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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Nov 23. 2021

영화관에 관객이 나 밖에 없다! 디어 에반 핸슨

시골살이  문화생활

남편이 등산을 갔다.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평지에서 걷거나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나면 숨도 차고 발목이 아파서 힘들다.


결국 나는 등산 대신 시내에 가기로 했다.

마침 안경다리가 찌그러져 있었다.

누가 밟았을까.

안경점에 가는 길에 오늘이 장날이라는 걸 알았다.

모처럼에 시내 나들인데 바람도 세차게 불고 너무나 추웠다. 한파..!

여러모로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시내라고 해봐야 조그만 동네에 모든 것이 모여 있는 풍경이지만

시골서 살다 보니 이쯤만 나와도 마음엔 바람이 잔뜩 들어간다.

우리 집이 공기가 더 좋지만 나에겐 시내 나들이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오늘 하루는 나도 문화인이 되어 볼 요량으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얼마 전 생겼다는 롯데시네마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과 아이들은 이미 다녀왔지만, 코로나 시대에 답답한 공간에서 머물러야 하는 게

탐탁지 않아 가지 않았던 곳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왠지 들어가 보고 싶었다.

아직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곳에 우뚝 세워진 상가 건물이었다.

1층은 입주가 덜 돼서 어수선한 공사장 같이 보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 도착하니 컴컴한 조명 아래 매표소가 보였다.

전광판에 영화 시간과 제목이 안내되고 있었다.

그 넓은 홀에 한 사람의 손님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표를 끊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위드 코로나의 일환으로 영화료를 6천원 할인해 준다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그래서 '9천원'.

횡재한 기분으로 매표소에 섰다.

'장르만 로맨스?' 시간이 오전 10시도 안 됐는데 혼자서 보기엔 너무 싱겁다.

액션 영화도 취향이 아니고, 아이들도 없는 데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뭔가 진지한 걸 봐야 할 느낌이었다.


'디어 에반 핸슨' 9:55분 상영, 자막이 흘러갔다.

어? 뭐지. 핸드폰을 검색해보니 뮤지컬 영화라고 한다. 평점도 8.6 꽤 높았다.

왠지 내 취향일 것만 같았다.

그래, 저걸 보자.  


직원이 한 명 밖에 없는데 매표소와 매점과 극장 출입문까지 혼자서 뛰어다니고 계셨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되고 손님이 많지 않은 가 보다 생각했다.

저기요~  '디어 에반 핸슨' 표 한 장 주세요.

"지금 상영 시작했는데 시작 후엔 취소, 환불 어렵습니다." 직원이 말했다.

입장했다 취소하는 사람도 있나 의아했다. 


"예~ 당연하지요."

"자리 선택하세요."

"네, 뒤에서 가까운 자리 해주세요"

밤눈이 어두운 나는 캄캄한 곳에 가면 더듬거리기 일쑤였다.


상영관 안은 생각보다 작았다.

가죽재질의 의자는 크고 아늑했다.

화면이 켜지자 극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왜 나밖에 없지? 평일이라서 그런가?

에이, 한 두 명은 오겠지...

순간 적막감이 흐르고 아까 환불 안된다던 직원의 말이 스쳐갔다.

아하, 이래서 그 말을 했구나.

관객이 한명이라도 상영이 되는 게 놀라웠다.

불이 꺼지니 뭔가 으슥한 기분도 들었다.

나 혼자라니, 그렇다고 나갈 순 없었다.

어렵게 영화 보러 온 것인데 그냥 특별한  경험이라고 자신을 설득했다.


영화는 잔잔하고 감동도 있었다. 특히 주인공의 노래 소리가 너무 좋았다.

역시 뮤지컬 영화는 매력이 있구나. 혼자이지만 눈물도 훔치며 보았다.

옆에 누가 없으니 신경쓰지 않아 편하긴 했다.


그런데 영화 내용도 왠지 나를 투영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넌 혼자가 아니야, 손을 내밀어 봐. 빛을 두려워하지 마'

아, 그런데 난 왜 혼자 영화를 보고 있는가.

동질감이 느껴지고 지난 10년간 늦깎이 육아하며 느꼈던 응어리 같은 게

우러나왔다. 도망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계속 걸어가라...

알겠어, 알겠다고.


주인공이 노래한 건 줄 알았는데, 쌤 스미스가 불렀다고 한다.

You will be found.


어둠이 쏟아져 밀려올 때, 의지할 친구가 필요할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우리가 당신을 찾을 게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가 찾을 게요.


좋은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도 충전하고 힘이 났다.

그런데 한 가지, 영화관에서 혼자 보는 건 좋은 느낌이 아니란 걸 알았다.

집에서 혼자 보는 건 좋지만...

다음엔 누구든 같이 와야겠다.


무엇을 보느냐 보단 누구와 보느냐가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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