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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약 먹기=안경 쓰기

by 식이타임

나의 하루 에너지의 90%는 이한이에게 쓴다. 때로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때로는 친구들을 때리는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나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녀석을 23명이 공존하는 학급에 적응시키느라 나도 아이들도 애를 먹는다.


애써 이한이의 행동을 외면해 본 적이 있다. 스스로 안 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 있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폭력을 가하면 담임선생님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결국 혼내는 일이 반복되고 이한이는 점점 엇나갔다.


이런 이한이의 모습은 하교 후에도 계속되었나 보다. 돌봄 선생님도, 방과 후 선생님도, 수업을 같이 듣는 아이들도 일제히 나를 찾아와 이한이의 과격한 모습을 전했다. 결국 참다못해 이한이 아버지에게 모든 상황을 말씀드렸다.


"선생님 이한이 지금 집에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병원에 데려가려고요."


계속되는 전화에 이한이 아버지가 결심을 했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간 것이다. 오늘도 집중하지 못하고 교실을 휘젓고 다니는 이한이를 서둘러 집으로 보냈다.


병원에 다녀온 이한이는 눈에 띄게 얌전해졌다. 스스로 교과서도 펼치고 친구들과 더 이상 싸움을 일으키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조용히 종이접기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이한아,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얌전해진 거야?"


이한이는 ADHD와 경계선 지능장애 판정을 받았고 아침저녁으로 약을 처방받았다. 차분해진 이한이의 모습을 보니 매일 싸우고 때리고 반항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게 정말 이한이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약을 복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나 역시 내 아이가 정신과 약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최근 ADHD 아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연수에서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눈이 안 좋아서 안경을 끼는 것과 같아요. 눈이 나쁘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마음이 뿌옇게 흐려지면 제대로 판단할 수 없어요. 이때 약이 마음의 안경이 되어줘요. 맑고 선명한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거죠."


이제 나의 에너지는 우리 반 23명에게 골고루 쓰여지고 있다. 너무나도 강력했던 존재 이한이가 얌전해지니 도움이 필요한 다른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23명의 삶을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용기를 내 병원을 데려간 이한이 아버지에게 감사. 꾸준히 약을 챙겨 먹는 이한이에게 감사. 그리고 이한이가 제 자리를 찾아갈 때까지 기다리고 응원해 준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감사하다.


이제 이한이에게도 친구가 생기고 무엇이든 끈기 있게 도전하는 나날로 가득하길. 오늘도 간절히 응원한다.



화요일 연재글을 뒤늦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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