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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뚜아니 Feb 17. 2021

#8 환승하면 기분이 조크든요.

환승은 대중교통에서만...사람은 환승하지 말구요.

삐빅, 환승되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버스에 앉는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하철을 타고 학원을 다녔다. 그때는 대중교통 카드가 따로 없고 역에 가서 줄을 서서 역무원에게 표를 샀다. 일회용권이나 정기권이 있었다. 지금이야 교통카드를 쓰거나 기계로 발권을 하는 세상이라서 상상할 수 없지만 간혹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예전 표 사는 사진을 보면 이럴 때가 있었구나 싶다.


빳빳한 노란색 티켓 뒤에는 마그네틱 부분이 있는데 이걸 넣으면 반대편에 표가 쑝 나왔다. 역무원에게 어디요라고 말하면 금액을 알려주고 지폐를 드리면 그 수납 구멍으로 잔돈 동전을 솨솨솩 날려 보낸다. 300원이면 100원 솩, 100원 솩, 100원 솩 그 대리석을 스치는 100원짜리 동전의 소리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학원이 끝나면 앞에 맥도널드에서 300원짜리 그 당시 유행했던 소프트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다시 지하철 타고 집에 오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부터 학교를 멀리 다니게 되어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그때부터 충전식 교통카드를 사용했다. 엄마가 월요일에 만원씩 주면 버스정거장 근처에서 충전을 하고 버스를 탔다. 일주일치 등하교를 위해서다. 버스 한 번만 타면 집에서 학교까지 가니 환승을 할 일이 없었다.


환승제도를 찾아보니 04년 7월부터 시행됐다고 한다. 최대 4번 총 5 수단을 걸쳐서 환승이 가능하다고 한다. 환승 유효시간은 30분 이내고 21시부터 다음날 07시까지는 60분이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인천으로 매일 등하교를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환승제도의 고마움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집에서 15분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서 내려서 다시 학교 앞까지 가는 버스를 타면서 기본요금에 환승비 200, 300원 정도 더 내고 다녔던 것 같다.


간혹 학교 가는 버스가 30분 이내에 안 오는 상황이 발생하면 환승을 못할까 봐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다. 실제로 그 버스는 학생들이나 주민들이 많이 타서 시간 잘못 걸리면 꽉 차서 다음 차를 기다려야 했다. 또 한 번은 지하철 타고 가는데 장트러블이 발생해서 화장실을 가느라고 환승을 못할뻔한 적도 있다. 배는 아프고 마음은 급하고 고작 버스비에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 당시 넉넉지 않은 생활형편에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으로서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미련하게 지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궁상은 이때부터가 아니었는가 싶다. 20대 때 열심히는 살았지만 즐기지는 못해서 아쉽다. 여하튼 환승시간을 잡기 위해 열심히 뛰었던 20대 젊은 청춘이 잠시 떠올랐다. 그래서 그런지 달리기가 그때 늘었나보다.


그때의 궁상이 지금 사회인이 되어 출퇴근하면서도 이어져오고 있다. 첫 직장도 버스를 타고 지하철 타고 버스를 타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중간에 지하철끼리 환승하니 총 4번이었다. 그 당시에는 중고차로 프라이드가 있어서 가끔씩 출퇴근 때 타고 다녔는데, 서부간선도로를 통과해야 했다. 서부간선도로는 서울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막히는 도로중 한 곳이다. 몇 번 지각을 하는 바람에 그다음부터는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다.


전날 회식을 하면 꼭 그다음 날은 지하철을 타고 갈 때쯤 배에서 신호가 온다. 일단 중간에 내리기도 뭐하고 일단 버스 타기 전까지만 가자는 마음으로 버티고 버틴다. 출구 카드 딱 찍고 시간을 체크한다. 머릿속에는 이미 시뮬레이션으로 화장실 가는데 1분, 일 보는데 5분, 손 씻고 마무리하는데 1분으로 10분 내외로 예상하고 돌진한다. 늘 사람은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 아침부터 다들 장트러블이 많은가보다. 지하철 화장실 칸은 만석이다. 빠른 판단을 해야 한다. 기다리느냐 다른 데를 가느냐. 그때만큼은 냉철한 판단으로 미련 없이 다른 화장실로 향했다. 위기의 순간에 침착해야 한다. 성공적인 볼일을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정거장으로 향했다.


이런, 버스가 방금 출발했다. 다음 버스까지 20분 내외로 걸린다고 한다. 30분에서 화장실에서 사용한 10분을 빼면 20분 안팎인데 20분 내외로 다음 버스가 오면 아슬아슬하다. 환승을 하기 위해 나의 두뇌는 풀가동을 시작한다. 일단 실시간 버스위치정보를 확인한다. 요즘은 그때보다 위치정보가 정확해서 아주 유용하다. 앞 정거장까지의 거리를 보고 제 시간 안에 갈 수 있겠군 싶으면 돌진한다. 평소에도 잘 안 하는 달리기를 이럴 때는 열심히 한다. 부랴부랴 또 뛰어서 버스를 맞이한다.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이지만 거친 숨을 바로잡고 미리 줄 선 사람들 뒤에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린다. 그래도 환승 때문에 내 양심을 팔 수는 없기 때문이다.


카드를 찍고 '삐빅, 환승입니다' 소리가 들리면 나 혼자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했다. 승리를 알리는 '환승입니다' 소리에 아침부터 시작이 좋군 속으로 말한다. 진짜 내가 봐도 궁상이다. 그래도 1~2분 차이로 환승 안돼서 아침 출근 기분을 망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가뜩이나 출근하기 싫은데 말이다.


오늘도 전쟁 같은 길을 뚫고 출퇴근하는 전국의 모든 직장인들 파이팅이다.

 왜 꼭 장트러블은 출퇴근길에 발생하는지. 

무사히 회사 가서 일을 보자. 

그래야 회사에서 용변 보는데도 돈 받고 한다는 기분이 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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