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철학, 정신, 그리고 '의사소통'이라는 기적
언어는 본질적으로 기호이기 때문에 '언어학자'를 ''언어'라는 특수 기호 학자'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기호'는 본질은 아니니까, '상징' 작용(?)으로 우리의 정신과 본질을 맺어 주니까, 그러니까 언어학자는 본질을 직접 다루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본질'이란 '의미', '관념', '생각' 뭐 이런 것들인데, 쉽게 말하자면 '말하고자 하는 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의사소통은 내 머리 속에 있는 것(본질)을 너의 머리 속에 옮겨줄 수 없으니 언어라는 기호로 코딩해 두면 상대방이 이를 해독하여 원래의 본질을 복기하는 과정이다. 소쉬르는 이런 과정을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나타냈다.
이런 과정을 두고 언어학자는 코딩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등의 개별 언어의 문법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금 다른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철학자들이다. 비트겐슈타인도 그 중의 하나이다. 언어를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까? 뭐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대표였다고나 할까? 위 그림만 두고 보자면(세계는 관련시키지 말자! 복잡해진다! ^^;) 이런 의문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내 머리 속에 있는 것'과 '너의 머리 속에 복기한 것'이 정말로 같은 거니?
이 문제는 단순한 철학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학습의 장에서 가르치는 사람과 이해하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누가 알 수 있을까?
예를 하나 들어 보자.
확률을 공부할 때 '근원사건'이라는 개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근원사건'에 대한 개념 설명을 보면 '표본공간'이 어쩌고, '사건'이 저쩌고, 더 쪼갤 수 있니 마니, 복잡하다. 너의 머리 속에 있는 개념을 내 머리 속에 복사하는 게 결코 만만치가 않다.
학습의 장에서는 이런 경우 흔히 예를 들어 설명한다. 아래에 두 가지 예시를 이용한 설명을 가져와 본다.
(1)
예를 들어 한 번 시행마다 주사위 하나와 동전 하나를 던진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각각의 시행은 ‘주사위는 x, 동전은 y(앞이면 1, 뒷면이면 0)’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이 시행은 또한 ‘주사위는 x이다’와 ‘동전은 y이다’의 두 사건의 조합으로 쪼개서 볼 수 있다. 이때 각각의 ‘주사위는 x이다’와 ‘동전은 y이다’가 이 시행의 근원사건이 된다. - <과학문화포털사이언스올(https://www.scienceall.com)>의 '근원사건' 항목
(2)
사건은 근원사건의 집합이다. 사건의 확률은 그 집합에 속하는 근원사건들의 확률의 합이다. 2개의 주사위를 굴릴 때의 몇 가지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사건 사건에 속하는 근원사건
A: 나온 숫자의 합이 3 {(1,2), (2,1)}
B: 나온 숫자의 합이 6 {(1,5), (2,4), (3,3), (4,2), (5,1)}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통계학(만화)>
설명 내용은 둘 다 틀린 것이 없다. 그런데 (1)과 (2)의 예는 무언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나의 경우, (1)의 설명 방식은 '시행=주사위사건+동전사건'이라는 환상을, (2)의 설명 방식은 '근원사건은 사건의 부분집합'이라는 환상을 경험한다(이 말이야 말로 내 머리 속의 것을 너의 머리 속으로 옮기기가 어려운 경우일 것 같아서 좌절하고 있다.). '근원사건'의 수학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쪼갤 수 있음'이라는 속성의 부여 여부에 차이가 생기는 것 같다. 사실 '근원사건'이라는 수학적 개념에에서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 차이만큼이 '환상'에 해당하지 않을까? 검증은 못하지만 이런 '환상'은 이해 방식의 차이가 될 테고, 이런 차이가 쌓이고 쌓이면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관점의 차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언어의 본질적 속성인 기호성. 그것은 본질을 직접 다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내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직접 조작할 수는 없다. 이것을 기호로 풀어 놓으면 듣는 사람이 잘 복기해야 한다. 두 사람의 생각이 동일한 본질인지는, '글쎄?'다. 그러니 철학자 둘이 모여서 진리에 대하여 아무리 어마어마한 담론을 펼친다 한들 두 사람의 머리 속에 복붙한 것 같은 동일한 실체가 존재하는 것인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위에서 본 (1), (2)의 예시만 봐도 '환상'이 가미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동일한 개념을 설명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본 나는 무언가 조금 다른 것 같다는 환상을 경험하고 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정말 내 말이 그 말일까?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는 의사소통을 한다. 매일, 매시, 매분. 기적은 우리 안에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