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후 바뀐 나의 일상
미국에서 살다와서 생긴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남의 눈치 안 보고 나만의 의견갖기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하도 남들과 비교하느라 가장 완벽할 수 있는 나를 상정해놓고 결국 성취하지 못할 목표에 좌절해서 계속 자존감만 낮아졌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귀가 얇아져서 남의 의견에 팔랑귀가 되고, 남들이 부탁하고 시키는 일을 거절을 못했다. 혹여 남들이 나를 싫어할까봐 두려웠다. 또한 한국사회는 ‘답정너’ 사회다. 대체로 모든 일에 ‘정답’이 있고 나머지는 다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사회에는 정답이란 게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 한국사회는 정답을 강요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전에는 유행을 따랐다. 남들이 다 하는 거니 나도 해봐야지, 그런 마음이 강했다. 지금은 유행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정말 하고픈 마음이 들때야 따라서도 해 본다. 내가 유행과 다른 차림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TPO(시간, 장소, 경우time, place, occasion)는 신경써서 입으려고 한다. 나이에 맞게 입어라, 그런 건 없다. 젊게 입자, 그렇지도 않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아서 입고싶은대로 입는다. 왜 그렇게 입어야하는지, 왜 이렇게 사는지, 다만 이유는 분명하게 하려고 한다. ‘그냥, 남들도 하니까,’는 없다. ‘그건 남들이고’가 더 낫다. 짧은 인생 살면서 구태여 남들의 이목과 판단, 뒷공론에 신경쓸 시간은 없다. 답을 정해놓은 사회에 자꾸 오답같은 걸 밀어넣어 오류나게 해야한다. 안 그러면 숨이 막혀서 살 수가 없다. 내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장 보러 마트에 가면 남들은 다 의당 그러려니 하는 것이지만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도대체 왜?! 후진주차를 하느냔 말이다. 장보러 왔는데 말이다. 물건을 뒤트렁크에 넣지 엔진룸에 넣는 거 아니잖아요? 비상식적인 일이다. 미국에서는 전진주차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어려운 직각 전진주차가 아니라 대각선으로 차를 대서 훨씬 쉽다. 차들이 일자로 늘어선 게 아니라 브이자가 중첩된 모양으로 주차되어 있다. 이렇게 쉬운 걸, 왜 굳이 사람들을 괴롭혀가며 일상을 피곤하고 짜증나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걸 순순히 참고 무시하고 넘어가는 걸 보면 한국 사람들이 참 성미가 좋다. 한국은 이런식의 행정편의주의가 너무 심하다. 미국은 사람들이 ‘예상대로 하지 않을 경우’를 충실히 따져 규제를 최소화 한다. 반면 한국은 ‘일단 해놓으면 다 따라한다’고 예상하고 비인간적이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를 덕지덕지 만들어 지키라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걸 무시하게 되고 행정기관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다. 몸에 맞지 않는 규제는 안 지키면 된다. 그리고 민원을 넣어야 한다. 미국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비상식적인 일이 있으면 반드시 책임자를 찾아 항의를 한다. 그게 더 일상의 민주화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국민신문고에 주차장 개선방안을 민원을 넣었다.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주로 서구인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휘황한 밤문화(night life)다. 유흥문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그것도 나쁜 의미로 놀라울 것이다. 이렇게 비인간적이라니…) 일단 사무실부터가 허연 불빛이 야근으로 찬란하다. 대형마트는 자정까지 한다. 새벽까지 하는 술집, 늦게까지 술파는 음식점이 엄청 많다. 커피샵도 서울 기준 대략 밤 10시까지 한다. 미국에서는 술집 몇 군데 이외에는 모두 8시면 문을 닫는다. 7시 반부터는 문 닫을 준비를 하니, 대략 7시만 되도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를 해야한다. 8시가 되면 도심도 깜깜하고 조용해진다. (그러니 재미없는 천국..)
반면 ‘신나는 지옥’에서는 엄마아빠도 8시 넘어서나 집에 들어오니 늦은 저녁먹고 밤마실 나갔다 오면 11시다. 애들이 밤 11시에 잔다.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위가 너무나도 적막 고요해서 애들이 쏟아지는 잠을 11시까지 견딜 수가 없다. 게다가 미국 학교는 스쿨버스 도는 시간도 있어서 그런지 7시에 집에서 나서야 하고 그런 경우가 많아 늦게까지 잘 수도 없다. 대학원에서 수업 듣다가 우연히 몇 시에 자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참하게 생긴 한 남학생 말이 자긴 8시 45분이면 잠에 든단다. 다들 놀래기는 했다. 그런데 나도 이제 밤 10시면 잠이 쏟아진다. 내가 사는 곳은 신도시에 숲이 우거진 공원 옆이라 그런지 빛 공해도 없고 차 다니는 소리도 거의 안 난다. 그러다보니 8시가 넘으면 꼭 미국처럼 온통 조용하다. 티비를 보지 않아서 더 그런 것도 있다. 그러니 누워 책을 읽더라도 밤 10시가 넘으면 바로 잠이 든다.
거기에 일조하는 것이 있다. 조명이다. 요즘은 한국 미국 문화를 비교하는 동영상들도 많아서, 한번쯤 조명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미국에서는 하얀 형광등 조명은 사무실에만 있다. 주거공간은 무조건 노란색 조명이다. 그것도 천장에 조명이 있기보다는 기둥램프나 탁상램프가 많다. 자연히 집이 어두침침하다.
나는 한국에 있을때도 잠을 잘 못자서, 내 방에만 작은 노란 조명을 침대 옆에 두고 잘 준비할때만 켜두곤 했었다. 그런데 미국 가서 노란 조명, 특히 각양각색의 램프를 접하다보니 램프가 갖는 감성적 가치에 의미부여를 하게 되었다. 해질녘이 되어 집집마다 노란 조명이 켜져 있을 때, 그 빛은 따스한 느낌이 난다. 노란 불빛은 곧 ‘집’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집은 따스하고 편안한 곳, 굳이 눈에 불을 켜고 뭔가를 봐야하는 곳이 아닌 느낌이 든다.
내가 받은 또다른 영향은 실용주의다. 미국 사람들은 허장성세, 겉만 번드르르, 말만 번드르르한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욕 중 하나가 거짓말쟁이와 함께 위선자(hypocrite)라는 말이다. 그런 걸 접할 때마다 한국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남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아닌가. 망국지경에 경복궁부터 지은 나라가 아닌가. 차는 승차감보다 하차감이 더 중요하다지 않는가. 그 외에도 웬 명품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명품명품명품...
유학시절이라 형편이 그래서 그런 탓도 있었지만, 나는 미국에서 ‘중고의 맛’을 알게 되었다. 책도 새 책으로, 도서관에도 있는 책을 굳이 사서 보던 철딱서니가 남들의 손때묻은 물건에서 영감을 받고 자원도 절약되고 하는 미덕을 알게 되었다. 중고로 물건을 사러 다니면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사는 미국 사람들의 집도 많이 봤다.
그렇게 해서, 내가 미국에 살면서 받은 영향은, 내가 지금 사는 모습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한국에 새로 꾸린 우리집은 나의 그런 생각이 구체적으로 몸을 얻는 과정이었다. 셋집이라 미국 아파트 꾸미듯이 페인트 칠은 못해도, 천장에 다는 조명들은 모두 중고 노란조명으로, 거실과 식탁 샹들리에를 9만원 3만원에 사들였다. 그리고 직접 전기공사를 해서 바꿔달고 도배도 그 부분만 맞춰서 했다. 모두 동영상을 찾아보며 직접했다. 인건비 비싼 미국에서의 습관 덕분이었다. 그리고 전부 흰색인 모든 천장등은 사용을 중단하고 가지각색의 중고 램프를 사서 적절한 곳에 놓았다. 저녁이 되면 우리집만 노란 조명이 밝게 켜진다. 그리고 안방 침대와 가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고를 들여 집을 꾸몄다. 아파트지만 남들과 똑같은 티비, 소파 배치가 아니라 미국집처럼 벽난로를 가운데 두고 소파들을 대화가능하게 맞보게 배치했다. 집에 놀러온 사람들이 미국집 같다고, 자기가 가본 아파트집 중에 가장 인상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미국식으로 산다는 것은 미국 대형할인점 회원권을 가졌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다. 옛날이면 모를까 요즘은 거기엘 가도 '미제 물품' 찾기가 쉽지 않다. 미국에서 유행한다는 무엇에 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 그래도 괜찮더라.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 때, 불안과 염려보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얻게 된다. 그렇게 우리집은 10시면 노란 조명도 꺼져 칠흙같이 어둔 집이 된다.
사진- 샌프란시스코에서 엘에이가는 캘리포니아주 1번 도로에서. 태평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