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청년기3-
절은 초저녁 5시 예불을 마치고 시작했는데 한밤중으로 넘어가니 많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8시간이 넘었던 것 같다. 온몸이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왔다. 그러나 준희는 엄마에게 기적이 생겨 나으시려면 이까짓 것쯤은 이겨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계속해 나갔다. 이 고통을 참아 넘기기만 하면 대신 엄마가 살아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에게 확신을 최면처럼 강하게 퍼부었다. 의도적인 최면이 아니라 절박하고 절절한 심정에서 나오는 일종의 절규였다.
옆에서 동참했던 스님들은 하나 둘 힘이 들어 그만 나가버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사람이 옆에 남았다. 어느 순간 이제 육신이 그야말로 자동 기계처럼 움직인다고 느꼈다. 팔이며 다리 그리고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뼈저린 고통은 이제 더 이상 느낄 수가 없었다. 머릿속은 마치 하얗게 빛바래진 것처럼 아무 생각도 염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기계처럼 몸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만 명백히 다가왔을 뿐이다.
드디어 새벽 5시 비구니 스님들이 예불하러 법당에 들어왔다. 한 사람 남았던 비구니는 더 이상 절을 못하고 옆에 앉아 있었다. 새벽 예불하러 법당에 들어온 스님들은 그때까지도 계속 절하고 있던 준희를 보고 놀라서 담요로 몸을 감싸 주며 이제 그만 방으로 가서 쉬자고 따스한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때 준희에게 드는 딱 한 생각, ‘아, 울 엄마는 이제 다 나았다!’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며 그대로 잠에 떨어졌다.
다음 날 서울 집으로 온 준희는 얼굴빛이 발그레 평상시의 모습인 엄마를 보며 기쁨에 겨워 또 목놓아 울었다. 준희의 절절한 기도 때문에 살아나신 듯, 엄마의 모습은 편안해 보여 그만 감격에 겨웠다. 그때 준희 나이는 21세였다. 어느 자식에게나 다 그렇겠지만 특히 막내에게 아니 딸에게 엄마의 존재는 마치 신처럼 절대 없으면 안 될 크나큰 의지처가 아닐 수 없다.
친구 고영순은 만나면 자주 불교 이야기를 했다. 어제는 자신의 집에 어떤 스님이 오셨다는 거다. 그 스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이름을 듣고 준희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모든 불자들에게 존경받는 유명한 큰스님이 개인집 초대에 응해 방문했다는 것은 영순의 집이 보통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영순은 한 번도 자기가 어떤 집안의 자식인가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다만 형제가 많다고 했으며. 위로 언니들이 여럿 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영순은 용산 삼각지에 있는 자기 집으로 준희를 데리고 갔다. 집에 가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넓은 부지에 집 건물이 두 채가 있었다. 아마 하나는 부모가 거주하고 다른 한 채는 자녀들이 거주하고 있던 거 같았다. 가서 영순의 큰언니를 보고 또 한 번의 감탄이 나왔다. 피아노 연주회를 보러 간다고 차려입고 나온 언니의 우아한 자태를 보며 생전 보지 보지 못한 세계를 접하는 듯한 느낌이 준희의 마음을 마구 사로잡았다. ‘아, 방송 드라마가 아니라 진짜 이렇게 우아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 거구나.’
드디어 4학년 졸업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루는 영순이 누군가를 만났다고 이야기하며, 그 남자가 결혼하자고 하나 아직 자신은 안 하고픈데… 하는 고민을 말했다. 학교에 찾아왔던 그 남자도 보았다. 훤칠한 키에 나이가 조금은 있어 보이는 멋진 사람이었다. 잠깐 동안에도 그 남자가 영순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준희는 그 남자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준희는 속으로 ‘내가 남자였어도 고영순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그 남자는 수업이 끝나갈 때면 어김없이 영순을 맞으러 왔다.
그즈음 준희의 관심은 이제 영순 개인이 아니라 그녀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던 내용의 말들이 가슴속 깊이 박혀서 그것을 어서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뭔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응어리가 가슴에 꽉 막혀 얹힌 기분이 들었다. 고영순이 준희에게 던진 충격적이고 놀라운 말들이 어쩌면 불교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며, 그렇다면 불교를 본격적으로 공부해 봐야겠다고 작정을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불교에 어떤 내용이 들었는지 어서 알아봐야 했다. 그러나 어찌해야 불교를 접하고 공부할지 그 방법을 몰랐다. 당시 인터넷도 없던 시기라 뭔가를 접할 수 있는 기회나 방법은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였다. 더욱이 준희가 엄마 때문에 기도 갔던 대전 절에서도 모두 한문 경전이나 읽고 염불하고 부엌일 하고 청소하는 것이 전부인 듯, 누구도 불교에 대한 내용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두 번째 인연복-
시간은 어느덧 졸업시즌이 되었고 가정학과를 졸업하고 교사자격증까지 받은 준희는 충청도 영동에 있는 어느 중학교에 가정과 선생님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 모든 과정이 그저 자동으로 척척 진행되었다. 교사자격증은 관련 과목만 이수하면 저절로 나오고 자격증만 있으면 아주 쉽게 누구나 학교에 교사로 들어갈 수 있을 때였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결혼을 하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누구나 교사로 들어갔다. 지금처럼 취업난 같은 용어 자체가 없었다. 자격증이 있고 대학을 졸업했다면 누구나 원하는 곳으로 취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자녀를 공부시켜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아마도 그때부터 한국사회에 형성된 것은 아닐까. 부모들이 소를 팔아서 라도 아이들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굳건한 의식이 그때부터 생기지 않았나 한다.
결혼에 전혀 관심이 없던 준희는 여전히 불교가 무엇인가? 무슨 가르침이 거기에 있길래 고영순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왜 그런 이해 안 되는 말들을 뱉어 냈을까? 이런 의혹이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물며 마치 쇠뭉치 같은 큰 덩어리가 가슴을 짓 누르는 듯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덩어리를 풀 방법을 찾지 못한 채 학과 교수님의 추천으로 준희는 충청도 영동에 있는 심천중학교에 교사가 되었다. 거기에는 또 다른 인연복이 준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인연이 되는 사람을 만나도 그것이 자기 인생 최대의 기회라고 꽉 잡는 것이 자신의 복으로 승화시키는, 아니 연결시키는 일인데 사람들은 그게 안 되는 거 같다. 그래서 복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거다. 필자 친구의 이야기 하나 예로 든다. 어떤 사람이 돈에 쪼들리는, 그래서 카드 값도 결제 못하게 된 세차장주인에게 내 친구가 자동차를 세차하기 위해 손님으로 갔다. 세차하고 집에 왔는데 주인이 전화를 했다. 그는 착하고 유복해 보이는 손님에게 애원한다.
“45만 원만 선결제를 해주시면 회당 6만 원 세차를 일곱 번 해주고 25만 원짜리 유리 방수작업까지 해드릴 테니 꼭 부탁드린다.”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카드에 월세에 너무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세차는 약속대로 해드립니다.”
그 인정 많던 친구는 젊은 나이에 참으로 안되었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급하면 이럴까.’ 계좌이체로 우선 돈을 보냈다. 답이 없다. 전화하니 너무 바빠서 그랬다며 잘 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봄철이라 꽃가루 날림이 심해서 평소보다 세차를 자주 해야 하는 때다. 입금 후 세차하러 간다고 전화하니 오늘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되고 몇 번이나 거절하다가 하루 겨우 날을 잡았다. 가보니 감기에 걸렸다며 몰골이 말이 아니게 약해 보여 내 친구는 그의 손에 그만 이만 원을 쥐어 주며 어서 가서 영양가 있는 것 좀 먹고 일하라고 독려까지 했다. 돈 보내고 한번 세차했으니 이제 여섯 번 더 남은 거다. 얼마 후 더러워진 차를 세차하기 위해 전화하니 이제 전화까지 안 받는다. 직접 가보니 그 세차장은 벌써 새로운 주인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 새 주인은 내 친구처럼 뜯긴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며 그의 바뀐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겠다는 걸 거절했다고 한다. 어차피 돈을 돌려주지도 않고 세차도 안 해 주려 마음먹은 사람에게 이제 무얼 어떻게 할 거냐 한다.
필자 생각으로는 그 친구의 성정상, 만약 그가 매번 연락할 때마다 정성스레 세차해 주었다면 아마도 더 많은 도움을 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깝다. 그런 귀한 인연을 놓친 그 사람은 복이 정말 없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온 복을 그대로 차 버린 꼴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기사 하나가 생각난다. 젊은 남자가 힘없는 노인을 길에서 만나 정성스럽게 도와주고, 그게 인연이 되어 그 노인이 나중에 전재산을 그 젊은이에게 주었다는, 대강 그런 이야기였는데 그 젊은이는 그 복을 스스로 받은 경우가 아닌가.
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내가 그 기회를 복으로 알고 받아 승화시켜야 한다. 마치 우리가 방송 주파수를 맞추지 않으면 절대로 그 방송을 듣거나 볼 수 없는 것처럼 그 주파수를 맞춰야 어느 방송이든 들을 수 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상대방에게 그렇게 정성스레 주파수를 맞추면 그의 고통이나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그 감정 자체가 바로 상대방과 공감하는 정서적 토대가 된다. 그렇게 되면 상대의 심정을 저절로 이해할 수 있어 함께 한다는 감정이 생긴다. 정서적으로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느낌은, 곧 내가 그의 편이 되는 것이다. 그 감정은 상대방의 마음에 저절로 전달되어 감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감정은 트라우마가 강하게 자리 잡은 사람에게는 정말 어려워 안된다. 그 이유와 치유 방식은 연재가 진행되면서 나올 것이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떤 인연을 만나거나 어떤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사람이 마치 부처인 것처럼 아님 예수인 것처럼 세상 최고 귀한 사람으로 대접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얻어야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이 곧 복으로 승화된다. 말하자면 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옛말에, “있을 때 잘해~” 꼭 맞는 말이다. 항상 누구를 만나든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말은 참 쉽다. 진심! 거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상대에게 심신을 기울여야 한다. 상대의 말을, 아픔을 그리고 그의 생각에 귀기우려야 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상대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다. 둘은 지위고하 또는 귀천 여부를 계산하지 말고 내가 상대보다 낮다는 하심으로 대해야 한다. 이즈음 표현으로 한다면, 사람을 만나 즉각적으로 상대를 평가하며 '잔머리를 굴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준희의 모친이 꼭 그렇게 살았다. 당시, 전쟁이 막 끝나 누구나 먹고살기 어려운 형국에 모친은 집을 방문하는 누구에게나 밥상을 차려 주었다. 먹은 사람은 정말 고마워 어쩔 줄 몰라했다. 이 광경을 볼 때마다 어린 준희는 옷이 지저분한 사람을 집안에 들인다는 것에 신경질을 내곤 했다. 준희는 나이 들어 회상하며, 아마도 이런 부모님 덕분에 그 덕으로 자신이 별 탈 없이 살게 되었다는 것을 절감하곤 한다. 그러면서 준희도 어느새 그런 부모를 닮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가정교육은 이래서 정말 중요하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였나 하는 것이 가정교육인 것이다.
필자도 이런 자세로 살려고 노력하면서 실제로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대하면서 느끼는 감상이 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상대들은 곧바로 자신들을 스스로 갑의 위치로 척~하니 올려놓고 나를 대한다. 상대가 자신 같은 사람을 이렇게 대해 주니 감동을 하며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마치 ‘하~ 이 사람 별 볼 일 없네’ 같은 심정으로 필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는 게 다반사다. 그 세차장 젊은 사장도 아마 친구의 선의를 나름, '세상 바보네~' 하며 '메롱'하는 심정으로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마도 인생에 두 번 다시 못 올 큰 기회를 날려 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