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걷다 2 19화

푼힐에서 본 일출과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둘레 길을 걷다 #19. May 21 (트레킹 17일 차)

by 메이플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 푼힐 전망대로 출발했다. 이미 날은 훤해지고 있었지만 일출까지는 시간이 좀 있었다. 입장료를 내는 게이트를 통과하고 한참을 올라갔는데 표지판에 십오 분은 더 올라가야 한다고 나왔다. 십오 분쯤 올라가자 정말 전망대가 나왔다. 올라가는데 사십오 분 정도 걸렸다.


전망대에도, 전망대 근처 일출을 보기 좋은 장소에는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북적이고 있었다. 날은 출발할 때 보다 더 환했지만, 산이 높아서 그런지 해는 그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전망대 안으로 들어가 위층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십 분쯤 후, 드디어 해가 안나푸르나 봉우리 뒤로 찬란한 햇살을 밀어 올리며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푼힐 전망대는 안나푸르나의 서쪽에 있다. 삼백육십 도로 확 트인 전망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동쪽으로 안나푸르나의 높은 봉우리들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안나푸르나의 뒤편에서 올라오는 일출을 볼 수 있다. 이곳의 백미는 동남쪽으로 보이는 희다 못해 시리게 푸른 마차푸차레 봉이다. 마차푸차레 봉은 안나푸르나 산군에서 높은 봉우리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올라보지 못했다는 마차푸차레는 베일 듯이 날렵한 산능성이를 드러내며 일출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마차푸차레는 네팔어로 '생선 꼬리 Fish's tale'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름의 뜻처럼 날렵한 생선 꼬리 모양을 하고 있고 안나푸르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는 것을 보고 내려와 사진을 찍었다. 이번 여행에는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고 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셀폰으로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진을 많이 안 찍기도 했고, 팀으로 함께 걸으면서 사진 찍은 일로 다른 사람들을 멈추게 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사진을 많이 안 찍게 되었다. 걷다가 쉴 때나, 경치가 멋있는 곳을 만날 때 가끔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못 찍는 게 여태 별로 아쉽지 않았는데 오늘은 좀 아쉬웠다. 카메라도 없어서 셀폰으로 찍는 사진도 만족스럽지 않은데, 내가 찍히는 사진은 더 별로다. 킴은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는데 구도를 잘 못 잡아서 여러 장 찍어도 건질만한 사진이 별로 없다.


사진을 찍고 초콜릿을 나눠 먹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아침을 먹고 배낭을 꾸려 여덟 시 십오 분에 출발했다. 길은 계속 내리막이었고, 길에는 올라오는 사람도 많았다. 두 시간쯤 걷고 차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킴이 올라오던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쓰리 시스터즈의 가이드와 포터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트레킹을 하는 트레커들도 있었다. 푼힐로 가는 중이었다. 인사를 하고 차를 같이 마셨다. 그들은 올라가고, 다시 내려오다가 쓰리 시스터즈의 다른 팀을 또 마주쳤다. 일하는 사람이 이백오십 명이 넘는다고 하니 큰 여행사인 모양이다. 네팔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이 여행사가 잘되면 좋겠다.


아침에는 선선했는데 날이 점점 더워졌다. 마을에 들러 점심을 주문했다. 음식은 주문하고 한 시간 넘게 기다려서야 음식이 나왔다. 캐나다도 한국에 비하면 느린 속도로 사는 곳이라 어디서나 기다리는 일이 많은데, 네팔은 더 느리게 사는 것 같다. 시간에 맞춰 살아야 할 것도 아닌 여행자가 괜히 마음이 조급 해지는 것은 기다림이 익숙해지지 않아서이다. 여행하면서 배워야 할 것은 그곳의 삶의 속도에 맞춰서 살아가는 법이다.


볶음국수를 기대하고 프라이 누들을 시켰는데 나온 음식은 면을 바삭하게 튀겨서 그 위에 야채를 소스에 볶아서 얹고 마지막으로 달걀프라이와 치즈를 얹은 진짜 프라이 누들이었다. 중국집에서 차오면이 이런 식으로 나온 걸 본 적이 있으면서 프라이 누들이 볶음국수라고 생각한 내 잘못이었다. 점심을 먹는 자리를 잘못 앉아 햇살이 그대로 얼굴로 쏟아져서 덥고 눈도 부시고, 튀긴 면도 너무 딱딱해서 다 먹지도 못하고 햇볕을 피해 집 그늘로 옮겼다. 너무 더웠다.


다시 출발해서 계속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디와랑 애니타와 잠시 쉬는데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오늘 묵어갈 Hille마을까지는 멀지 않다고 해서 서둘러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판초를 꺼내 입고 이십 분쯤 더 걸은 후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샤워를 하는데 비가 폭우로 변해서 쏟아붓는 소리가 들렸다. 샤워룸의 전등이 나갔다. 전력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씻고 나오니 밖에는 장대비가 퍼붓고 있었다. 일찍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방에 벌레가 너무 많다. 이 방에서 과연 잘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이층에 방이 있고 방 앞에 테라스가 있어서 테라스에 나와 앉아 비 오는 풍경을 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피로에 푹 잠기는 느낌이다. 내일 트레킹을 마치고 카트만두로 가서 밴쿠버로 돌아간다.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해야 하는데, 모든 것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꿈처럼 멀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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