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설렁탕 이야기
2019년, 아이가 나오기 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날이었다. 시카고 시내에서 대학원 수업을 듣는 아내를 데리러 갔다. 길이 밀렸다. 평소같음 30분이면 가는 길이 한시간 반으로 늘어나버렸지만, 비 오는 차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앉아 있는 정취도 나쁘지 않았다.
아내를 차에 태우고 나서, 오늘은 불금이니까, 외식하러 ‘한밭설렁탕’에 가자고 했다. 한밭설렁탕은 시카고의 오래된 한인타운에 자리잡고 있었다.
섞음설렁탕, 모듬수육, 국밥을 시켰다. 한숟갈 뜨기 전에, 밥까지 알뜰하게 미리 퍼서, 남길 양을 따로 가져온 통에 담아 비닐에 고이 쌌다. 우리가 그러고 있자, 혼자서 모든 일을 하던 주인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국자를 휙 갖다주셨다.
이 집은 현금만 받아서, 식당 한켠에 현금인출기가 따로 있었다. 음식가격을 비싼 시카고 소비세(10.25%)를 추가하고나면 딱 떨어지게 책정해 놓으셨다.
식당 안에는, 한국말을 잘 못할 것 같은 ‘찐 이민 2세대’ 어린 학생들이 부모가 해주었을 그 진한 ‘숩soup’을 맛보고 있었다.
한 주가 길었다. 많은 일이 있었던 한 주였다. 역시 미리 준비해간 현금을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임신한 아내 몸이 안 좋았는데 너무 잘 먹고가요. 여기 진한 국물이 생각나서 비오는데 에반스톤에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 바쁘고 무심해보이던 주인 아주머니가
“그 통 좀 줘요”한다.
그러더니 주방에 가서 뜨끈뜨끈한 국물과 고기를 한가득 더 퍼다주셨다.
미국 사는 세월 동안 이런 일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다.
이민 생활이 오래된 1세대 분들은 나이 들어서도 일하느라 살림이 팍팍한 분들도 많고 젊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사는 게 워낙 바빠 서로 돌아보기가 쉽지 않은 게 한인의 미국 살이인데.
뜨신 통을 안고 차에 탔더니 갑자기 코끝이 시큰하다.
한국 친구들 생각에, 한국 생각에,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이런 일은 점점 더 사라져 가기에 복잡한 마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한다.
내일은 정을 떠먹을 것이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났다.
아이는 코로나 시국에도 건강하게 잘 낳았다.
훌쩍 지나간 일년을 생각하면서, 저 아주머니가 은퇴하시면 식당 문은 닫히겠지, 슬픈 생각이 든다. 미국의 한식당들 중에는 당연히 ‘노포’라고 할 만한 곳들이 있다. 그곳들은 그분들이 이민 왔을 때, 그때 알던 레시피 그대로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 곳에 가서 밥 먹어 보면, 수십년, 그 먼 옛날 한국 어디선가 누군가로부터 배운 그 오래된 조리법의 독특함이 느껴진다. 한국방송사에서 좀 나와서 해외 한인 노포들을 좀 취재해 기록으로 남기고 레시피도 기록물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년새에 메뉴판을 깔끔하게 다시 써서 붙여놓으셨다. 그런데 거기에 ‘만화설렁탕’이란 게 있다. 만화?라고? 만화??? 카툰? 그 만화?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떠오르는게 없는 단어였다. 영어 메뉴명을 보니 스플린spleen, 비장, 지라를 말하는 것인가 보다 싶었다.
2020년 경의 가격이다.
초록창에 검색해보니, 단 하나의 글이 검색된다. 1902년에 장사를 시작한 한국 노포, ‘이문설렁탕’메뉴에 ‘마나’가 있단다. 국어사전에는 ‘만화’로 나온다. 순한글이라고 한다. 아아 그렇구나. 그럼 아주머니는 누구한테서 그걸 배워오신 걸까. ‘한밭’설렁탕이니, 대전에서 배워오셨나 싶다.
이 집에는 소 특수부위인 혀 수육도 있다. 나는 그런 특수부위를 꼭 먹어보는 사람인데, 몇 번 먹어보니 맛이 참 좋았고 나는 소혀수육 팬이 되었다. 잡내도 나지 않고, 고기도 질기지 않고 얇고 부드러웠다. 미국은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살기 때문에, 저런 특수부위는 오히려 다민족 마트 같은 곳에서 쉽게 발견되곤 한다. 그들은 또 어떻게 조리해 먹을까?
이런 희귀한 조리법은 ‘가전,’ 집안 전통으로도 내려온다. 교회에서 어떤 중년 한인부부를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신이 나서 요즘 한국에서 최신유행하는 게 평양냉면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여자분이 질색팔색을 하면서, 자기 시어머니가 이북분이셔서 매번 이북식으로 김장을 할 때면 어머님이 직접 육수를 내려서 그 ‘평양냉면’을 드셔오셨다는 것이다. 벤츠 앞에서 티코 자랑한 꼴이었다. 언제 한 번 해주신다고 하셨는데 먹어보지 못하고 왔다.
잔돈은 됐다며 25달러를 건넸다. 우물쭈물하다가,
“지난 번에 아내 임신해서 왔을 때 주신 설렁탕 잘 먹고 아이 순산했어요.”
밑도 끝도 없이 일년 전 이야기를 덜컥 꺼냈다. 아주머니는 대충 그랬는갑다 하고 안에다 소리치셨다.
“순산했대, 여기 설렁탕 국물 하나 더 싸줘” 그러신다.
일년 전 밤은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렸는데, 이번에는 너무도 찬란한 가을 햇살에 노랗고 빨간 나뭇잎들이 ‘윈디시티’ 시카고의 바람에 실려 흩날리고 있었다.
사진- 본인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