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식이타임 May 21. 2021

다정함을 아는 사람

다정함이 번졌던 날

 2015년 여름, 대학 동기들과 한 달간 유럽으로 떠났다. 파리를 지나 '니스'로 향하는 길. 여행시기를 잘못 골랐나? 햇빛은 뜨겁고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온 여행이었기에 식당에서 내는 물값이라도 아껴보자며 2리터 생수를 들고 다니는 우리였지만 덥고 힘들 때면 하염없이 탄식을 내뱉었다.


 "콜라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모 물 좀 주세요라고 100번 외칠 거야."

 몇몇 한국인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키득키득 웃곤 했다.


 "여기가 맞는데, 왜 아무도 안 나오지?"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지만 문이 닫혀있었다. 잘못 찾아왔나 생각했지만 주변을 빙빙 돌아도 이곳이 확실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숙소 예약을 담당한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가장 괴로운 건 '설마.. 아니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일단 주인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후덥지근한 날씨는 예민함을 증폭시켰고 친구는 서투른 영어를 내뱉었다.


 "아 덥다 더워,, 떨스티! 떨스티!"


 녀석의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렸는지 테이블에 앉아있던 낯선 이들이 우리를 불렀다.


"컴 히어! 우리가 밥 사 줄게"

"응? 지금 우리 보고 말하는 거야?"


 블로그에서 질리도록 읽었다. 여행지에서 낯선 이가 베푸는 호의는 사기라고. 그런데 밥을 사준다니! 우리가 딱 사기 치기 좋게 생겼나 보다고 생각했다. 유럽에 오고부터 만난 사람들은 덤터기를 씌우는 상인, 핸드폰을 훔치려 했던 소매치기뿐이었으니 말이다.


 경계심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더위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맛있는 냄새는 뇌를 마비시켰다. 참다못한 친구 한 명이 "아 몰라! 그냥 먹자!"며 테이블에 앉았다.


 "정말 시켜도 돼요?"

 "오브 콜스!"

 우리는 언제 의심했냐는 듯 음식을 시켰다. 이 정도로 되겠냐는 말을 하는 것 같아 콜라도 주문해 벌컥벌컥 마셨다. 음식을 먹고 난 뒤에야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도네시아에서 왔다며 본인들을 소개했다.


 "나도 젊을 때 배낭을 메고 유럽여행을 했어요.

이 친구가 '떨스티!'라고 하는 말을 들으니 그때가 생각나더라구요."


 우리는 연거푸 감사인사를 전했다. 한국은 어떤 나라냐고 묻자, 식당에서 물값을 내지 않아도 되는 좋은 나라라고 자랑했다. 서툰 영어인데도 알아들었는지 '허허' 웃었다.


  때마침 숙소 주인이 도착했다.

 "안 오시길래 우리가 잘못 찾아온 줄 알았어요."

  "oh... 도착시간이 3시로 되어있어서 지금 왔는걸?!"

 예약할 때 지정했던 도착시간이 그제야 생각났다. 마음이 놓였다. 예약이 잘못된 게 아니었으며 덕분에 다정한 어른들을 만났고 맛있는 음식도 얻어먹었으니 말이다.


 노부부는 우리에게 명함을 건넸다.

 "자카르타에 오면 연락해요!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흐뭇한 미소와 함께 작별인사를 했다.


 종종, 여행에 가면 다정했던 노부부가 생각난다. 그들이 베푼 호의 덕분에 숙소 주인을 기다릴 수 있었고 막막했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음식보다 더 귀한 '피식' 웃게 되는 추억도 생겼다.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정함이 번졌던 날, 하루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훌쩍 나이가 먹어도


오늘 배운 다정함을 잃지 말자고.

<다정함을 배웠던 날, 숙소에서>




 

이전 17화 불알친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