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족(蛇足) - '브랜드어'와 '헐값어'

by 콜랑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려면 기존과는 다른 새로움을 담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언어적으로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늘 생각나는 시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다.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 새로운 표현을 사용하려는 욕구는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이런 욕구를 해소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사랑채, 하늘채, 꿈에그린' 등과 같이 고유어를 이용할 수도 있고 외국어를 차용할 수도 있다. 고유어와 외국어를 적절하게 섞을 수도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고어를 되살려 쓰는 방법도 있다. 현재의 철자법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고 원래의 소리에 변화를 주는 방법도 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언어학적으로만 보자면 기호와 기호의 새로운 연쇄에 불과하다.


언어 기호가 사회문화적인 가치 생산과 관련되는 경우에는 순수한 언어학의 지평이 인문학 전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확대되기도 한다. 인문학적인 다양한 담론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아파트 이름'만 보아도 언어 기호와 관련된 사회, 경제, 심리 현상이 작용함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언어적 기교를 체계적으로 기술해내면 광고업계 종사자들에게는 구체적인 광고 문구 제작 기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여러 가지 담론을 펼 수 있다.


대학의 교양 과목으로 언어학을 가르쳐야 한다면 소위 '언어 배틀' 현상처럼 다양한 논의를 할 수 있는 소재들을 많이 다루면서 학생들이 사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목을 만들면 좋을 것이다. 이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대부분의 어문계열 졸업자들조차 언어학의 이론적 개념을 외우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언어 현상이 다양한 사유와 그 담론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교육하는 선생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런 교육을 거의 받은 적이 없어서 혼자서 이 짓을 하고 있다.


어문계열 대학 졸업자들이 언어학이 어떤 학문인지를 거의 느껴보지 못한다면 누구의 책임일까? 학문으로서의 언어학이 가지고 있는 독자성과 언어학만의 사유 방식을 어느 정도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면 마땅히 전공 과정으로 교육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교육이 이론적 개념을 외우기에 급급한 교육이라면 교양 교육만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작금은 언어학 교양 과목들도 언어학 개론의 이론적 개념을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런 교육의 한 부면을 담당하고 있다.


언어학 관련 교양 교육에서라도 언어학의 지평을 넓혀 보면 어떨까? 과욕일까? 전공 (기초) 과목으로서의 언어학과 교양 과목으로서의 언어학이 공히 언어학 개론 강의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언어 현상을 놓고 관찰하고, 느끼고,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사유의 지평을 넓히려는 노력은 어문계열 전공자들에게 더 필요한 교육인지도 모르겠다.


보다 바람직한 교양 강좌로 언어학을 소개해야 한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들을 다룰 수 있을까? 틈틈이 시시콜콜한 것들이라도 끄적여 놓자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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