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라 단편소설>
3일 째 비가 내렸다. 나는 3일 째 비를 맞으며 울었다.
유우웅 - 유우웅 -
몸이 오들오들 떨리는 탓에 목소리도 떨렸다. 목에서는 비린맛이 올라왔다. 애써 쥐어짜낸 쇳소리 조차 점점 잦아들었다. 울음소리에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다만 어제부터 나를 유심히 지켜보는 두 눈동자가 기척을 숨길 생각도 않을 뿐이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포기하고 빗속을 멍하니 응시한 지 한참, 두 눈동자가 나를 향해 어슬렁 어슬렁 걸어왔다.
나의 주인은 젊은 남자였다.
우리는 꽤나 좋은 파트너였다. 매일 아침 알람이 울리기 5분 전에 남자의 배에 꾹꾹이를 하며 깨워줬다. 그러면 남자는 나에게 "씨-발"이라고 인사했다. 나도 남자에게 "이-야앙" 이라고 화답했다. 우리는 단 둘이 작은 단칸방에 살았다. 방은 작았지만 햇빛이 잘 들어 아늑했다. 제일 마음에 드는 자리는 단연 창문 아래였다. 남자가 알바를 나가 집을 비운 오후 2시에는 어김없이 창문 아래 작은 선반에서 햇빛을 맞으며 낮잠을 잤다. 비가 올 때면 창문을 타고 내리는 물방을들의 질주를 구경했다. 때때로 험하게 생긴 고양이들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면 꼬리를 휙휙 흔들며 인사했으나 그들은 본채만채 하고 지나갔다. 나의 세계는 오로지 나와 남자 뿐이었다.
남자에게는 여러가지 이름이 있었다. 매일같이 찾아와 술판을 벌이는 친구들은 그를 '병신새끼'라고 불렀다. 일주일에 한 번쯤 찾아와 남자와 살갗을 부비대는 젊은 여자는 '준'이라고 불렀다. 아주 가끔, 잊을만할 때쯤 찾아오는 나이 든 여자는 그를 '준식아'라고 불렀고, 그녀의 남편은 '이 버러지야'라거나 '자식새끼'라고 불렀다.
나는 '준'이라는 이름을 제일 좋아했다. 물론 내가 그 이름을 발음할 수는 없었다. 애써 턱관절에 힘을 주고 시도해도 "유우웅" 이라는 요상한 울음소리가 삐져나왔다. 하지만 준은 용케 내 말을 알아듣고 사료나 간식을 갖다주었다. 그는 꽤나 잘 길들여진 인간이었다.
나는 우리의 8평짜리 원룸에서 완벽한 행복을 실현했다. 햇빛이 있었고, 창문이 있었고, (가끔 준이 까먹을 때 빼고) 정시에 밥이 제공되었다. 준은 젊은 여자만큼이나 나를 예뻐했다. 침대에 누워있을 때나 컴퓨터를 할 때나 무릎에 올려놓고 쓰다듬어 주거나 엉덩이를 토닥여주었다. 가끔 젊은 여자는 "여자친구보다 고양이가 더 좋아?"라며 불평했지만 우리는 그녀보다 끈끈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단 한 가지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현관문 밖을 나가는 것이었다. 이 집에 온지 두 달 쯤 되었을 때 준이 집 밖을 나서는 틈을 비집고 계단 아래로 내달린 적이 있다. 단순한 사춘기의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맨 아래층에 도착하자 마자 후회했다. 사방에서 들리는 굉음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다행히 준이 달려와 나를 집어들고 집 안으로 들여놓았다. 준은 너무 무서웠다는 내 칭얼거림을 뒤로 하고 손목 시계를 확인하며 급하게 뛰어 나갔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준은 나에게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줬다. 물론 나도 다시 나갈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빗속에서 3일 간 울게 된 것은 순전한 사고였을 것이다. 평소처럼 빗방울들의 레이스를 관람하며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상자에 담긴 채 벤치에 놓여있었다. 또 다시 과거의 공포가 나를 잠식했다. 등의 털이 쭈뼛서고 꼬리가 딱딱하게 굳는 공포였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준을 찾기 위해 매일 울었다. 유우웅- 유우웅 - 어떻게 외쳐도 준은 항상 나를 찾으러 왔는데.. 지금 배가 너무 고파, 준. 너무 멀어서 들리지 않나 싶어서 더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유우웅 - 유우웅 - 눈에 고인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목소리가 쉬어 나오지 않을 때쯤, 덩치 큰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리며 다가왔다.
나는 얼른 경계 태세를 갖췄다.
저렇게 덩치가 큰 고양이는 난생 처음이었다.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 마다 축 처진 뱃살이 흔들거렸다. 그 모습이 우습기는 커녕 위협스러웠다. 걸을 때마다 주황-갈색 몸체에 난 기다란 줄무늬가 춤을 추자 거대한 풍채가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 하아악
나는 그 덩치를 향해 하악질을 했다. 젖은 몸이 추워서 떨리는지 공포에 떨리는지 헷갈렸지만 녀석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엉덩이에 힘을 꽉 주었다.
-- 하아악
그 덩치는 내 하악질에 개의치 않고 바로 코 앞까지 성큼성큼 다가왔다. 덩치는 나를 한참동안 빤히 쳐다봤다.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흥미로워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덩치는 내 주위를 뱅뱅 맴돌며 구석구석을 살폈다. 적의에 찬 내 시선과는 대조되게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넌 확실히 나비는 아니구나?"
내 엉덩이에 시선이 꽂힌 그가 말했다. 이상하리 만치 흐뭇한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경악스러운 행동을 했다. 내 가랑이 사이를 앞 발로 툭툭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박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몇 개월 전 준이 나에게 '소풍'을 가자고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맛 츄르랑 애착 담요를 챙기길래 소풍이라는 곳은 좋은 곳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소풍이라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어느 순간부터 잠이 몰려왔다. 눈을 뜨니 목에 넥카라를 끼고 작은 공간에 갇혀 있었다. 불현듯 아래 배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정성스레 가꿔온 털이 사라져 있었다. 그것도 배에만! 배에 생긴 실로된 점선 아래로 무언가 허전한 느낌도 들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건 자궁이 사라진 것이었다. 아직 낳지도 않은 새끼에 대한 애착은 없었지만 막연히 언젠가 새끼를 낳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이유모를 박탈감이 느껴졌다.
그 때 이후로 내 가랑이는 준조차도 건드릴 수 없는 금기의 영역이었다. 심지어 그루밍을 할 때도 가랑이 사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핥았다. 그런데 저 처음보는 뚱냥이가 내 가랑이를 건드렸다.
억울함에 눈물이 그렁거리려고 했지만 애써 눈물을 삼켰다. 복수하리라.
복수심에 이글거리는 눈빛을 장전하고 막 박스 밖으로 점프하려고 하는 때였다. 뚱냥이가 다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까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조심스럽고 위축된 걸음이었다. 뱃살은 더 느린 템포로 춤추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의 한 마디였다.
"저...미안해"
"....?"
"그렇게 싫어할 줄 몰랐어. 그냥 반가워서 그랬던 건데."
그렇게 말하며 뚱냥이는 반대편으로 돌아 자신의 가랑이를 보여주었다. 분명 수컷이었지만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너도 소풍에 갔다왔어?"
"소풍이 어딘데?" 뚱냥이가 갸우뚱하며 물었다.
"츄르랑 담요가 있는 곳. 하지만 가랑이 사이의 무언가가 사라지는 곳"
"아아, 병원 말하는 거구나."
"하지만 준은 나한테 소풍이라고 했는 걸?"
"소풍은 놀러가는 걸 말하는 거야. 아마 네 주인, 준이 거짓말을 한 거겠지."
뚱냥이의 말은 큰 충격이었다. 준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우리의 깊은 신뢰관계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준이 있었다면 당장 따져묻고 싶었지만 준은 여기에 없었다. 뚱냥이는 위로한다는 듯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녀석은 스킨쉽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뿌리치고 싶었지만 온몸에 힘이 쭉 빠진 탓에 실랑이 하기를 포기했다.
"병원에 갔다 온 집고양이가 버려지기 쉽지 않은데." 뚱냥이가 나를 측은하게 쳐다봤다.
"버려지다니? 나는 버려진게 아니야. 준은 그저 나를 잃어버렸을 뿐이라고." 나는 그의 말을 정정했다.
뚱냥이는 잠시-5초 정도-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준이 찾으러 올 동안 갈 곳이라도 있어? 여기 왔을 때부터 지켜봤는데, 계속 비 속에서 울고만 있길래. 나랑 같이 갈래? 비에 젖지 않고 밥도 먹을 수 있는 곳이야."
나는 고개를 젓고 싶었지만 배에서 아주 크게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그래, 준을 찾는 것도 배를 채우고 건강해야지. 끼니를 때우지 못해 야위고 비에 맞아 만신창이가 된 상태면 아무리 준이라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터였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뚱냥이는 만족한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치즈야. 잘 부탁해. 네 이름은 뭐야?"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 마시고 대답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