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웹소설
오전 9시 잠실지점의 전광판이 화려한 숫자들의 향연으로 도배되며 전화벨이 울려댄다
시초가가 나오자 이를 보고 각 종목을 갖고 있는 투자자들이 종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상담을 하거나 주문을 내기 위해 전화가 오는 것이다
고참들인 과장급 이상은 오는 전화보다 거는 전화가 많은데 모찌계좌만 갖고도 그 달의 약정을 채울수 있기 때문에 뜨내기 고객의 전화는 전부 대리급 이하 직원들의 몫이 된다
그나마 모찌계좌가 약한 직원들에게는 약정을 채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는 하지만 일반 전화로 걸려오는 상담전화는 그냥 상담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영양가는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개장초 "중화태양광"의 주가는 5000원대 후반까지 떨어져 있는데 6천원 공모가 대비해서 16%가 급락한 상황이라 꼼짝없이 시장조성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시장조성은 상장주간증권사가 공모한 주식에 대해 상장 한달간 공모가 대비 10% 이하로 하락할 경우 그날부터 한달이 되는 기간 동안 무제한 주식을 매수하도록한 제도로 투자자보호를 위한 안전판이지만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큰 손해를 볼 수 있어 일년 장사를 IPO 실패 한건으로 다 날려 버릴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조용한 지점장실 전화기가 울리고 조용한 지점장이 컴퓨터모니터를 뚜러지게 쳐다보며 전화를 받는다
투명 유리 건너편으로 지점장실이 보이는데 전화를 받는 조 지점장의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내 직원들 모니터에 메시지가 뜨는데 "중화태양광" 주가를 매수해 공모가 이상으로 만들라는 지시였다
종가 기준으로 시장조성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장중 주가를 끌어올려 공모가 대비 10% 이내가 되도록 맞추면 시장 조성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일제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중화태양광" 주식의 현재가 화면을 띄우고 분석하고 있는데 매수 1위에 대한증권이 올라 있는 걸 봐서는 다른 지점에서 이미 매수에 가담한 모습이다
매도쪽에 이번 IPO에 공모단으로 참여한 우리투자증권과 한성증권이 올라 있어 공모주 아주머니들이 공모가가 무너지자 공포에 휩싸여 팔자에 나서는 것 같았다
공포에 휩싸여 비이성적 매도를 할 경우 순시간에 주가가 무너지기도 하지만 이성을 차린 이후에는 저가매수세로 단기급등이 나타나곤 한다
대한증권 잠실지점 직원들도 "중화태양광" 주식의 매수를 고객들에게 권하는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조용한 지점장은 지점장실에서 영업사원 사번이 들어 있는 관리고객계좌로 "중화태양광" 주식 매수현황을 체크하고 있다
불법이지만 아예 고객계좌를 넘겨 받아 일임매매를 하는 정현수 차장이 "중화태양광" 주식을 가장 많이 사들였는데 고객에게 일일이 허락받을 필요없이 계좌를 넘겨받아 운영하고 있어 곧바로 주문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잘 보이고 실적도 쌓아야 부장승진도 하고 지점장도 될 수 있기 때문에 불법인 줄 알면서 공격적인 영업을 하고 있는 거다
정신없이 주문을 내고 상담을 하는 오전 시간이 순시간에 지나가고 점심시간이 되어 영업사원들은 2교대로 식사를 가는데 증시가 계속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모두 한꺼번에 자리를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지점 근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는데 점심시간이 한시간 주어졌어도 돌아가는 시장에 30분 안에 후딱 먹고 들어가야 했다
그러다보니 만성 소화불량에 걸린 간부 사원들이 많기도 하고 오전장 상황에 따라서 점심식사 분위기도 많이 달라지게 된다
오전장에 수익이 난 계좌들이 많으면 기분도 좋고 식사 분위기도 좋아지고 가끔 함께 간 간부들이 점심값을 다 내기도 한다
그렇게 짧은 휴식시간을 갖고 교대를 위해 일찍 지점으로 복귀하는데 점심시간 대 작전주들의 매매가 많기 때문에 시세가 급변하는 종목들도 많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점심식사를 다녀와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전광판 옆에 켜 놓은 TV속에 대한증권이 시장조성을 막기 위해 고객돈으로 "중화태양광"주식을 사고 있다는 뉴스가 증권방송을 통해 보도되었다
객장에 앉아 있는 고객 중에 "중화태양광"을 산 고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매수를 권한 직원 방으로 가 욕을 하기 시작한다
"니들 손해 안 보려고 내 돈으로 중국주식을 산겨? 그런겨? 에이 XXX야"라는 욕설이 직원 방 밖으로 퍼지고 사람들은 싸움 구경이 났다고 그 방 앞으로 몰려들고 있다
증권시장도 시장인지라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극단적인 말들이 나오면 군중심리라는 것이 작동해 분위기가 험악해 지는데 이를 막는 방법은 조기에 차단하는 것으로 김태산 대리가 친구 방에 뛰어들어 욕설을 하는 고객을 끌어내 지점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지점 밖에 흡연장소에서 담배 한대 권하며 화를 푸시라고 고객을 달래는데 성이 안 차는지 여전히 욕설을 해 대면 씩씩거리고 있다
아무래도 오전에 주식을 사서 손해를 본 것 같다. 김대리는 고객을 달래주며 "중하태양광"이 중국 고비사막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짓는데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공모해 간 3000억원의 공모자금이 사용될 것이라는 정보를 다시금 전달해 주고 본사 IPO팀에서 나온 정보라는 귀뜸도 해 주었다
이에 고객은 화를 가라앉히며 다시 순한 양이 되어 뉴스가 사람을 갖고 논다는 말을 하며 다시 지점으로 들어갔다
그 10여분의 시간 동안 "중화태양광"주가는 다시 반등해 공모가 6000원을 회복하고 있는데 아마도 대한증권 전 지점에서 나서서 주식을 사들인 결과 같았다
조금전까지 친구 방에서 욕을 하던 고객도 수익이 났는지 연신 싱글벙글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직원의 추천에 "중화태양광"을 사서 상한가를 먹었다고 연신 자랑질을 하고 있다
하루 주가변동폭이 15%이던 시기라 10% 이상 움직이면 고객들은 상한가 먹었다고 뻥을 치곤한다
아까 욕을 먹은 한용수 대리가 자신의 방 문에 기대어 객장에서 자랑질 하는 고객을 쳐다보다 이내 자리에 돌아가 앉는다
그렇게 긴 하루가 끝나고 장종료 마감 동시호가가 시작되는데 "중화태양광"의 종가가 공모가 대비 10% 내에만 끝나면 대한증권은 시장조성 의무에서 벗어나게 된다
손떨리는 10분의 동시호가가 끝나고 중화태양광의 종가가 5,410원으로 끝나면서 대한증권은 시장조성 의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영업사원들은 의자에 축 늘어져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지점장이 방을 나서며 어디론가 서류봉투를 들고 나간다
이후 부지점장만 남고 차장과 과장 모두 고객을 만난다는 핑계로 먼저 지점을 나서고 대리들과 여직원들만 남아서 마감업무를 보고 있다
김태산 대리는 방에서 그날의 거래 종목을 정리하며 고객에게 거래 결과를 전화하며 하루의 영업 결과를 마감하고 외부 기업 탐방을 위해 낮에 봐두었던 상장사 IR팀장과 통화를 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대한증권 잠실지점에 김태산 대리라고 합니다. 이번에 좋은 투자종목으로 생각되어 IR을 받고 싶어 전화드렸습니다. 가능하면 오늘 방문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되실까요?"
이번에 상장한 "한국태양광"이라는 업체인데 태양광발전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고 한국증권에서 주간증권사가 되어 IPO를 했는데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는 회사였다
대한증권이 상장시킨 "중화태양광"과 같은 태양광사업을 하고 있어 "중화태양광"에 대한 업계 정보도 얻고 "한국태양광"에 대한 정보와 인맥도 만들기 위해 방문IR을 요청한 것이다
전화기 넘어로 "한국태양광" 김요한 IR팀장이 "예 오세요. 몇시까지 오실 수 있나요?"
김태산 대리가 오후 4시 30분까지 가겠다고 했다
송파에 "한국태양광" 본사가 있어 잠실지점에서 가깝기 때문에 장 끝나고 금새 갈 수 있는데 코스닥 벤처기업들이 테헤란로와 구로디지탈밸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임대료가 싸고 구인이 쉬운 송파지역에도 꽤 입주해 있었다
김태산 대리는 부지점장님께 기업IR 방문을 간다고 말하고 지점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