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부산광역시 동래구 한 요양병원의 병실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들리던 소리이다. 이십 대 후반의 한 젊은 청년은 병문안을 올 때마다 70세가 넘은 할머니에게 귓속말로 질문을 했다. 청년은 거의 울먹이는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물었고, 할머니는 무심한 듯 덤덤하게 “백옥자”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이름은 백옥자, 바로 나의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서만 10여 년을 계셨다. 서서히 생명의 빛이 사그라져가는 할머니를 지켜보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사람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다. 쓰고 읽을 수 있는 글자는 딱 세 글자 “백옥자” 뿐이었다. 그마저도 환갑이 넘은 나이에 동사무소에서 배운 것이었다. 할머니는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셨고, 한글을 배우지 못한 것을 일생의 한(恨)이라 생각하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집에 어른이라고는 할머니만 계셨다. 당시 어머니는 이혼하셨고, 아버지는 연안어선을 타시느라 한 달에 딱 일주일만 집에 계셨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에서 성적표나 가정통신문이라도 받아오는 날은 할머니에게나 나에게나 곤욕이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가정통신문이나 성적표 빈칸에 학부모의 의견을 써넣은 다음, 학교로 다시 가지고 가야 했다. 어린 시절의 삐뚤삐뚤한 글씨체로는 어른 글씨를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할머니께 성적표를 가져다 드리면 할머니는 그것을 옆집에 가져가서 완성해오곤 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필요한 것이 있을 때나, 원하는 것이 있을 때면 거짓말도 많이 했다. 할머니는 손자의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다 믿어주셨다. 글을 모르시기 때문에 다 믿는다고만 생각했다. 나중에 사촌 누나를 통해 들은 사실이지만, 할머니는 이미 손자의 거짓말을 다 알고 계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내색 한 번 안 하시고 손자의 말을 다 믿어주고 속아주셨다.
할머니는 비록 글은 몰랐지만, 행동으로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유일하게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고,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해 훌륭한 부모의 역할도 해주었다. 손자가 사고라도 치는 날이면 한달음에 달려와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빌었고, 못난 손자를 보듬어 주셨다. 만약 할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범죄자들의 흔한 변명처럼 불우한 가정형편을 탓하며 망가진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기억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할머니를 그렇게 살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매주 교회에 나가 예수님께 손자의 출세와 안녕을 빌었다. 조상님은 또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던지 없는 형편에도 제사상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차리곤 했다. 그런데도 인생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팔려 가듯 결혼을 해야 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남편과 사별하고, 홀몸으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키워야 했다. 다 큰 자식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보살핌 받지 못했고, 70이 될 때까지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여기에 아들 부부의 이혼으로 못난 손주까지 떠맡아 키워야 했고, 손자가 장성했을 무렵에는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다. 손자의 효도라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되어서는 덜컥 치매에 걸려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제대로 된 효도 한 번 받지 못한 채, 끝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순간부터 두 가지를 결심했었다. 하나는 할머니 임종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꼭 성공해서 자서전에 할머니 이름 석 자 새기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 가시는 길을 배웅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임종은 지킬 수 있었지만, 후자는 끝내 이루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할머니를 기억하고 추모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는 할머니에 대한 기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너무 서글펐다. 더욱이 시간이 지나면 나 말고는 아무도 할머니를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속상했다. 그래서 비록 아직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도 않고,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등졌지만, 위대한 여성이자 어머니였고, 또 할머니였던 그녀를 누군가는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늘에 보내는 글
하늘에서 할머니가 글공부 열심히 하셔서 부디 이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못난 손자가 더 못난 아들을 대신하여 사죄하는 마음을 담아 쓰는 통렬한 반성문이자, 할머니의 삶에서 얻은 교훈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자기 계발서이다. 할머니는 비록 한글도 배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훨씬 더 많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셨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할머니를 떠올리면 자꾸만 눈물이 흘러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온전한 정신으로 대화한 것은 10년이 넘었고, 돌아가신지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이름 석 자만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부디 그곳에서는 못난 아들과 만나 건강하고 또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나중에 다시 만나는 날 이 못난 손자도 용서하고 안아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