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주술, 축복, 기도

언어와 종교

by 콜랑

언어의 정의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이는 언어의 핵심 기능이 '의사소통'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언어의 기능에 대한 설명으로는 로만 야콥슨의 설명이 유명하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지 않는 언어의 기능이 있다. 언어학자들이 거의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는 기능일 것 같다. 바로 '주술적 기능(incantatory function)'이다. (설마 아무도 이런 식으로 설명한 적이 없는 건 아니겠지?? ^^;)



1. 이름 짓기


영화 <음양사>를 보면 이름을 붙이는 일이 가장 초보적인 주문이라는 대화가 나온다. 이른바 '주술'이라는 행위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동의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일본 문화권에서는 이름을 짓는 행위도 주술의 일종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무언가에 이름을 부여하면 그것은 그 이름으로만 불린다는 점에서 이름 짓기는 일종의 주술이라고 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 세상에 존재하는 '나'가 사람들에게 공유되는 가장 기본적인 매개가 이름이고, 그 이름이 사용될 때마다 내가 사람들의 인식으로 소환되어 공유되니까.


성경 <창세기>에서 첫 인간이었던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일에서도 이름과 관련된 이런 생각은 유지될 수 있을 것 같다. 김춘수의 <꽃>에서도 이런 생각은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 우리는 그 대상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이름을 붙이고, 내 눈앞에 그 대상이 없어도 이름을 불러서 인식 속에 그 대상을 소환한다.



2. 주술, 축복, 기도


내 눈앞에 없지만 어떤 '대상'을 떠올리는 행위가 이름 짓기라면, 대상이 아니라 어떤 사건을 인식 속에 소환할 수도 있다. '동생이 학교에 간다'라고 말하면 우리 머리 속에는 그런 사건이 떠오른다. 현실 세계의 일은 아니지만 인식 세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 된다. 소환되는 것이다.


우리가 소환할 수 있는 사건들 가운데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사건'도 있다. 그런 사건은 주술, 축복, 기도 등의 내용이 된다. 나에게, 너에게, 제삼자에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건들. 비록 현실 세계에 소환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인식 세계로 소환하는 행위가 주술, 축복, 기도 등과 같은 행위인데, 이런 행위는 의사소통 행위는 아닐 것이다(물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과의 의사소통 행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술, 축복과 기도는 다를 수도 있다.). 언어의 주술적 기능일 테다.



'기도'에 관한 사족

나는 인류학자도 종교학자도 민속학자도 아니고, 이 글의 목적이 주술, 축복(저주), 기도의 개념을 논하는 것도 아니지만, 성경을 보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들까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덧대 본다.

하느님도 이름('여호와' 혹은 '야훼')을 사용하셨다. 이사야 42장 8절은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라고 명기하였다. 대통령도 이름이 있듯이 하느님도 이름이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름인 '야훼' 혹은 '여호와'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대체로 '모든 일을 있게 하다' 혹은 '모든 일을 되게 하다' 정도로 해석하는 듯하다. 그리고 성경 이사야 55장 11절은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룬다고 한다. 성령이나 천사나 그 외 다른 어떤 힘을 사용하든지 하느님의 '말씀'은 곧 '현실'이 된다는 설명이다. 신앙심을 가지고 해석하면 하느님의 말씀은 곧 현실인 셈이다. 인간은 그런 능력이 없으니 하느님께 기도한다. 주술적 기능에 하느님과의 의사소통 기능이 복합된 행위가 '기도'인 셈이다. '축복(저주)'은 주술과 기도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아시는 분은 설명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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