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동일한 한국어를 공유할까?

- 언어 변화의 동력, 맞춤법(?)

by 콜랑

어렸을 적. 담임 선생님이 이뿐(예쁜보다 더 실감나게 예쁜) 여선생님이시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 조금 정을 붙여갈 때 즈음. 어느 날 그 이뿐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받아쓰기 테스트. 분명히 [궁물]이라고 하셔서 '궁물'이라고 썼는데 틀렸다고 자로 손바닥을 치셨다. 살살 때리셨는데도 그때는 '매우 치는' 것 같았다. [흑]이라고 하셔서 '흑'이라고 썼는데 또 틀렸다고 자로 손바닥을 치셨다. 총 10문제 중에 이 두 문제를 틀렸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 평소 나를 그렇게나 이뻐해 주시던 선생님이었는데 왜 이러시는 건지...


매는 아이들의 어리석음을 교정해 준다. 맞으면서 컸다. '국물, 흙'. 이젠 죽어도 안 틀리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했다. 2학년인가? 3학년인가? 아무튼 '형태소'라는 개념에 대해서 배웠다. 학교에서 문법 시간에 들어봤을 거다. 형태소. 뜻을 가진 최소의 단위. 하나의 의미를 표시하는 다양한 이형태들 중 대표형을 형태소로 정한 것. 그리고 우리는 그런 형태소를 공유하고 있으며 그렇게 공유된 기호 체계가 랑그(언어)라는 것.


두 개의 형태소 '국+물'이 결합할 때는 '국'이 '궁'으로 변하는 자음동화 현상이 있는데 이런 경우들을 고려하여 형태소는 '국'과 '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대표형인 '국'으로 정한다는 게 이해가 됐다. 아무튼 형태소 개념은 이해했다. 그런데 '흙'을 이해할 때는 조금 애를 먹었다. 도대체 왜 'ㄹ'이 있는 건지. '찰흙'을 [찰흘ㄱ]이나 [찰흐ㄺ]으로 발음하는 사람은 없다.다. 교수님도 '흙이'를 [흐기]로 발음하시면서 [흘기]를 바탕으로 이형태들의 대표형을 '흙'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역설하셨다(대부분 [흘기]라고 발음했지만 때때로 [흐기]라고 발음하시는 실수를 하셨더랬다). 거참...


가끔 한국어의 받침 발음은 우리 모두가 동일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를 가르치셨던 교수님이나 나는 '흙이'를 [흐기]라고 발음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표준어 화자(정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들은 [흘기]라고 발음한단다. 실제는 이러할진대 우리는 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면서 별다른 의심 없이 살아간다. 뭐, 받침이 쌍받침 혹은 겹받침이니 한번에 발음하기 어려워서 혼란이 조금 있는 거겠지 하면서 그냥 넘어간다.


형태소. 이형태들의 대표형을 형태소로 정한다. 다 좋다. 이론적으로도 훌륭하다. 한국어 화자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지식이다. 그렇다면 왜 언어는 변할까? 어형이 달라질까? 소고기/쇠고기, 솔나무/소나무, 나무/남구 등 왜 이런 변화가 생길까? 변화의 결과를 관찰할 수는 있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혹시 이런 변화는 우리가 언어를 정확하게 습득하지 못했거나 서로 조금씩 다른 어형을 공유하면서도 그런 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은 아닐까? 대부분의 한국어 화자는 '곱'이라는 형태소를 머리 속에 가지고 있는데 어쩌다가 누군가가 그 형태소의 모습을 '곲'으로 바꾼 채로 말하고, 나중에는 이런 현상이 재미로라도 확산되면서 형태소가 변할 것으로 짐작은 되는데 이를 실증할 자료는 없다. 정말 동일 세대를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


우연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지하는 듯한 영상을 발견했다. 아래 동영상을 보다 보면 '곱이, 곱을'을 [곱씨, 곱쓸]로 발음하는 걸 볼 수 있다. 형태소 '곱'이 이 동영상을 제작자에게는 '곲'인 모양이다. 한 번은 실수인데 두 번은 좀 다르지 않을까? 분명히 누군가의 머리 속에서는 형태소 '곱'이 '곲'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것 같다. 실수이든 아니든, 이런 일은 언어학 관련서에서는 보기 어려운 언어 변화의 동력 중 하나인지도... 맞춤범이 문제인가?? ^^;


https://youtu.be/owo6hdlJB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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