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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 moon Sep 13. 2022

엄마가 좋아


추석 연휴 셋째날, 엄마와 단 둘이 아웃백에 다녀왔다. 양식을 좋아하지 않는 아빠가 친가 가족모임에 혼자 간 덕분에 오붓하게 엄마와 양식을 즐길 수 있었다. 추석에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들어갔을 것 같아 내 카드로 야무지게 긁고 나왔다. 1시간 가까이 웨이팅을 하고서야 겨우 매장에 들어가 주문을 할 수 있었지만 엄마랑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어서 마냥 좋았다.


엄마가 너무 좋다. 엄마가 너무 너무 좋아서 가끔은 막 울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슬퍼질 때도 있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 일을 두개나 했다. 늦은 오후부터 밤까지는 마트 캐셔로, 새벽엔 우유 배달원으로. 지금은 N잡시대로 누구나 맘 먹고 퇴근 후 시간을 투자해 부업을 하는 시대지만, 그 땐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도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고 자식은 나 하나인데 엄마가 왜 그렇게까지 일을 했을까 싶다. 지금껏 살면서 우리집 형편이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내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건 항상 발에 땀나도록 일했던 엄마 덕분이었을까?


달에 한 번 엄마 뒤를 쫄래쫄래 쫓아가 우유값을 내지 않은 집에 수금을 하는 엄마 뒤에 서서 빼꼼 남의 집을 보던 나. 새벽에 우유 돌리는 엄마를 돕겠다며 단지 내를 굳이 차 타고 빙빙 돌던 아빠와 나. 이젠 흐릿해졌지만 이따금씩 생각나는 그 때의 새벽 공기. 엄마도 나처럼 기억할까? 학원 가던 길에 동네 중학생 언니들에게 2,000원 삥을 뜯겨 엉엉 울며 엄마가 일하던 마트로 달려갔던 나. 아빠가 퇴근한 뒤 저녁을 먹고 같이 엄마 보러 마트로 갔던 나. 밤은 위험하다며 엄마를 데리러 가서 엄마 손을 꼭 잡고 집에 돌아왔던 나. 엄마도 나처럼 기억할까?


엄마는 이제 새벽에 우유 배달을 하진 않지만 여전히 마트 캐셔로 일한다. 진상 손님을 만난 날엔 집에 와서 빽 화를 내는 엄마. 행사 상품이 있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구해다주는 엄마. 요즘도 종종 엄마가 일하는 마트에 들러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본다. 엄마가 좋아서. 엄마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어서.


출근 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엄마를 보면 엄마가 새벽에도 일했던 그 때가 종종 떠오른다. 그 때 못잤던 잠을 지금 몰아서 자는 것 같아서. 하염 없이 졸다 출근 시간에 맞춰 귀신 같이 일어나는 엄마.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엄마. 엄마가 좋아.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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