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껍데기
내 방의 불은 자정이 넘어서야 꺼졌다. 매일 밤 내 방문은 한 뼘의 여분을 두고 열려 있었다. 문고리 위에는 낮에 빨아 아직은 다 마르지 않은 교복 와이셔츠가 옷걸이 위에 걸려 있고는 했다. 엄마는 부엌 불을 끄기 전에 한 번 더 내 방 문틈 사이로 시선을 던지고 내가 이불을 제대로 덮었는지 희미하게 비치는 모습을 확인하고선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적막한 공간에서 눈물이 떨어질 때는 투둑, 낡은 남방에서 단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좁은 침대에 모로 누워 잠이 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콧등을 타고 반대편으로 추락하는 눈물방울은 중력의 힘을 더 무겁게 받는 듯하다. 눈물은 그렇게도 시끄럽고 무겁게 흐르는데 왜 아무도 듣지 못하는 걸까.
나는 슬픔을 뱃속에 감추고 산다. 떨어트려 날카롭게 조각난 슬픔들이나 먼지가 되어 떼걱거리며 바닥을 굴러다니는 슬픔들은 한눈에 봐도 티가 많이 난다. 어딘지 핼쑥해 보이는 얼굴이나 어두운 낯빛처럼 누군가에게 들키기 마련이다. 나는 그 슬픔들의 잔해를 주워 한 입에 넣는다.
오물오물 씹어 삼키다 보면 슬픔은 모양을 감추고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모양새도 어정쩡하고 맛도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 나는 몇 날 며칠을 슬픔으로 포식한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슬픔이 들이닥치면 너에게 털어놓으라고 당부했다. 그런 날이 오자 드디어 때가 왔다,라고 생각하며 네 번호를 눌렀다. 울음이 멈추지 않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 너무 괴로워, 이제는 정말 지쳐. 앞뒤분간 없이 던질 수 있는 말 이라고는 그뿐이고, 그보다 더 나아가거나 이전의 상황을 한데 모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남김없이 털어 내기에는 내가 아는 단어의 수가 부족했다.
몰아치는 모든 감정들은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다시 올라올 때 전에는 보지도 못한 찌꺼기들을 끌고 와버렸다. 가시 돋친 말들이 입 안을 내내 맴도느라 입술이 터져버리고 속이 말도 못 하게 헐어 버렸다. 참다못해 토해내면 너는 손을 내밀어 받아준다. 더럽혀지는 손에는 띄엄띄엄 굳은살이 고목처럼 배겨 있다. 상처가 있으면 그 위에 막처럼 씌워진다는데 넌 어떤 길을 헤집고 왔길래 그렇게 손이 못났을까.
날 무척이나 아껴서 내 행복을 바란다고 너는 말했다. 파란 말풍선 안에 단정하게 가로와 세로줄을 맞추어 들어간 글자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행복해질 수가 없는 사람이야. 심술이 나서 네가 하는 모든 말의 정확히 반대로만 쏘아버리고 싶고 너의 마음의 바닥까지 긁어대고 싶다. 도움의 손길을 뻗는 너의 하얀 팔에 생채기를 낼 거고 다시는 내밀지도 못하게 손톱을 박아 버릴 거다.
그러다 가도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하면 너는 나를 봐줄 거지? 애썼다며 내 등을 토닥여 줄 거지? 네가 힘들 때 내가 똑같이 있어줄 거라고, 너는 날 아끼고 나도 널 좋아하니까, 우린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어줘야 한다고, 너는 계속 말했잖아.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너는 계속 거기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 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