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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반스토니언 Aug 30. 2024

어느 새벽의 저주

애틀랜타 캠핑 이야기

우리는 결혼 후 첫 캠핑을 미국에서 했다. 애틀랜타 근처에는 스톤마운틴이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왜 당신이 들어보지 않았느냐. 그건 애틀랜타에서 유명..아, 저 악명높은 KKK단이 모이던 장소라고 한다) 거대한 돌덩어리 하나가 그냥 산을 이룬 곳이다. 텐트는 작은 걸 지인에게서 빌렸다. 애틀랜타가 제주도 같은 날씨라지만 때는 아직 쌀쌀한 5월이었다. 물론 낮에는 더웠다. 없는 살림에 돈 아껴보겠다고 가능한 많은 걸 집에서 싸가지고 갔다. 에어매트리스는 남이 이사가며 주고 간 것이 있었다. 침낭은 무슨. 그냥 집에서 덮던 이불과 베개를 둘둘 말아가지고 갔다. 코펠은 무슨. 집 후라이팬 들고 갔다. 역시 밖에 나가면 삼겹살이지. 집에 남은 야채를 싸고, 고기만 한인마트에서 샀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라 그렇게 멀지 않았다. 대형마트 쇼핑백에 이불이며 후라이팬이며 이거저거 집어 넣었더니 이게 캠핑 짐인지 피난짐인지. 그것도 다 유학시절의 낭만이려니.


낮에는 걸어서 산꼭대기까지도 올라가보고, 완전히 숲 한가운데 우뚝 솟은 애틀랜타 시내도 보았다. 역시 ‘숲에서 솟아난 도시’라는 별명이 딱 맞았다. 그것말곤 볼 건 딱히 없었다. 그냥 돌산 주변으로 공원처럼 산책길이 잘 닦여 있는 정도? 우리는 사람도 거의 없는 캠핑장에서 신나서 호숫가 자리를 골라 텐트를 쳤다. 처음이었어도 워낙 단순한 텐트라 금방 칠 수 있었다. 캠핑 의자는 무슨. 그냥 옆에 있는 공원 식탁에 앉았다. 그러고 마트에서 사온 숯을 공원 그릴에 넣고 불을 붙였다. 낮부터 바람이 무척 부는 날씨였다. 고기를 굽다보니 금세 더워졌다. ‘이야 미국 와서 캠핑도 다 해보고, 출세했네~’ 햇볕은 참 뜨거워서 고기가 볕에 익는 것처럼 지글지글댔다. 사람이 드문 캠핑장인 게 가장 미국스러웠다. 한국이었으면 캠프사이트도 촘촘했을텐데 멀찍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오히려 약간 무서울 정도? ‘아…이래서… 미국 공포영화에 뭐하러 외진 데를 굳이 가서 변을 당하지?’싶었는데 도시에서 20분만 나와도 바로 대자연의 한복판이었다. 멀찍이 쳐진 텐트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는 아저씨를 보며 괜히 오싹해했다. 


우리가 신나게 고기를 구워서 드디어 상추와 함께 쌈장에 푹 찍어 먹으려는 찰나, 호숫가에서 동동 떠다니던 오리 가족이 갑자기 우리에게 오는 게 아닌가. 아니, 오리가 고길 먹나? 엄마 새가 뭍에서 나오니 노오란 털이 보송보송한 새끼 오리들이 줄을 서서 종종종 물에서 나와 우리에게 온다. 아…부담스러워 뭐지 쟤네? 미국 동물들 특징이 사람을 별로 무서워 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해를 입은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것이었다. 동물도 착하다. 그래서 결국은 얘네랑 밥을 같이 먹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해가 기울자 몸에 오스스 한기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호수라 그런지 바람이 꽤 불어댔다. 집에서 가져온 바람막이를 걸치고 팔짱을 끼고 있으니 딱이었다. 텐트 사이트는 콘센트(영어로는 outlet이라 그런다)가 하나 심어져 있었다. 거기에 전원을 연결해서 에어매트리스를 부풀려 보았다. 처음 써보는 거라 잔뜩 기대를 했다. 정말 침대 매트리스처럼 편할까? 무겁긴 무지 무겁던데. 우단같은 표면에 깨나 제대로 만든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아무리 바람을 넣어도 완전히 펴지지가 않았다. 뭐지? 으악! 옆 면을 보니 구멍이 나 있었다! 이 놈의 모또 XX! 내 집에 돌아가기만 해봐라!!! 그때 지인이 한국 가며 잠시 맡기고 간 모또라는 한 살 된 귀여운 샴 고양이를 돌봐주고 있었는데, 이놈의 모또가 발톱으로 몇 번 뜯은 것이었다. 이걸 왜 뜯어! 집에 뜯을 게 천진데!!! 별걸 다뜯네!!! 


화가 나서 식식 거리다가 입구에 있던 작은 매점이 생각났다. 혹시 매점에 테이프는 안 팔까? 매점은 절대 한국 편의점 같이 화려하지 않았고, 정말 미국 영화에나 나올 거처럼 생긴 낡고 좁은 매점이었다. 물건도 몇 안 됐다. 그런데! 검은 넓은 테이프가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역시 나만 이런 일 당하는 게 아니었어! 하하하 하면서 테이프를 사서 돌아왔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충분히 끈적거리는 테이프로 구멍을 막았다. 이정도면 됐겠지? 


저녁에는 같이 모닥불을 피우고 무릎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따뜻한 코코아를 한 잔하면서 스모어를 구워먹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에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달을 구경했다. 바람에 나뭇잎 비비는 소리가 스산하게 들려오는 밤이었다. 불에 넣은 커다란 솔방울이 활활 주황색으로 타닥타닥 타올랐다. 곧 자리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밤중이 되니 우르릉쾅쾅 천둥번개가 막 치더니 굵은 빗줄기가 내렸다. 새벽 한 시쯤이었나. 나는 자다말고 나가서 비를 맞으면서 비 가림막을 찾아 바람에 미친듯이 펄럭이는 그것으로 텐트를 간신히 덮어맸다. 그러고 다시 잠들었는데. 이번에는 그 가림막이 부스럭 부스럭 펄럭펄럭 대는 소리에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낮동안 이래저래 준비하느라 움직인터라 잠은 계속 쏟아졌다. 


새벽 네 시쯤 됐을까. 갑자기 등이 땅에 닿았다. 차가운 바닥에 돌이 등에 배기기 시작했다. 응? 이게 웬일이지? 깨보니 세상에. 그 두터운 매트리스가 테이프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결국 다 빠져버린 것이다. 이놈의 모또XX!!! 내 이자식을 그냥!!! 아오 열받아!!! 나는 원래가 불운의 아이콘인데 또 남의 나라에서 새 역사를 쓰는구나 싶었다. 


결국 그 새벽에 철수를 결정하고 일어나서 짐을 꾸렸다. 아침 햇살이 터오는데 피란살이 짐을 꾸려서 부은 눈으로 공원을 빠져나가는 길이었다. 괜히 짜증이 나서 아내랑 투닥투닥 말 싸움이 났다. 어? 제한속도 20마일? 어? 나 지금 23마일... 어? 저기 골목에..경..찰..차가 있네?! 아주 천천히 경찰차 바로 코앞에서 속도 위반을 해버렸다. 80달러 딱지가 나왔다. 그렇게 안전운전을 해왔는데, 미국에서 첫 딱지라니. 하아...하아..나 숨이 안쉬어지는거 같애.


 그러고 아주 천천히 공원을 빠져나가는데. 그 오리 가족이 길 위에 나타나서 천천히 길을 건너는 게 아닌가. 양방향 지나던 차들은 전부 멈춰섰다. 고상하고 흐뭇하게 웃으며 그 애들을 지켜볼 요량이 안 났다. 아!! 왜!! 집에 좀 가자!!! 날 좀 집에 가게 내버려둬!!! 그렇게 또 지인들은 고소해하며 요절복통할 불운 이야기 보따리가 늘어났다는 이야기.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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