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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 moon Sep 12. 2022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단상


나의 10대를 함께 보내며 소위 말하는 '단짝'이었던 친구가 어느 날 꿈에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용이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꿈의 파편 중 하나였지만, 문득 그 친구를 꼭 다시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스쳤다. 이미 연락처도, SNS 연결도 끊긴 상태라 이전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그리고 다른 친구에게 물어가며 행적을 찾아보았지만 연락이 결국 닿질 않았다.


쉽게 상처를 받는 나는 내 마음의 벽이 항상 높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좁은 나의 인간관계에 대해 걱정이 없었다. 오히려 좁디 좁은 인간관계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이렇게나 좁고 깊은 인간관계로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 몇 명으로도 나는 이만큼이나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 누구보다 마음의 벽이 높아 아무나 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 괜히 나를 으쓱하게 만들기도 했다. 너무 우습지만 솔직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겐 항상 처음과 같기를 바랐다.


결국 단짝 친구였던 이와의 연락이 닿지 않았던 것을 기점으로 그 이후의 크고 작은 인간관계에 대한 일들이 쌓이게 되며,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지난 날의 나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참 어리석고 미숙했구나 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람이 항상 한결 같을 순 없는 건데, 그리고 사실 나조차도 한결 같지 않은데, 나는 항상 타인에게는 높은 잣대를 들이밀며 그들에 내게 항상 처음과 같기를 바랐다. 누가 봐도 서로가 베스트 프렌드였던 그 때처럼, 같이 수업을 듣고 매일 연락을 줄기차게 나누며 비밀이 없던 그 때처럼. 그 당시와 지금은 상황과 환경이 완전히 다름에도 말이다. 쉽게 SNS 친구를 끊고, 차단을 하고, 연락처를 지워가며 결국 내게 남는 한줌도 되지 않는 수의 인연들만을 붙잡으며 남아 있는 그들에겐 오히려 더 높은 잣대를 들이 밀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내가 뭐라고, 대체 내가 뭔데 그런 행동들을..


그리고 나는 내가 내 마음의 벽을 너무 높게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난 누구보다 더 낮은 담장으로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내 마음 속 울타리 안으로 들였던 것 같다. 그래서 상처를 더 쉽게 받고, 타인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이 분해서 '난 널 내 마음 안에 들인 적이 없는데?' 하며 혼자 정신 승리를 해버린 건 아닌지. 돌이켜보면 난 마음을 너무 너무 쉽게 열었고, 쉽게 열고 있고, 앞으로도 쉽게 열 것만 같다.


이런 저런 모순된 나의 인간관계에서의 모습이 떠오르며 현재 내 옆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졌다. 내가 뭐라고, 대체 내가 뭔데 그런 행동들을 보고 옆에 남아 있는 걸까 싶어서. 그리고 내가 더 잘해야겠다, 마음을 고쳐먹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아 있는 인연 그리고 다가올 인연에게 너무 과한 희망과 기대를 가지기 보단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줄 것. 많은 수의 친구를 사귀는 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깊은 관계의 친구만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걸 스스로 명심해야겠다. 무조건 모든 인연과 진지한 속 이야기를 하며 비밀 없는 사이가 되고, 위로와 공감을 나누며 깊어질 필요는 없는 거니까. 이런 관계도 저런 관계도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겠다.


스쳐지나간 인연들에 대해 미련이 많이 남는 요즘이다. 과거에 이런 저런 이유들로 쉽게 밀쳐냈던 인연들이 후회가 된다. 쉬웠던 관계와 어려웠던 관계들 모두 생각이 난다. 내가 거기서 조금만 더 참고 자존심을 굽혔더라면, 조금만 더 의지를 보였더라면 어땠을까. 요즘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무조건 남 탓만 했었는데 이젠 다 내 탓인 것만 같다. 껴안으면 안을수록 큰 상처가 되는 관계가 아닌 이상 이제 각자의 거리에서 모두 안고 가려고 한다. 너무 날이 서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내 감정만 생각하며 사람을 가렸던 지난 날의 나를 반성한다. 이렇게 점점 어른이 되어 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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