의 지난 기행들을 나름의 이유로 합리화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 소설은 상황을 극단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 저마다의 욕망을 가지고 있고 책 속의 인물들은 '카라마조프'라는 혈족으로 묶여 그 본성에 따라 욕망을 더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을 써보고자 합니다.






8일차에 들어서서야 질문 패턴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일단, 이 사람은 나름대로 내가 쓴 답변들 속에 놓인 숨은 뜻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내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쓸 때 그 시간에 쓸 수 있는 최대치의 에너지를 쓰는 것처럼 이 사람도 질문을 만들기 위해 내 글을 꼼꼼히 읽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그가 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쓰고, 메일로 전송하는 순간 그 글은 이제 내 손을 떠나 그 자체로써 존재하는 글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 글을 누가 썼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이는 그 글이 언제, 누구에게 읽느냐에 따라 또는 개인의 기분, 성향, 성격, 목적 등에 따라 다르게 변형되어 그 사람들에게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글이 가지는 모호함은 생각보다 더 클 수 있다.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많이들 말하지만, 사실관계를 나열한 법정문서가 아니고서야 감정이 개입된 글들은 의도된 방향을 벗어날 확률을 항상 가지고 있다. 결국 그냥 각자 받아들이기 나름인 것이다. 어찌되었건 결국 자신이 이해한 내용이 맞다고 생각할테니 말이다.


오늘 받은 질문은 도통 쓸 말이 없는 질문이다. 쓰려면 쓰겠지만 굳이 적고 싶지 않은 질문이다. 뻔하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일단 질문해 준 사람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써봐야겠다. 쓸 말이 없을 것 같더라도 쓰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장황하게, 재미없게 써지는 날도 있으니까 말이다.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야기는 서로 너무나 다른 성격을 가진 네 명 형제와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추구하는 바와 성향은 모두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개인의 욕망에 충실합니다. ‘욕망’이라 표현하면 가지지 못할 것을 무리하게 탐하는 이미지가 강하게 전달될까 우려스럽기도 하지만 ‘욕구’로 표현하기에는 그들이 바라는 강도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욕망으로 쓰려합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매순간 진실되게 원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목적’과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오늘 저녁은 파스타를 먹어야지’, ‘내일 아침에는 책을 꼭 읽어야지’와 같은 찰나의 순간을 위한 욕구들 말입니다. 저는 이 욕구들이 우리가 시간을 따라 걸어나가도록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을 상상하고 원하던 그것은 그 사람이 잠들 수 있도록 해주고 아침에 일찍 눈을 뜰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욕구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희열, 그 감정이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


선생님, 프로그램 OT 때 질문과 상관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유롭게 써도 된다 하셨죠?

오늘은 카라마조프가의 사람들 이야기는 잠시 넣어두고, 욕구에 대한 제 생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은 너무나 다릅니다. 자신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욕구들이 만들어지고, 동시에 욕구들이 쌓여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 갑니다. 누구나 원하는 것을 쫓을 권리가 있고 사실상 쫓을 수밖에 없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바라는 욕구 또한 남들과 비교하는 경우가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겁니다. ‘나는 남들과 같이 거창한 꿈이나 바라는 것은 없어. 그냥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와 같이 말하는 이들을 종종 봅니다. 애초에 ‘거창한 꿈’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기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하면 그만입니다. 헌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생각을 안하려고 해도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일상을 살고 있는 듯 합니다.


자신이 바라는 꿈이라면, 그것이 곧 자신한테 어울리는 꿈입니다. 남들이 꾸는 꿈을 굳이 거창하다고 표현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꾼 꿈을 내가 꾸기엔 거창하다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꿈꾸고 인생의 미션과 비전을 나눌 때조차 앞에 앉은 사람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세상이 참 싫습니다.




<계속>


* [안녕, 나의 20대] 시리즈는 제3자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변하며 과거의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제가 실제로 참여한 프로그램 경험을 바탕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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