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2021년 3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곳이 어딜까? 내 생각에는 아마 부산 가덕도가 아닐까 한다. 영남권 신공항을 짓니 마니 하는 문제로 뉴스만 틀면 언급된다. 한쪽에서는 가덕도 신공항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덕도가 공항 입지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반발한다. 가덕도가 공항 입지로 적합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정말 아름다운 섬이다.
가덕도는 부산 기준 서남쪽 끝에 있는 작은 섬이다. 지금은 가덕대교, 거가대교 등의 다리가 세워져 부산에서든, 거제도에서든 쉽게 차로 이동할 수 있지만, 예전에 가덕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배를 타고 가장 멀리 돌아가야 했던 곳, 가덕도 새바지항이 바로 나의 할머니의 고향이다.
할머니의 어린 시절
내가 대학에 다닐 때 했던 과제 덕분에 할머니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현대 여성의 삶에 대한 주제로 레포트를 써야 했는데, 나는 할머니의 삶을 주제로 글을 썼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소녀처럼 눈이 반짝이기도 했고, 형제, 자매와 관련한 이야기에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할머니 어릴 때 기억나요?”
“그라믄 기억나지”
“할머니 어릴 때는 일본이었겠네요?”
“그래 독립했을 때 가덕에서도 만세운동했다이가 작게”
“할머니 6.25 때는 어땠어요?”
“전쟁 일어난지도 몰랐다이가, 근데 갑자기 앞바다에 군함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포탄이 떨어지는 기라, 그래서 일본 놈들이 전쟁할라고 파놓은 굴에서 생활했지, 아마 몇 개월 될 거라”
실제로 가덕도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인공동굴이 있다. 현재는 관광지로 잘 꾸며져 있다. 그 인공동굴을 통과하면 멋진 자갈 해변이 펼쳐진다. 이 곳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이곳이 침략과 전쟁의 흔적이 맞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평화롭다.
사실 가덕도는 워낙 외진 곳이라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부친은 전쟁통에 무슨 공부냐며 모든 자식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의 오빠는 어떻게든 고집을 부려 중등교육까지 마쳤지만, “여자가 공부해서 어디에 쓰냐”는 부친의 확고한 고집으로 인해 초등교육도 받지 못한 채 빨리 시집을 가길 강요받았다. 어쩔 수 없이 할머니는 배움을 포기하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야 했다.
글을 배우지 못한다는 건
할머니는 일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까지도 이때의 결정을 후회하고, 부친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때 국민학교만 나왔더라면..', '적어도 글자만 깨우쳤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수시로 토로하시고는 했다. 특히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잘 모르는 길을 가야 할 때는 글자를 모른다는 사실을 더욱 답답해하셨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혼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많이 속상하신 듯했다.
사실 할머니의 고충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앞이 보이는 사람이 앞 못 보는 이의 심경을 이해할 수 없듯이 글자를 모른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조금 답답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목적지는 일본이었다. 첫 해외여행의 설렘도 잠시, 도착 후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한자와 일본어에 패닉 상태가 되었다.
당장 버스 노선부터, 간판, 식당의 메뉴판까지 뭐 하나 시원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본어 회화를 달달 외워서 왔는데도 문자에 적응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실컷 해외에 와서 휴대폰으로 검색한 블로그 맛집이나 찾고 있는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할머니도 이렇게 답답한 심경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었다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물론 할머니가 글자를 배우는 노력을 하지 않으신 건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할머니 나이 환갑에 가까워질 무렵에 할머니께 글을 가르쳐드리고자 했다. 할머니도 처음에는 기뻐하시며, 의욕적으로 배우려고 하셨다. 하지만 공장에서 일을 하고, 각종 집안일에 손주까지 키우면서 배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많이 버거워하셨다. 이내 글공부를 포기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는 동사무소에서 어르신들 글을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해서 할머니께 참여해보라고 권해드렸다. 이미 늦었다고 극구 사양하시던 할머니는 손자의 등쌀에 못 이겨 참여하셨다. 거기에서 본인의 이름, 손주 이름 등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한글을 배워 오셨다. 이후 할머니는 이름을 쓸 일이 있으면 직접 쓰시려고 했고, 이름을 직접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셨다. 끝까지 배우시길 원하셨지만, 또다시 현실의 벽에 막혀 중도포기해야만 했다.
이후에는 글자를 알려드리고자 해도 이미 늦었다면서 완강히 거부하셨다. 60년을 배우지 못한 후회 속에 사셨으면서도, 항상 너무 늦었다고 한탄하셨다. 할머니는 이후 20년을 더 사셨다. 어쩌면 오십 대, 육십 대였을 때 라도 글공부를 하셨다면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늦었다고 후회하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었다. 만약 할머니도 글공부를 하지 못한 게 그 정도로 한이 될 줄 알았다면, 그렇게 갑자기 치매에 걸리고 세상을 떠나게 될지 알았다면 진작에 한 번 시도라도 해보지 않으셨을까?
방송인 박명수는 ‘늦었다고 할 때는 너무 늦었다’는 명언을 남겼지만, 어쩌면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오래된 격언이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지금 이런저런 핑계로 하지 못하는 일들이 평생의 후회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