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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비 Aug 07. 2022

# 5. 스벅에서 만난 빌런

뜨거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토요일 오후.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하나 하나의 얼굴에 더위를 피해 달아나고 싶은 감정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도서관 앞에 생긴 스타벅스,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날씨 탓인지  스타벅스엔 사람들이 북적였다. 다른 개인커피숍보다 유난히 사람들이 더 많았다. 트랜드인지 브랜드의 힘인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지인에게 받은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사용하기 위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아, 씨발! 안들려. 하나도 안들린다고!"

주문을 하려고 대기하는 순간, 바로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남자는 주문 받는 직원에게 버럭 화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까페라떼 1잔, 아메리카노 2잔 모두 벤티 사이즈 맞으신가요?"

직원은 침착하게 재차 큰소리로 말했다.

"아, 씨발! 크게 말하라고! 안들린다고!"

남자는 더 크게 흥분하며 얼굴을 직원에게 들이밀었다. 

그 직원 옆에 있던 다른 세 명의 직원들이 놀란 눈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큰소리로 말했는데?"

나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남자는 직원에게 과몰입하느라 다른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남자의 시선은 오로지 그 직원에게 향해 있었다. 직원의 눈빛이 점점 흔들렸지만, 애써 웃으며 친절하게 응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긴 있구나.'

말로만 듣던 빌런을 목격하면서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주변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그 광경을 불구경하듯 바라보며 수근거렸다. 

"2층에 가도 되지?"

남자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주문하신 음료 받으신 후에 올라기시면 됩니다."

직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씨발!"

남자는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다시 한번 욕을 했다. 정말 최악이었다.

"술 마셨나?"

"아무리 술 마셨어도 그렇지."

여기저기서 온갖 말들이 쏟아졌다. 


우리 가족은 이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 남자가 일행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엔 나도 술 취한 사람인가 했는데, 일행들과의 대화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일행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평온한 어투로 말했다. 아까 내가 본 그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 남자가 직원에게 쌍욕이 섞인 막말을 하던 순간, 일행들은 2층에 있었다.

그렇다면 남자는 이중인격자인가? 성격에 장애가 있나?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속을 어지럽혔다.

빠짝 마른 몸에 청바지를 입고 노란색 두건을 목에 걸치고 있던 남자의 행색이 잊혀지질 않는다. 

그 남자의 행위가 평범했다면 그 행색이 이렇게 각인될 리가 없었다.


나는 꼭 쓸 소재가 있으면 메모를 한다.

하지만, 그 남자의 이야기는 메모를 하지 않아도 각인이 되었다.

한번씩 툭 튀어나와 자꾸 쓰라고 말한다. 

그 남자의 그런 몰상식한 행동, 명백한 잘못이다. 

아무리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이라고 해도 그런 식의 행동은 큰 실례다.

그 남자의 행동을 눈 씻고 잘 찾아봤다. 

그 광경을 목격하던 많은 사람들과 직원에게 그 남자는 스승이다. 

'반면교사' 

'저런 모습으로 살지 말아야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책이나 영상으로 보고 배우는 것보다 한번의 경험은 더 또렷하게 남는다. 그게 바로 산교육이다. 


그리고 남자는 나에게 쓸 거리를 제공했다. 

모든 드라마에는 빌런이 존재한다. 그날의 이야기에서 남자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연 빌런이다.

정말 드라마 같은 날이었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빌런들이 가까이에 존재한다.

누군가의 가까이에 우리는 빌런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다시 한번 나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만냥 빚을 질 수도 있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언행은 상대방에게 빚을 지는 것이다.

만냥의 빚보다 더 큰 빚이다. 

빚을 갚는 일은 참 고달프고 어려운 일이다. 매달 원금과 이자를 꼬박꼬박 낸다고 해서 내가 빚을 졌던 행위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은행 전산에 그 모든 행위가 명백하게 기록되고, 저장된다.

하물며 감정과 이성이 있는 인간의 '뇌' 속에 저장되는 빚은 더 갚기 힘든 것이다.

은행에 빚을 지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빚을 지는 일은 누구도 해서는 안될 일이다.

사람의 마음에 빚을 지는 자는 진짜 가난한 사람이다.

나는 누군가의 기억에 각인되는 빌런인 적이 없었는가?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빚을 진 적이 없었는가?

천천히 나의 과거를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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