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의 옛길을 걷다 #7. June 20 (Last day)
새벽 3시 30분,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배낭을 꾸려 밖으로 내놓고 식사용 텐트에서 아침을 먹는데, 포터들이 오늘은 더 분주하게 텐트를 걷고 짐을 꾸린다. 트레킹 첫날 점심을 먹은 캠핑장에서 이들을 처음 만난 이래로 트레킹 하는 사흘 동안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다. 같이 움직였지만, 그들은 마치 그림자 같았다. 캠핑장에 가면 텐트는 쳐져 있고 식사용 텐트에 가면 요리사와 가이드가 음식을 날라줄 뿐 포터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짐을 메고 소리 없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곤 했다. 오얀땀보에서 왔는지 쿠스코에서 왔는지 모르니 어디로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안에 돌아가려고 서두르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고마웠어요!"
캠핑장에서 십 분쯤 걸어 내려오니 게이트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게이트가 열리는 시간은 6시인데 일찍부터 와서 줄을 서는 모양이다. 기다리는 사람들 뒤로 가서 줄을 섰다. 6시가 되려면 1시간 반이나 기다려야 했다. 나오미가 자리를 깔고 담요를 덮고 눕는 것을 보고, 배낭을 끌러서 깔고 앉을 것과 덮을 것을 찾았다. 침낭을 꺼내기가 번거로워서 대충 판초를 꺼내서 깔고 쟈켓을 둘러쓰고 앉아서 새벽에 못 잔 잠을 채우느라 멍을 때렸다.
시간이 다되어서 판초와 쟈켓을 집어넣고 가방을 다시 꾸렸다. 6시에 게이트가 열리고 확인증을 받고 출발했다. 해가 뜨기 전이라 캄캄했지만, 트레일은 렌턴을 이마에 끼고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게이트 앞에 도착했을 때 줄 서 있던 사람이 십여 명 되었고 우리 뒤로도 줄이 길었다. 그 사람들이 한꺼번에 트레일로 들어선 것이다. 하루 들어오는 인원 500명 중에서 집으로 돌아간 포터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시간 그 장소에 와 있는 셈이었다.
계단도 많고 트레일에 사람이 많아 걷기가 수월치 않았다. 태양의 문 Sun gate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문을 넘어 마추픽추로 내려가지 않고 다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떠오를 때, 그 문에서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태양의 문이 높은 곳에 있어서 마추픽추가 다 내려다 보이기 때문에 해 뜰 때 눈 앞에 펼쳐지는 마추픽추의 모습은 놓칠 수 없는 장관이라고 한다. 상상만 해도 멋있다. 꼭 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하지만 날씨가 멋진 장면을 보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짙은 안개가 모든 것을 덮고 있었다. 일출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밝아오는 시야로 알 수 있었지만, 마추픽추는 안갯속에 묻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포기하고 하나둘씩 내려가고 끝까지 기다리던 우리 팀도 마지막으로 태양의 문을 지나 마추픽추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동안, 와이니픽추가 안개 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졌다.
마추픽추에 도착해 보니, 그곳은 이미 버스를 타고 올라온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해 있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후줄근한 모습으로 걷고 있는 우리를 보고 저 사람들은 부러워할까 아니면 왜 저 고생하냐고 혀를 찰까? 다른 사람의 속은 모를 노릇이고 관광객 속에서 조금 튀는 행색을 하고 관광객을 헤치며 걸었다.
마추픽추가 다 나오는 포토존으로 가서 단체사진과 개인 사진을 찍었다. 입구로 내려가 배낭을 맡겨놓고 다시 들어와서 나오미를 따라 돌며 설명을 들었다. 광장에서 출발해서 제일 먼저 태양의 신전을 가보았다. 돌을 곡선으로 둥글게 쌓아 올린 탑의 창으로 들어오는 해의 그림자를 보고 농사의 시기를 정한다고 했다. 마을은 구역으로 나눠져서 의례를 담당하는 신전이 있는 곳과 귀족이 살던 주거지와 농민이 사는 주거지가 달랐고 산기슭에 계단식 밭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던 모양이다. 관광객들이 많아서 모여서 설명을 듣는 것도 힘들었다.
마을 전체로 물을 흘러가도록 설계된 수로가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언덕 위에 올라가 태양신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돌로 된 제단을 보는 것으로 가이드가 함께 하는 투어는 끝이 났다. 각자 개인 시간을 갖고 아구스 깔리엔테스의 식당에서 만나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하고 헤어졌다.
가보지 못한 곳을 마저 돌아보고 나서도 버스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마추픽추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망지기의 집 Guard's House까지 다시 올라갔다 왔다. 마추픽추 안에는 편의시설이 없어서 앉거나 햇볕을 피하면서 쉴만한 장소가 없다. 유적 보존을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햇볕은 내리쬐고 날씨는 덥고 사람은 많고 구경하는 일에도 지쳐서 내려가기로 했다.
입구로 내려가 맡겨놓은 배낭을 찾아 버스를 타고 아구스 깔리엔테스로 내려가 점심때 만나기로 한 식당을 찾아갔다. 식당이 마침 묵으려고 예약을 해놓은 숙소 건너편이라, 호스텔에 가서 체크인을 해놓고 다시 식당으로 갔다. 같이 점심을 먹고 여행사에서 주는 트레킹 증명서를 받고 팀 사람들과는 헤어졌다.
아구스 깔리엔테스는 마추픽추 관광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조그만 마을이어서 관광객을 위한 숙소와 식당이 대부분이다. 시설이 좋지는 않지만 관광객들은 어쩔 수 없이 하룻밤 정도 머물고 떠난다. 아구스 깔리엔테스 Aguas Calientes는 스페인어로 ‘뜨거운 물’이라는 뜻으로 온천동이나 네팔의 따또빠니처럼 직관적인 이름이다. 이 마을은 이름대로 온천이 있다.
오후에 트레킹의 피로도 풀 겸 수영복을 챙겨 온천을 하러 갔다.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역시 물이 뜨겁지 않았고 제일 따뜻한 물이 나오는 탕은 사람이 너무 붐볐다. 그래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까 트레킹으로 뭉친 근육들이 풀리는 것 같았다.
온천에는 샤위시설이 없어서 수영복 위로 옷을 껴입고 호스텔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좀 쉬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점심에 갔던 식당도 별로였고 갈만한 데가 보이지 않았다. 론니 플래넛에서 추천하는 식당을 찾아서 들어갔다가 별로라서 그냥 나왔다.
트레킹 마지막의 일정을 정리하자면 위나이 와이나 Winay Wayna에 마추픽추 Machu Picchu까지 6킬로미터이다. 4일 동안 트레킹으로 걸은 거리는 총 46킬로미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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