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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타임 Aug 06. 2021

불알친구

그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매달 2만원."


 불알친구들과 모으는 회비다. 어릴 땐 매일같이 야구하고 게임하고 뛰어놀 수 있었는데 각자 다른 지역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군대를 가고 직장을 다니다 보니 5명 모두가 모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일정이 맞아 1박 2일로 여행을 가게 된 오늘. 풍족한 여행보다 조금 빈곤할 지라도 함께 자주 웃고 떠드는 일상을 기대하며 녀석들을 적어봤다.


불알 1. 모구


 성이 모씨다. 모기의 전라도 방언을 써서 모구. 내 인생에 알고 있는 모씨는 모구와 모구의 아빠, 그리고 맨날 모구에게 두들겨 맞곤 했던 모구의 남동생 정도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주먹을 휘두를 일이 없었다. 누구랑 싸움이라도 일어나려고 치면 바람보다 빠른 녀석의 주먹과 영화에서만 보던 돌려차기가 등장해서 어느새 상대방이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농담 아니고 모구는 리얼 파이터다.


 덕분에 항상 학교에 찾아오는 건 우리 부모님이 아닌 모구의 부모님이었다.(이모 죄송.. 감사합니다.) 나는 모구의 부모님께도 잘해야 한다.


 녀석이 얼마 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다며 그만뒀다. 머리채 잡고 뜯어말렸어야 했나 싶었지만 엊그제 공무원 시험을 다시 봤고 또 합격했다. 남들은 한 번 되기도 힘든데 녀석은 두 번이나 해냈다. 이것도 참 재주인 것 같다. 비꼬는 듯 말하지만 알고 있다. 얼마나 고민하고 열심히 노력했을지. 아무튼 녀석을 열심히 응원해줘야 한다. 어린 시절 나의 보디가드였으니까.


 불알 2. 갈롱이


 왜 '갈롱이'인지 기억 안 난다. 옛날부터 휴대폰에 저장해놓은 이름이 갈롱이라서 갈롱이다. 나는 녀석이 초등학교 전교회장에 뽑히고 사줬던 떡볶이 맛을 잊지 못한다. 마치 지지하는 당의 의원이 당선돼서 아껴둔 비자금으로 회식하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갈롱이와 나는 고등학생이 되고 노래방과 당구에 빠졌다. 한 주도 빼먹지 않고 풀코스로 즐겼다. 늘 내기 당구를 했는데 3주 연속 패배하며 분노를 참지 못한 녀석은 씩씩대며 집으로 가버렸다. 아직까지 녀석을 놀릴 때 꺼내곤 하는 이야기다.


 갈롱이는 절대 공부만큼은 안 할 줄 알았는데 지금 이 시각에도 자신의 머리카락 한 가닥을 흰머리로 변화시키며 대학에서 열심히 연구에 임하고 있다. 세상모를 일이다. 한때, 빅뱅의 승리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많이 늙.. 세상 정말 모를 일이다. 사랑해.


불알 3. 부라령


 이 녀석의 이름은 문한영. 이름 앞에 불알을 붙이니 불알영. 부라령이되었다. 불알을 붙인 이유는 딱히 없다. 부라령은 초등학교 시절 꽃미남 3인방 중 1명이었다. 녀석이 잘 생겨서 부러웠던 건 아니다.(절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이 녀석의 옆집에 살았을 뿐... 옆 집 여자애 대신 애꿎은 앞집 누리라는 여자애랑 뭐 있는 거 아니냐며 놀리곤 했다.


 녀석의 유일한 단점은 모태솔로라는 것이었다. 이제 불꽃 마법 쓸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정 만날 사람이 없으면 옛날 앞집 살던 누리라도 연락해보라고 놀리는 게 꿀잼이었다. 기쁨도 잠시, 녀석이 모솔 탈출에 성공했다. 나 이제 무엇으로 널 놀릴 수 있을까? 


"너무 슬퍼하지 마 누리야."


불알 4. 드래곤


 설마 해서 말해두지만 지드래곤이랑 하나도 안 닮았다. 배우 고창석 아저씨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이름이 대곤이라 드래곤이 되었다. 녀석은 우리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왔다. 동네를 독차지하던 'ㅍㄹ마트'를 밀어내고 'ㅋㅅ마트'가 등장했는데 녀석의 집에서 운영하는 가게였다.


 친구가 슈퍼마켓 아들이면 좋은 이유. 더운 여름날 가게 앞을 지나가면 이모(드래곤의 엄마) 아이스크림 하나씩 건네주곤 했다. "아싸, 설레임이다." 녀석의 집엔 항상 과자가 가득했고  그게 부러웠다.


 절대 평범한 일 말고 사업을 한다거나 색다른 일을 저지를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으로 인턴을 다녀오더니 외국계 회사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덩달아 미국인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 맙소사.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따라 육고기를 끊고 비건이 되었다. 오 마이 갓.


 오래 봤다고 불알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치고받고 싸워도 붙어있어서 불알친구인 거다. 어딘가 풀지 못했을 헛헛함을 달랠 날이 기다리고 있길 바라며 그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적는다.


우리는 불알친구다.
작년 여름, 곡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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