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모가 된 할머니

맹목적인 사랑의 위대함

by The 늦기 전에

요즘에는 '이혼'이나 '한 부모 가정'이 흠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이혼을 주제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많이 생기고, 이혼한 연예인들이나 홀로 자녀를 키우는 싱글맘, 싱글대디도 당당하게 이혼 사실을 밝힌다. 특히 최근에 방송인 사유리 씨는 정자 기증을 통해 스스로 싱글맘이 되기로 결심하여 크게 이슈가 되기도 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혼이라는 말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이혼한 당사자는 어딘가 흠이 있거나, 큰 결함이 있기 때문에 이혼을 했을 것이라는 안 좋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다. 또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질 나쁜 아이처럼 여겨졌다. 나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이런 좋지 않은 시선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이혼은 할머니의 인생에 ‘손자의 양육’이라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만들었다.


떠맡게 된 손자


아들이 연안어선을 타게 되면서 할머니는 며느리, 손자와 함께 생활했다. 며느리도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손자의 보육은 할머니 몫이었다. 할머니 집에서 다 같이 생활하였는데, 자식 부부에게 안방을 내어주고 아랫방에서 생활하셨다. 아버지가 육지로 들어오시는 날이면, 비록 가진 것은 없어도 잠시나마 평범한 가정이 되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하게 된 것이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사진처럼 머릿속에 박혀있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고, 사회생활을 잘 하지 못하셨다. 여러 말썽을 일으켰고, 참다못한 어머니는 이별을 고하고 집을 떠났다. 할머니는 손자를 완전히 떠맡게 되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다시 한번 부모가 되었다.


내 나이 일곱 살 때는 형편이 특히나 많이 어려워졌다. 아들은 트럭에서 과일 장사를 해볼 거라며 떠돌이 생활을 했고, 손자를 돌봐야 하는 할머니는 정상적으로 출퇴근하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손자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결국 손자를 데리고 한 가정집의 가정부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1년을 가정부로 일하며 손자를 키웠다.


철없던 손자


지금은 키워주신 할머니가 너무 고맙고, 살아생전에 더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가 너무 미웠다. 아니, 미웠다기보다는 창피했다.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학교에 찾아오는 것이 싫었고, 차라리 학교에 와줄 수 있는 부모가 없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라 철이 없었다고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아직도 그때의 행동은 스스로 용서하지 못했다.


특히 힘들었던 것은 운동회 날이었다. 운동회날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이 김밥이나 치킨 같은 음식을 싸와서 나무 그늘 아래서 함께 먹고는 했다. 하지만 내게는 할머니밖에 올 사람이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 창피하고 싫었다. 어린 마음에 '엄마 없는 티'가 날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 운동회라는 것을 할머니께 알리지도 않았다. 그냥 학교 근처에서 파는 닭꼬치 같은 간식이나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운동회가 시작되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할머니였다. 왜 왔냐며 타박을 했다.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할매가 와야지, 밥은 먹었나”라고 물으셨다. 그리고는 사진 한 장 찍자며, 투덜거리는 손자를 잡아세웠다. 손자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사진을 찍었고, 다시는 학교에 오지 말라고 큰 소리를 내었다. 그 모습을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보시고는 마음이 쓰였는지 생일날 편지를 남겨주셨다.



“우리 반 반장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운동회 날 경훈이의 할머니를 보고 난 “경훈이가 참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도 할머니와 아버지께 잘하리라 믿지만 앞으로는 더 믿음직스럽게 자라리라 믿는다. 아름다운 색깔이 온 세상에 가득 한 가을에 태어난 경훈이가 가을의 색깔처럼 아름답고 튼튼하게 잘 자라 주리라 생각한단다 축하해~”


이렇게 철이 없었다.



맹목적인 사랑


철없는 손자의 투정에도 할머니는 불평불만 한 번 하지 않으셨다. 그저 자나 깨나 내 걱정뿐이었다. 혹시나 엇나가지는 않을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않을지 항상 걱정했다. 만날 때마다 늘 밥을 먹었는지 물어보았고, 아픈 곳은 없는지 살피셨다.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사고를 친 날에는 1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단숨에 와서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빌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죄송하다.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답게 할머니는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알고 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해주셨다는 것을.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TV에 나오는 흔한 범죄자들의 변명처럼 불우하게 자라온 환경 탓을 하며 어떤 망가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 같은 어머니 덕”이라고 말했던 링컨의 말처럼 훗날 내가 성공을 한다면 오직 ‘할머니의 사랑’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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