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나 담이 없는 마을이라 서로의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다. 가령 어디 외출을 나간다던지 손님이 왔다던지 등의 소소한 일들조차 자연스럽게 공개된다.
"손님 오셨나 봐요?"
"어디 나갔다 오세요?"
이런 대화들은 일상이 되었다.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거나 술 한잔 할 때 서로 초대를 한다. 예로부터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했다. 조촐하게 차린 상차림이라도 이웃들의 얼굴을 보고 지나치는 법이 없다.
"술 한잔 하러 오세요."
"삼겹살 드시러 오세요."
얼마 전 새로 이사 온 이웃이 자주 하는 말이다.
회사 동료들과 친인척들의 왕래가 잦은 이웃은 주말마다 대량의 술과 고기를 준비한다.
6가구들은 서로 초대하고 초대에 응한다.
어느 땐 마치 품앗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끼리 왕래하면서 돈독하게 정도 쌓아가는 모습은 이상적이다. 하지만, 때로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뒷집에 혼자 사시다가 이사 간 이웃이 있었다.
음식 솜씨도 좋고, 유독 나에게 잘해주시던 고마운 분이셨다. 친정엄마와 연세가 비슷하기도 해서 심적으로 의지가 되었다. 그분의 동선은 집과 일터로 단조로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저녁때 집안에 불도 켜지지 않고, 인기척이 없었다. 주차장에 차는 주차되어 있는 상태였다.
"혹시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겠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남편에게 말했다.
그때였다. TV에서 고독사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헐레벌떡 뒷집으로 달려가 초인종을 눌러댔다.
"계세요?"
"계세요?"
인기척이 없다가 한참 뒤에 문이 열렸다. 여사님의 얼굴이 초췌해 보였다.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시죠?"
급한 마음에 다짜고짜 물었다.
"며칠 몸살을 앓았는데, 지금은 괜찮아. 내 걱정돼서 온 거야?"
여사님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안심이 됐다.
"며칠째 집에 불도 안 켜지고, 인기척이 없어서요."
"내가 암막커튼을 쳐놓고, 걷지 않아서 그랬나 보네."
"아이고, 그래도 혼자 있다가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무슨 일 있으시면 전화하세요. 꼭!"
여사님의 말이 웃프게 들렸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몸이 아플 때 간호해 줄 사람이 없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우리 마을의 구조상 사생활 보호가 안된다는 건 분명 단점이다. 하지만, 서로 왕래가 잦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그리고 가족처럼 제일 먼저 찾아와 줄 이웃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약간의 불편함도 있지만, 눈 씻고 찾아보면 좋은 점이 가득하다. 울타리 없는 마을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