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살아가는 일상

입김나는 출근길을 걷다가 생각난 일상 속 노력하는 나의 모습

by 신푸름

'어제는 5명, 오늘은 7명...'


급격히 추워진 날씨 탓에 늘 같은 시간에 운동하던 사람들의 수가 줄었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추위가 갑자기 찾아왔다. 겨울치고는 따뜻했었는데 어느 날 눈이 펑펑 내린 뒤에 아침 기온은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져서 올라오질 않는다. 덕분에 새벽 운동하면서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의 수가 많이 줄었다.


나도 작년에 비해서 굉장히 춥다고 느꼈다. 아니, 추위에 대한 내성이 떨어진 게 맞는 것 같다. 작년에는 오늘보다 더 추운 날에도 꽁꽁 싸매고 걷기 한다고 여자 친구한테 걱정이 가득 담겨있는 '혼남' 한 바가지를 받았었다. 올해는 내가 저 추위를 뚫고 운동을 나갈 자신이 없었다. 하, 군대에서 최전방 GP 생활할 때는 겨울에도 반팔 입고 뛰어다녔는데 나이가 들면 입김 한 번에도 뼈가 시리다더니 그 말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눈발이 날리는 운동장. 이젠 추위를 이기기 어려워진다.

운동 중 듣는 라디오에서도 DJ분과 라디오 코너에 나오는 게스트 분들이 너무 춥다고 하고 날씨를 알려주시는 리포터 분도 추우니까 건강 조심하라고 했다. 손이 얼어가는 와중에도 나는 열심히 '앱테크' 한다고 걸음 수를 다 채웠으니 포인트를 받기 위해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120원, 100원, 정말 얼마 안 되는 돈이다. 이렇게 해서 매일 만나는 이순신 장군님이 언제 퇴계 이황 선생님이 되고 율곡 이이 선생님이 될까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차곡차곡 모아 본다. 집값이 좀 떨어진다고 하지만 억대 가격을 생각하면 지금의 앱테크 돈 모으기는 부질없다고 생각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커피 한잔 값이라도 벌자, 조금 더 하면 햄버거 한 세트는 시킬 수 있겠다, 여러 가지 긍정적인 생각으로 위안을 하려고 한다.


아침 출근을 하면 항상 만나시는 분들이 있다. 성함도 모르고 무슨 일을 하시는지도 모른다. 내가 출근하는 길에 잠깐 합류했다가 사라지시는 분들. 거의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니까 만나는 분들도 거의 같다.


얇은 덴탈 마스크를 2개씩 쓰시는데 귀에 거는 부분이 밴드 형태가 아니라서 머리 뒤로 꽁꽁 묶고 다니시는 분. 마스크의 크기도 커서 눈 말고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오늘은 날씨 때문인지 털 달린 패딩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신 덕분에 눈 마저도 볼 수 없었다.


집 근처 초등학교 너머부터 천천히 걸어오셔서 항상 마주치는 지점에서 뵙는 할머니 한 분도 계신다. 주 5일 출근하는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같은 속도로 산책을 다니신다. 오늘도 멀리서 오시는 걸 뵀는데 날씨도 추운데 왜 주먹을 꼭 쥐고서 주머니에 넣지 않고 허리에 바짝 붙이고 오시는 모습에 조금 의아했다. 가까이 가서야 주먹을 쥐고 계신 게 아니라 분홍색 털모자를 쓰셨는데 모자와 연결된 귀 아래로 몽글몽글한 털 뭉치가 긴 줄에 매달려 있는 거라는 걸 알았다.


같은 시간에 공공기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그 기관 직원인 줄 알았더니 차만 주차하시고 어디론가 사라지신다. 주차만 하시고 유유히 떠나시는데 길을 건너시는 것도 항상 같은 길 쪽에서 건너시고 건너편 골목 너머로 사라지신다.


10분 정도 출근길이 비슷해서 의도치 않게 같이 걷는 분도 계신다. 걷는 속도도 비슷해서 남들이 보면 직장 동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처음에 이분을 마주칠 때는 같이 걷는 느낌이 불편해서 차라리 빨리 걸어서 따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밌게도 내가 빨라지니까 이분도 빠르게 걸으셔서 묘한 경쟁심이 붙는 나만의 느낌이 들었다. 요즘은 그냥 빨리 가시든, 내 뒤에 있으시든 신경 쓰지 않고 내 갈길을 가기로 했다. 가끔 생각 속에서 나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 똘끼 있어 보여서 싫긴 한데 남들은 생각도 안 하는 별 것도 아닌 것에 신경 쓰는 내 모습을 보면 그런 세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년 이직을 준비하기 위해서 한국사랑 토익 공부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윤선생 영어교실 하면서 파닉스 배우기 시작으로 영어공부 한 지가 20년이 넘었다. 1만 시간 투자하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도 있는데 왜 영어는 마스터하기가 힘들까. 불만은 많지만 해야 한다. 내가 목표로 하는 회사가 그걸 원하니까! 퇴근하고 와서 추위에 지친 몸을 녹이고 저녁을 먹고 나면 노곤함이 밀려온다. 정신 차리려고 재미있는 영상을 보려다가 몇십 분이 그냥 지나갈까 봐 라디오를 대신 튼다. 노곤함과 힘겨루기 하면서 싸우다가 방심하는 기회를 봐서 엎어뜨리고 정신을 차린다.


최태성 강사님의 한국사 강의를 들으면서 쏟아내시는 명언에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살짝 불타오른다. 불타오르는 마음으로 오늘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뿌듯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방이 춥다 싶으면 보일러도 살짝 올리고 이불 밑에 전기장판도 틀어서 따땃하게 만들고 몸을 이불속으로 쑥 들이밀면 쾌감이 느껴진다. 시간은 자기 전까지 뭔가 하나라도 더 할 수 있는데 장판의 따뜻함에 눈이 스르륵 감긴다. '독한 사람들은 이 시간에도 노력할 텐데 이래서 성공할 수 있겠어?' 가시 돋친 질문을 던지면서 잠에서 깨려고 하는데 무거워진 눈꺼풀이 가시를 부숴버리고 정신을 짓누른다. 간혹 깨면 책 한 페이지라도 더 읽는다. 어느 순간부터 하루를 보낼 때 기대 이하로 살게되면 불안한 마음이 드나보다.


우스갯소리로 가상의 어느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공모한 사훈 중에서 이런 게 있었다고 한다.


日職集愛 可高拾多 (일직집애 가고십다)

뜻은 '하루 업무에 애정을 모아야 능률도 오르고 얻는 것도 많다'라고 한다.

능률과 얻는 게 많으려면 애정을 모아야 한다는 말은 가혹한 것 같다. 하루 업무라고 할 수 있는 게 직장 말고도 자기 계발도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은 애정을 쏟을게 너무 많다. 모든 것에 애정을 쏟으려면 참 많은 관심과 끈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매일 꾸준히 하고 있는지, 문제가 발생되진 않는지 등등... 무엇이 일어날지 정해지지 않은 막막한 미래를 향해 겁나면서도 한 발자국씩 내딛는 피곤한 하루를 우리는 잘 버티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일상이 모여 사회를 움직이게 한다. 또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피곤한 하루를 보낸다. 삶의 이치는 돌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