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맞이해서 서울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버스에 탑승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멀미가 잘 나는 편이라 편하게 자기 위해서 앞뒤로 사람이 없는 자리를 찾아서 예약하곤 한다. 사실 모르는 사람이 옆에 있다고 하더라도 잠은 잘 자긴 하지만 일단은 그렇게 자리를 잡는다.
예약했을 때는 앞뒤 옆으로 예약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고른 자리였는데 자리에 앉고 얼마 안 있어서 어떤 어머님께서 내 옆에 짐을 내려놓으시고 앞에 어린 여자아이의 안전벨트를 단단히 채우시는 것을 보면서 편하게 갈 기회가 사라진 것 같아서 내심 아쉬워했다.
어머님은 여자아이에게 사탕을 쥐여주신 뒤에 짐을 내려놓았던 내 옆 자리에 착석하셔서 내려놓았던 짐들을 정리하셨다.
원래는 바로 옆자리에 앉으셔서 챙겨주시려고 했던 것 같은데 급하게 예약하다 보니 남아있는 자리가 앞뒤로 떨어져서 어쩔 수 없어 보였다.
그런 어머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좌석 사이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자기 손보다 큰 스마트폰의 화면을 계속 쓸어내리면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계속 보려고 한건 아니었는데 어두운 버스 안에서 좌석 사이로 비치는 번쩍 거리는 화면들이 시선을 계속 사로잡아서 자기 전까지 힐끔 거리며 보게 되었다.
몇몇 영상의 내용은 분명 그 여자아이 나이대에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
아니, 결혼생활에 대한 경험담을 왜 넘기지 않고 계속 보고 있을까...
사람들이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떼쓰는 아이들에게 특효약이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아니라 어리광 부리는 캐릭터들이 나오는 유튜브 영상이 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저번 설날에 방문했던 외삼촌 집에서 외삼촌 막내아들이 누나들이 자기랑 안 놀아준다면서 떼쓰다가 스마트 TV에 나오는 '바다 탐험대 옥토넛'을 보고 마취된 것처럼 진정되는 모습을 신기하게 본 것이 기억난다.
뒷좌석에 앉은 어머님과 멀지는 않지만 홀로 앉아 있는 건데 떼쓰는 것 없이 능숙하게 폰을 조작하면서 영상을 보는 아이의 모습에 뭔지 모를 위화감도 느꼈다.
어려서부터 기술적 진보를 경험하며 자라는 2010~2024년에 태어난 세대를 '알파세대'라고 한다.
알파세대인 저 아이한테는 당연한 일상일 텐데 내가 이런 빠른 시대의 변화에 아직 적응을 못하는 것 같다.
내 옆에 앉으셨던 어머님은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안 되어 고개가 거의 75도는 꺾여 계셨다.
육아의 피로로 금방 꿈나라에 가신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앞에 앉은 아이가 뭐 하고 있는지, 챙겨줄 건 없는지 계속 지켜보시느라 그런 것이었다.
서울 가는 내내 몸과 목을 앞으로 기울여 계시느라 쉬질 못하신 것 같다.
아직 오전인데 버스에서 내리신 어머님의 모습은 굉장히 피곤해 보이셨다.
마스크에 감춰져 있었지만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면서 신나 하는 아이에게 이야기하시는 말에 힘이 없음이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기술이 진보하면 육아도 쉬워질 것 같은데 예전의 우리 부모님들보다도 지금 부모가 되는 우리 세대들의 사람들이 육아를 더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것 같다.
본인의 삶을 자식에게 모두 투자했던 우리 부모님과는 달리 우리들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 곳이 너무 많다.
자신의 삶을 누리고 싶어 하면서 맞벌이도 하는데 아이들까지 키우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 배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래서 우리나라 출산율이 OECD 국가들 중에 최저라고 하는 건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친구를 만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친구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나 생각들을 쏟아내기 위해 잡생각들은 잠시 머릿속 잡동사니 서랍에 넣어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