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으로서의 한국어학에 대한 단상
"좋으시겠어요."
"뭐...가요?"
"업무상 메일을 쓰거나 고마운 분들께 감사의 문자 한 통을 보낼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맞춤법과 띄어쓰기거든요. O 선생님은 국어학자시니까 그런 거 하나도 안 어려우시잖아요."
"허허...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보나 보죠? 저도 맞춤법은 잘 모릅니다. 제가 국문과 나오기는 했지만 국어학자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구요. 나름의 노하우가 있기는 하지만 맞춤법은 저도 어렵습니다. 늘 틀려서 검색해 봅니다. 모르긴 해도 국문과에서도 문학 연구를 더 많이 할걸요? 왜, 그러잖아요들. 법은 만든 놈이 제일 안 지키고, 학교는 제일 가까이 사는 놈이 제일 지각 많이 하고 그런다고요. 하하."
맞춤법. 참 어렵다. 노하우가 있다면 헷갈리는 철자나 띄어쓰기가 있으면 대체할 만한 다른 표현을 쓰는 거다. 굳이 헷갈리는 철자를 두고 '굳이'인지 '구지'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은 언어가 한국어가 아닐까? '꼭', '반드시', '죽었다 깨도' 등등 상대나 환경을 고려하여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이 있는 좋은 언어가 한국어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한국어 화자로서 느끼는 한국어의 매력 포인트다.
그건 그렇고 한국어 연구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연구를 할까? 교보, 영풍, 반디, 알라딘, 예스24 등 어디서 검색해도 한국어 문법서는 그 종류가 얼마 되지 않는다. 문법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서정수 교수의 '국어문법' 정도 되는 두꺼운 문법서는 시중에서 구하기도 어렵다. 대학 도서관이나 가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게 문법인데 그 많은 한국어 연구자들은 무슨 문법을 어떻게 연구하길래 그 많은 논문을 쓰고 있을까? 뭐가 그리 새로운 게 많이 있어서 논문을 쓰고들 있을까?
예컨대, '예컨대'와 '예를 들면'이 사용된 용례를 많이 모아서 관찰해 보면 둘 사이에 우리가 모르고 있던 쓰임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를 일이다'나 '모르는 일이다'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문법적으로는 시제 제약이 어쩌고 하니 '모르는 일이다'(혹은 '모를 일이다')가 더 문법적으로 정확하고 할지로 모르겠다. 이런 거 결정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결정 내리려고 그 많은 텍스트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이 한국어 연구는 아닐 것이다. 그런 작업은 연구를 위한 기초 조사이지 않을까?
인문학적 교양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각적으로 생각해 보자. 국어국문학과는 인문계열로 보니까. 인간의 언어에 대해 인문학적 교양으로 어떤 점들을 알고 싶어 할까? 특히, 언어 현상과 관련된 점들, 문법과 관련된 점들.
홍사훈의 경제쇼 2021. 5. 20. 유튜브 클립(https://www.youtube.com/watch?v=EgccQYY9dBw) 33:45 재생 구간에서 이런 발화가 나온다.
"작년 기저효과에서 3.6%도 물가상승율은 높은 건데, 그것보다 더 높게 나와서 지금 겁내 하는 거거든요."
'겁(을) + 내다'가 '겁내다'가 되고 여기에 '-어 하다'가 붙어서 '겁내 하다'가 된 것으로 보인다. '겁내 하다'. 그냥 '겁나는 거거든요'라고 하면 될 부분인데 하필('굳이'인지 '구지'인지 헷갈릴 때 '하필'도 쓸 수 있었다!) 머리 속에서 복잡한 과정이 일어나야만 할 것만 같은, 게다가 어색해 보이는 '겁내 하다'를 만들어서 쓴 것 같다. 발화 실수?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이런 실수가 나올 수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한국어 문법책 어디를 찾아 봐도 '겂나다, 겁내다, -어 하다'와 관련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알려주는 설명을 찾아보기 어렵다. '겁내다'는 한 단어인가? '-어 하다'는 보조 용언인가? 이런 거 말고. 어째서 저련 표현들이 사용될 수 있는 걸까? 한국어는 이러이러한 구조로 문장을 이룬다는 식의 설명은 구조조의 언어학이 언어학의 생명력을 앗아갔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어 하다'가 보조 용언('겁내 하다'의 '-어 하다')인지 단어의 일부인지('좋아하다'의 '-어하다'처럼)는 모르겠다. '겁내다'와 '겁내 하다'가 어떤 구조인지는 한국어 연구자들끼리 박터지게 다투고 결정이 나면 시험에 출제해서 맞추게 하면 되겠지. 진짜로 궁금한 건 '-어 하다'가 문법적으로 어떤 요소이길래 이런 헷갈림이 존재하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걸 심리학자에게 물어볼 수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요소가 무엇이라고 규정하거나 설명하고 외국어와는 어떤 점에서 다르고 뭐 이런 점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게 한국어 문법 연구자들이 해야할 일 아닐까?
이런 불만 섞인 짜증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아무거나 들려다오' 심정으로 틀어 둔 유튜브에서 '괜찮아, 안 괜찮아도 괜찮아~' 이런 노래가 흘러 나온다. 키햐~!! 정말 우연치고는 너무 필연이지 않나? 그 어떤 설명이나 변명보다도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무슨 말장난 같은 반복이 라임처럼 들리면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언어의 마력(?)이란, 언어의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괜찮아, 안 괜찮아도 괜찮아.'
삶이 제대로 꼬였을 때 그 누구의 위로가 도움이 될까? 그럴 때 누군가 지나는 말로 이런 멘트 한번 해 주면왠지 위로를 얻을 것만 같은 느낌. 그 누구의 늘어지는 위로보다도 힘이 되는 것 같은 이 표현은 시적인 표현도 아닌데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우연치고는 너무 필연'. '괜찮아. 안 괜찮아도 괜찮아'. 뭐 이런 표현들은 밈처럼 자주 써서 속담에 준하는 관용 표현으로 써도 재미있을 것 같네?! 뭐, 아직은 '안 괜찮아도 괜찮'지만, 누가 이런 거 좀 연구해서 알려주면면 좋겠네요.